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시편 25: 12~14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설교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는 복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시편 25편입니다. 이 구절은 다윗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벌을 받을 때 지은 시입니다. 하나님에게 벌을 받고 다윗의 적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상황에서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말합니다. 좀 더 상황을 자세히 보면,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에게 쫒기던 때입니다. 다윗은 너무나 챙피하고 너무나 부끄럽고, 너무나 슬픈 상황입니다. 어디가서 절벽이 있으면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바닥으로 내려가서 바닥을 딱! 치는 상황인데도 절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이겨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이 모든 것을 이기고 하나님 품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질병가운데 무서운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의 특징은 무관심과 무감각입니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어떤 자극이 와도 감각이 없다면 그것은 큰 병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믿고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복을 주시는지 말씀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의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럼 12절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복이 무엇인지를 보겠습니다.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한다' 의 '경외하다'는 히브리어로 '야라' 입니다. 즉 '두려워하다' 는 의미를 가집니다. 영어 성경에는 'fear'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존경심을 갖고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멋대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 맘을 다하여 사랑하면서도, 또한 존중하고 두려워하며, 그 분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해 지키길 원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복을 약속하십니다. 그 복 중에 하나는 ‘그가 택할 길을 가르쳐주시는 복’입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선택 가운데 살아갑니다. 작은 선택도 있고, 큰 선택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은 그 한 번의 선택으로 향후 몇 년이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떤 선택은 평생에 영향을 주는 선택도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결국 그 선택에 의해 우리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물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결정을 통해, 우리의 영원한 운명 또한 결정됩니다. 나아가 성경은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에도 그 영광이 다르다고 말씀하는바, 구원을 얻은 후 주님 안에서 행한 선택, 즉 순종에 의해, 영원한 땅에서의 상급 또한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선택은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선택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에게는, ‘그가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주시는 복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가르쳐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는 스프링벅(springbok)이라는 산양(山羊)이 있습니다. 스프링처럼 뛴다고 스프링벅이라 부릅니다. 이 양들은 20-30마리씩 무리를 지어 풀을 뜯어먹습니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면 수천마리가 함께 이동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풀을 뜯어먹으면서 이동을 하지만, 점점 속도가 빨라져 나중에는 질주를 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앞에 있는 양들이 풀을 다 뜯어먹기 때문에 뒤의 양들은 풀을 먹으려 앞의 양들을 밀고 달려나오니 자연히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풀을 뜯어먹기 위해 달리지만 나중에는 앞지르기 위해서 달립니다. 달리다 보면 뒤에 밀려서 달리게 됩니다. 무한질주가 계속 되다가 절벽에 이르면 앞의 양들이 멈추려 해도 멈추지 못하고 뒤의 양들에게 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 다음 양도, 그 다음도 모두 함께 떨어져 죽고 맙니다. 떼를 지어 달리다 떼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이와같지 않습니까? 앞만 보고 달리며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닙니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므로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선택해야 할 길을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십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선택하사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는 대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선택할 때 최상의 선택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선택은 불행이요 멸망이 됩니다.
이사야 48장 17절에 "하나님께서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해 주신다" 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함 받으려면 하나님을 더 경외해야 합니다.
이어서 13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두 번째 복은, ‘영혼의 평안‘입니다.
어느 부인이 빌리 선데이(W. Billy Sunday)목사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화를 잘 내는 것이 흠입니다. 그렇지만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선데이 목사는 "자매님, 화는 오래가지 않지만 당신이 성냄으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에 남겨진 상처는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신앙과 평안은 정비례합니다. 반면에 신앙과 두려움은 반비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시기 바랍니다. 불신앙, 우상, 인간적인 혈기와 죄악까지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것으로는 치유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한 영혼에게는 평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만이 고침을 받으며 평안히 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13절에 "저의 영혼은 평안히 거하고"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거짓이고 잠깐입니다. 쉽게 변질되고 빼앗깁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며 빼앗기지 않습니다. 평안히 거하게 만들어 줍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이 평안은, 오늘 시편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길을 선택할 때, 그리고 순종함으로 따라 갈 때 주어지는 평안입니다. 우리들이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 위에 서 있는지 점검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영혼의 평안함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마음이 놓이고, 긴장되지 않는 심리적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환경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께서 가르쳐주시는 길을 선택할 때, 그 길은 오히려 보통은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긴장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고난의 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지도하시며 기뻐하시는 길이라는 확신이 우리 안에 있을 때, 그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그 길을 기뻐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길 가운데 때론 근심과 두려움이 들어도, 그 모든 것을 주께 아뢰며 주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주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평안함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평안함 속에 모든 일들이 다 잘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요한 3서 1장 3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영혼이 평안을 얻으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육체의 일, 다시말하면 세상의 일을 다 잘 풀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손들에게까지 그 복이 이어져서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13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청교도 역사에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인물 중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있습니다. 그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여 평생토록 신실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에 반해 그의 친구인 맥스 쥬크(Max Juke)는 믿음이 없었으며, 방탕한 생활을 하던 여인과 결혼하여 평생 타락한 생으로 살다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한 연구기관에서 그들 후손의 삶을 비교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쥬크 가문의 후손 1,062명중에는 살인이나 마약거래 혹은 강도 폭력 등의 죄를 저지르고 5년 이상 감옥신세를 진 사람이 96명, 알콜중독자, 정신병자가 58명, 창녀가 65명, 빈곤자 보조금 탄 사람이 286명, 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이 460명, 그밖에도 사회에 해를 끼치며 산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며, 그들이 정부에 끼친 손해 액수가 무려 1억 50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한편 에드워드 가문은 896명중에 대학교 총장이 13명, 학장이 66명, 신문주필 논설위원 문필가가 75명, 주지사 3명, 상하의원 4명, 부통령 1명, 검사 변호사 103명, 의사 93명, 발명가 21명. 선교사 목사 116명 등 사회 각층에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자손들도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고 축복또한 받게 된다는 교훈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도 축복이며 내 가족들과 내 후손들에게도 얼마나 축복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이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받는 복이 무엇이 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입니다.
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님의 언약’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때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언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 때 이스라엘은 언약에 기록된 대로 복을 받습니다. 때로는 욥과 같이 고난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호소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당연히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를 친밀하게 대하십니다. 여기서 ‘친밀함’은 언제든지 격의 없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친밀한 사람 사이에는 아무 때든 만나서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그 언약을 알면 알수록,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어느 순간이든 주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선택과 결정 가운데, 주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고백으로, 주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점점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오직 주를 향한 사랑만이 그 마음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밀을 안 다윗은 모든 곤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였습니다.
혹 괴로움을 느끼십니까?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까? 어떤 역경에 있다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경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사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위하여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힘들수록 더욱 여호와를 경외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하겠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루하루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오직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주께서 기뻐하시는 선택과 결정, 순종으로 가득한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부디 여호와를 진심으로 경외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 가야할 길을 인도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이 평안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대로 우리의 자손들까지도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시며 주님의 언약을 마음에 새기고 또 그 언약을 실천하며 살면서 복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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