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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23)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 (수요예배 20191002)

by 온누리선교 2019. 10. 2.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7: 11~16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12.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설교: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된 근심

 

사람은 대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합니다. 다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금방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그처럼 배신을 일삼는 인간을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거의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깝습니다. 왜 삶이 무겁고, 우울하고, 쓸쓸합니까? 하나님을 배반하면서 자신도 하나님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가끔 어떤 사람을 징계합니까? 그를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고통은 영혼을 하나님께 잡아매는 끈입니다. 고통이 없다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절실히 사모하겠습니까? 고통은 우리가 한계를 가진 인간임을 자각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집착하던 것들의 허망함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고통과 근심의 유익에 대해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잘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잘못된 길을 가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책망하는 편지를 보내고 소식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디도가 돌아와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감사를 담아 편지하는 내용입니다. 보면, 고린도 교인들은 디도 편에 보낸 바울의 서신을 받은 후, 놀라움과 큰 근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알게 되었고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근심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근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근심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차라리 열심히 근심하십시오. 때로는 근심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근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생각하고 행하여 마침내 근심을 유익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지혜를 이 시간 받아 큰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1절의 말씀입니다.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한 이 근심의 유익은 첫째로 간절하게 했습니다.

간절하게 했다는 말씀은 죄악에 무관심했던 것과 잘못된 신앙생활에 대해서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고린도 교인들은 도덕적으로 문란했고, 잘못된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 구원에 확신이 없을 뿐 아니라 파당을 지워 분쟁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근심과 염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책망했을 때 그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고쳐나갔습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듣는 사람이 간절함이 없으면 소귀에 경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설교를 듣는 태도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의 반대는 무관심이기 때문입니다.

무관심한 상태로 설교를 들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말씀에 간절했을 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둘째로 변명했습니다.

변명은 잘못에 대한 인정과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 겸손과 진지한 태도로 진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기들의 잘 못을 겸손과 진지한 태도로 시인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을 일이 있는데 진정한 용서와 용서를 받는 태도는 고린도 교인들처럼 겸손과 진지한 태도로 자기의 잘 못을 시인할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목사와 교인 간에, 친구와 친구 간에 오해할 만한 일이 있으면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로 자기의 입장을 자세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셋째 분하게 했습니다.

이들을 분하게 한 이유는 범죄자들에 대한 의분과 범죄자들을 용납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자책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는 음란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율법주의자들이 있었고, 파당을 지워 교회를 나누고 부흥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용납하며 보고만 있었던 일들이 자기들의 잘못으로 알고 분노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죄와 잘 못을 보고 분노해야 주님의 자녀요 일꾼입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진지한 태도로 자기의 잘 못을 시인하는 사람에게는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지만, 교만과 아집으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는 대단히 진노하셨습니다. 만약에 용서만 있고 진노와 책벌이 없다고 하면 주님은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고, 이 세상과 사회는 죄악으로 가득찰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두렵게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엄격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말씀의 내용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주님을 거룩하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두려움이 없으면 그 믿음이 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은 세상적입니다. 주님을 거룩하게 두려워하는 마음은 세상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중심적으로 됩니다.

 

다섯째 사모했습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 교인들이 은혜의 복음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은헤와 복음에 열망이 없으면 자기를 지탱할 수 없어 넘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와 말씀과 기도에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은 뜻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모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주님 곁으로 가게 됩니다.

 

여섯째 열심이 있었습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와 성경말씀을 실천하는 일에 열심히 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가 회개에 열심하고, 말씀 실천에 열심하면 온전한 주님의 그리스도인입니다. 듣기만 하고 회개도 없고, 실천도 없으면 듣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알고 행치 않는 것이 죄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벌하게 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성결 유지를 위한 범죄자의 징계를 말합니다. 교회의 책벌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범죄자를 벌 주지 않으면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사탄의 모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하나님의 지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거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12~16절의 말씀입니다.

12.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를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를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13.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말미암아 안심함을 얻었음이라

14. 내가 그에게 너희를 위하여 자랑한 것이 있더라도 부끄럽지 아니하니 우리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다 참된 것 같이 디도 앞에서 우리가 자랑한 것도 참되게 되었도다

15.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16.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

12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에게 쓴 것은 그 불의 행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불의 당한 자를 위한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불의를 행한 자란 고린도 교회에 나타나 바울이 가르친 복음을 배척하고 새로운 교훈을 주면서 바울을 대적한 거짓 선생들의 무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불의를 당한 자란 그들에게 피해를 받은 당사자로 바울 자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거짓 선생들을 대적하여 바울을 옹호해야 했지만, 그들은 바울의 복음을 전적으로 옹호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바울에 대하여 의심하며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보낼 때 고린도 교인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서 바울을 향한 간절함이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 보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같은 바울의 뜻이 맞아서 디도에 의해 보내 온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게 되었고 그뿐 아니라 디도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은 더욱 많은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평소에 디도에게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많은 자랑을 해 왔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번 일로 그 자랑이 거짓된 것이 아니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세상적인 근심은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계시지 않습니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쌓아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합니다. 세상 근심의 대부분은 돈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참된 믿음의 길로 가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며 축복의 길로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

저에게도 이 바울과 같은 노심초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근심하는 마음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 종은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할 근심에 있었는지 자신을 살피건대 용기 있게 양들에게 앞이 어떻게 되든 염려않고 성도에게 꼭 전해야 할 말은 얼마나 용기 있게 전했는지 미루고 두려워하고 놓치고 만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적당히 한 것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여 하나님의 복된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