본문 바로가기
  • 온누리선교교회 Onnuri Mission Church Миссионерская церковь Оннур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누가 하나님 안에 살 수 있을까? (시편 15, 주일예배 20180916)

by 온누리선교 2018. 9. 15.

성경말씀: 시편 15:1~5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설교: 누가 하나님 안에 살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세상에 지치고 힘들어 괴로운 세월을 지내다가 어떤 믿음 좋으신 할머니의 전도로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말씀도 좋고 찬양도 좋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있을 즈음, 교회 주차장에서 깜짝 놀라는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차문제로 교회 성도들끼리 욕을 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충격을 받은 이 사람이 놀라서 ~ 교회도 세상과 똑같구나~”라며 교회를 그 다음 주부터 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단지 영혼 구원을 받는 문제라면 예수 믿는 것은 정말 쉽습니다. 그냥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과 부활의 능력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만 보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함께 모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시고, 또 그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 나라 올 때 까지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곳이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만 들어오면 세상에 심지어 드러나지 않던 그런 더러운 것들이 나오는 일들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께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구원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 나라 올 때까지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만드셨는데, 왜 교회는 거룩하지 못한가?’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에 오늘 하나님께서 답을 하고 계십니다. “나의 장막에 머물고, 나의 성산에 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의 장막, 주의 성산은 바로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받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국에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 교회에 온다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고 해서 완전히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이 세상에서 살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늘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이것을 통해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시고 더욱 더 큰 하나님 은혜 안에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3절의 말씀입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하나님 나라에 살려면, 첫째로 정직하게 살고 의를 행하여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은 겉으로 거룩해 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은 교회 밖에서나 교회 안에서, 보통 날이나 주일이나 다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로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은 무엇보다 정직하고, 믿고 행하는 것이 같은 사람입니다.

또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마음에 품은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 곧 마음과 말하는 것이 같고 또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같은 사람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을 앞세워 거짓을 말하고 남에게 상처주고 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 살려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실족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지 전에 먼저 자신의 혀를 깨물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혀로 남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악이란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들에서 쳐죽인 일이나(4:8)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종으로 판 것이나(37)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개에 팔아넘긴 것은 다 악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 남을 비방하고 악을 행하는 일 등은 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일을 죄의식 없이 기꺼이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창세기 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였고, 욥기 1:1,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이렇게 많이 하나님께서 정직하게 살고 진실하게 살고 남을 비방하거나 괴롭히지 말라고 써놓으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셔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심방가면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라고 권고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심방 가서 눈에 띠는 것 중에 마음이 들기만 하면 칭찬을 합니다. 그 중에 한 집에 갔는데 참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책상보였습니다.

그 사모님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선물이 왔는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목사님 사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겠습니까? 그것까지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돌기를 목사님 사모가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앗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어서 거동을 못하고 말을 잘 못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야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채 얼마든지 남의 가슴을 찢어 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아픈 부분을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형편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서 이야기하는 것,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의 대화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방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비방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안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4~5절입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망령된 자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대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악을 행하고 타락한 자에 대하여는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멸시한다는 말은 멀리하다” “싫어하다” “무시하다라는 뜻으로 가까이 하거나 같이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즉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귀중하게 여기고 위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 한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웃으나 믿음의 사람들은 다른 성도를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말로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마음으로라도 서원한 것은 자신에게 해가 될지라도 변하지 않고 반드시 실천한다는 말씀입니다.

서원(誓願:vow, oath)이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샤바라 하는데 이 말은 일곱이라는 숫자에서 유래한 말로 본래 일곱 번 말하다의 의미로 이는 7번 되풀이 하여 선언함으로써 맹세한다는 의미입니다. 서원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하는 것이고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23:21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더디면 그것이 죄가 되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서원한 것을 잘 지켜야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돈 놀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출 22:25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같이 하나님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살아야지, 고리대금을 받고 돈놀이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면,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율법에도 있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23:8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않는다!”는 말씀을 보면 뇌물을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을 죄있게 하거나, 재판을 돈 받은 사람에게 유리하게 해주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갑니다. 누가 뇌물을 주면서 뭣좀 해달라고 하면, 판단이 흐려져서 하나님도 안보이고, 정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뇌물을 받는 일을 금하셨고, 선지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뇌물을 받는 이스라엘 왕이나 재판장들을 향하여 경고하였고, 하나님의 무서운 뜻을 대언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절입니다.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시편 15편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거룩한 성산과 성전에 거하는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즉 주의 성산과 장막에 거주할 수 있는 주어진 약속의 말씀입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씀은 비틀거리지 않는다”,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은 안전을 보장해 주시는 약속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안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마음에 솔직하게 진실을 말해야합니다.

남을 비방하거나 이웃을 나쁘게 괴롭히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소중히 섬기는 사람들을 잘 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꼭 지켜야 합니다.

돈놀이 하려고 같은 믿는 사람들끼리 돈을 꾸어주거나 하면 안됩니다.

뇌물 받고 죄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면 안됩니다.

말씀을 쭉 살펴보니, 하나님 섬기고, 예수님 믿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열매 없는 나무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만으로 믿음생활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순간들이 항상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방법을 아주 자세하게 오늘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 말씀대로 살길 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욕심들과 어리석음은 하나도 남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으로 채워주셔서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