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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히스기야왕에게 배우는 교훈 (주일예배 20190106)

by 온누리선교 2019. 1. 4.

 

성경본문: 역대하 32:24~26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설교: 히스기야왕에게 배우는 교훈

 

오늘 말씀은 히스기야왕의 이야기입니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 참으로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25세의 어린 나이에 왕에 올라 엄청난 일들을 겪었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차지하는 것도 눈으로 보았고, 자기가 사는 서울, 예루살렘성을 앗수르가 둘러싸며 다 죽여 버리겠다고 압박하는 고통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아버지 아하스왕과는 달리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 신 저 신 이방신들을 하나님과 같이 섬기던 산당들을 다 무너뜨리고 성전을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도록 다시 고쳤습니다. 제사장들도 오직 하나님만 잘 섬길 수 있도록 백성들을 교육하게 하고 또 미신처럼 믿어왔던 모세의 놋뱀도 없애버립니다. 이렇게 하였지만 히스기야왕은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젊은 나이에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운 수도 있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왕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벽을 향해 기도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3일 안에 히스기야왕이 성전에 올라가게 되고 15년 더 살게 될 거라고 합니다. 이 말이 진짜라는 것을 그림자 기적으로 증거로 보여주신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히스기야의 죽을병을 낫게 하셨고, 앗수르도 물러나게 하셨고, 15년을 더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유는 바로 히스기야가 어떠한 순간이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 때문에 얻은 기쁨도 잠시 히스기야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나 자신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나 하나님 앞에 커다란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럴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참으로 넘치고 넘치는데 그 실수 때문에 우리는 그 넘치는 축복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오늘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이름 뜻을 가진 히스기야를 통해 이 문제를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2019년 우리에게 부어주시려는 그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24~25절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왕이 죽을 병에 걸렸다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이 주변국에 퍼집니다. 바벨론 왕이었던 브로닥발라단이 이 소문을 듣고 편지와 예물과 함께 사자를 보냅니다. 왜 그랬을까요? 진심으로 위로하고 기뻐해서요? 아닙니다. 당시 앗수르가 아주 강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왕이 예루살렘 성을 둘러쌌다가 도로 돌아간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벨론 왕은 유다왕 히스기야가 대단한 줄 알고 아부를 떠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인데 바벨론왕은 모르니 히스기야왕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를 막으려고 하려고 했습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 친절해보이고 다 좋아보여도 나중에 보면 다 목적이 있고 다 이용하려고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 치고 물건 사는 사람에게 잘못대하는 사람없듯이, 세상은 다 이렇습니다.

그런데 강해보이는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와 동맹을 맺으려고 아부를 떤다는 사실을 알고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순진하다 못해 바보처럼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바벨론에서 온 신하들에게 다 보였습니다. 정말로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왕하 20:13) 라고 성경에 쓰여 있을 정도였습니다.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요?

히스기야왕은 힘들고 어려울 땐 벽만 쳐다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더니 이제 살만하니까 바벨론과 동맹 맺어 앗수르를 이기려고 하는 마음을 갖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바벨론과 동맹을 하면 앗수르를 완전히 망하게 할 수 있을까요? 예루살렘성을 둘러싸며 숨통을 조이던 앗수르군대가 성밖에서 하룻밤사이에 185,000명이나 죽고 앗수르왕 산혜립이 돌아가서 아들 둘에게 이방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살해당했던 일 (왕하 19:35~37)은 전부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바벨론이 필요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히스기야를 야단치신 것입니다. 왜 바벨론이 필요하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왕이 행한 일 때문에 유다에 있는 모든 것,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을 예언합니다. 바벨론에서 보낸 신하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었으니 다 보여준 것들이 바벨론으로 갈 것이고, 또 백성들과 왕의 자손들이 다 바벨론의 노예로 갈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불신앙 때문입니다!

불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들은 내가! 내가!” 하며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자존감,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숨으로 지으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귀한 존재이지만, 나만 중요하고 내가 남보다 더 낫다고 교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내가 먼저이고 마지막에는 하나님보다 내가 먼저가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외롭게 사는 여신도가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배와 기도에는 참으로 열정적이시라 늘 맨 앞자리에 앉아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교인들과 교제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자기 말만이 옳았습니다.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라고 하면 자기가 받은 말씀만이 옳고 다른 사람이 받은 말씀은 다 틀리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만 하나님에게 통하고 다른 사람들의 신앙은 다 하급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웬만하면 잘 지내보려고 해도 자기와 다른 말만하면 자기에게 상처 주었다고 말하고 밤이나 낮이나 하나님께 억울함을 토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건, 장로님이건, 권사님이건, 친구건 상관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나의 편이고 나만을 위로하신다고 외쳤습니다.

어찌 보면 이 분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시는 것 같으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방패막이로 삼고 사는 것임을 모두 다 알았습니다. 본인만 모르지요. 그러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더 외롭고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먼저 나하고 싶은 대로!“는 절대 안 됩니다. 만약에 우리는 내 맘대로!”라고 외치는 순간에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없어서 과시하지 못하지 만약 있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싶은 그런 악한 마음이 다 있습니다. 남보다 더 잘나기를, 남보다 더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좀 채워지면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듭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런 우리의 교만을 이용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결국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 (잠언 16:18)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망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의지하면 바로 망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스스로 교만했음을 알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6절입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히스기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깊이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으로 히스기야는 살아있는 동안에 그 엄청난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마음을 아셨고 진짜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히스기야 때문에 마음을 돌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자세를 갖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교만해서 죄를 지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같이 하나님의 싸인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듣지 않으려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어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잘못했어요.. 그런데요.. 저도 어쩔수 없었어요..”하면서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하면 그 죄를 정말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쓰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히스기야를 보고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싸인이 느껴질 때, 설교말씀으로 또는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치시면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이 참으로 용서받지 못하는 죄일지라도 말입니다. .

 

다음의 이야기 하나를 말씀드리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타이타닉호라고 아십니까?

1912414일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호는 당시 세계 최대, 초고급 시설을 갖춘 호화 유람선이었습니다. 당시 대서양 횡단 유람의 경우, 1등석이 1인당 5만달러정도, 56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호는 매우 크고 견고한데다 화려해서 '침몰이 불가능함'이라는 홍보용 문구가 있을 정도로 가장 완벽한 배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 동부해안에 이르렀을 때, 해안 통제소부터 얼음 빙산이 다가오고 있으니 조심하라라는 무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장과 항해사는 타이타닉이 어떤 배인데 빙산하나 때문에 항로를 바꿀 수 없다며 무시하였습니다. 심지어 선장이었던 에드워드 스미스는 하나님이라도 이 배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웃었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킬로도 못가서 빙산에 부딛쳐 타이타닉호는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첫 항해에 말입니다. 2,300명의 탑승자 중 오직 700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감이랑 교만은 틀립니다. 교만은 사람을 반드시 망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겸손해야지 조심해야지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만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앞에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 안에서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엄청난 고통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살아 주님의 능력 가운데 힘을 얻어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 올리며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 뜻 가운데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사단의 꾀임에 빠져 겸손히 주를 섬기지 못했습니다. 늘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늘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길 원합니다. 히스기야왕처럼 믿음 가운데 겸손히 주를 섬기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