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창세기 50: 15~21절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설교말씀: 악을 선으로!
사람이 살면서 억울한 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일을 당합니다. 내가 잘못을 안했어도 그런 일을 당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럽니다. 하나님 진짜 살아계신가? 저런 놈을 가만히 놔두나? 그렇게 저렇게 속이 많이 상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악한 일을 한 형제들에게 아주 착한 일을 하는 요셉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오늘 우리에게 착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에서 살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예전에 어떤 여자집사님 한 분이 갑자기 오른 팔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팔을 들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하고, 검사를 받아도,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뼈와 신경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오른 팔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는데, 상담을 통해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 집사님은 시어머니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는데 시어머니로부터 너무 심한 구박을 받다보니, 마음에 미움이 생겼고, 그런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자기 오른손으로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답니다.
그런데 막상 시어머니를 때릴 수는 없으니, 그 스트레스가 쌓여서.. 결국 오른 손을 들 수 없는 병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미움이 내 속에 있으면, 그것이 우리 자신을 병들게 합니다.
우리 심령은 물론이고, 우리 육체까지 병들게 합니다. 내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하나님 은혜도 못 받고, 당연히 은혜를 전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콩알만 한 미움이지만, 사실 그 작은 미움을 방치했기 때문에, 자기 인생 망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미운 사람이라도,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밉지만 사랑으로 자신을 버린 형제들을 품은 요셉에 대해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요셉이 받은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놀라운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8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야곱은 14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험악한 세월이었고 나그네 길이었다고 자신이 고백했습니다. 야곱은 유언으로 자기의 시신을 이집트에서 장사하지 말고 선조들이 묻힌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불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의 형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17세였을 때에 아버지 야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을 보고 형들이 시기가 나서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는 짐승들에게 물려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이집트 나라의 총리가 되었고 야곱의 가족들이 큰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이집트로 식량을 사러 왔다가 동생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가족 70여명은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팔아 넘겼던 그 동생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형들이 놀랐겠습니까? 형들의 마음속에는 요셉을 볼 때마다 죄책감으로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은 것입니다. 이제 10명의 형들은 불안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요셉이 우리를 가만 두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우리에게 앙갚음을 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짓고는 못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감쪽같이 동생을 팔아넘기고 아버지에게는 짐승의 피를 요셉의 옷에 발라서 짐승에게 죽은 것처럼 위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 막강한 권력자로 자신들 앞에 나타날 줄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형들은 두려움과 염려로 얼굴이 해쓱해지고 밥맛이 없었습니다. 언제 요셉이 군사들을 보내어 자기들을 잡아갈 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좋은 일을 하면 축복이 되어 돌아오지만, 나쁜 일을 하면 불행이 되어 반드시 돌아옵니다. 요셉의 형들은 견딜 수 없는 불안감으로 괴로워하다가 결국 동생 요셉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을 빙자하여 자신들을 용서해달라고 무릎을 꿇게 됩니다.
형들은 자신들을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형편이 뒤바뀐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이 17세 때에는 형들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울며 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그 어린 요셉의 안타까운 호소를 무시하고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이제는 그 형들이 요셉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형들의 그러한 모습을 본 요셉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한 때는 그렇게 힘세고 크게 보이던 형들이 이제는 약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하소연 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비굴하고 보기 싫은 모습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것입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약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강한 그러한 자세는 좋지 못합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우리 기독교인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의 권세보다 하나님의 권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요셉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절입니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요셉은 분명히 형들에게 보복할 권세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말 한마디면 형들은 감옥에 가야하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권세가 자기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자기가 이집트의 국무총리의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이 권세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권세를 가지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원수를 갚는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겸손과 온유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그만 권세가 높아도 자기 자랑하고 자기의 욕심을 챙기는 세태 속에서 보면 신기한 일입니다. 조그만 자기 마음에 안 들어도 물갈이 하려하고 자기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세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줍니다. 20절 말씀입니다.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압니다.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합니다.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손에 의해서 팔려 갈 때에 그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배신감으로 가득했겠습니까? 어떻게 자신의 형들이 동생을 이렇게 노예로 팔아먹을 수 있단 말인가! 좌절과 분노로 잠 못 이루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이 그런 좌절과 분노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고달픈 순간이 닥쳐왔어도,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요셉으로 하여금, 고난과 시험을 이기게 했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이기고 삶의 승리자가 됐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 머슴으로 팔려서 종살이 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만약, 인생을 비관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형들을 원망하며 살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낙오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고 힘든 상황에 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을 담아두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한 원망과 증오심을 담고 있으면 삶이 불행해집니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영혼이 병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한 고난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당한 그 억울함을 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믿음을 잃지 않았던 요셉을 통하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21절입니다.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또한 일반적으로 당한 사람들은 당한 만큼 갚아 줍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말입니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악을 갚지 않는 것도 대단한데 선으로 갚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당한 만큼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보복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저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책임지고 그들의 자녀들까지 기르겠다고 나섭니다. 보복대신에 사랑을 퍼부어 줍니다. 이것이 참된 용서입니다. 악을 갚지 않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으로 축복하여 주는 것 말입니다. 참된 용서란 상대방이 내가 정말로 용서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님들은 그동안 방패 막이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요셉이 복수하면 어쩌나하는 생각 때문 이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요셉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다 용서했는데 왜 형님들은 나의 용서를 아직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말인가? 상대방이 나의 용서를 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저들은 지금도 밤잠을 편히 자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생각합니다. 나 같으면 이런 문제 절대 용서 못해 그러니까 저 사람도 나를 용서하지 못 할꺼야. 다 자기 같은 줄 압니다. 그래서 그 수준에서 용서받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는 언젠가는 크게 당할 거야.” 하고 죄에 대한 형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왕 용서 하는 것 상대방이 용서 받았다는 용서의 확신을 찐하게 주십시오.
솔직히 용서가 내 힘으로 됩니까? 잘 안됩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모든 고난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구하여 내시려는 하나님의 한 과정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을 악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뒤집는 것입니다. “형님! 그때 꼭 그런 식으로 했어야 했습니까!”하고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미 다 끝난 문제를 들쑤셔 대기 시작합니다. 왜 선으로 끝난 문제를 악으로 다시 바꿉니까? 하나님이 덮으셨다면 이제 당신도 덮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앙심 깊은 여집사님께서 술주정뱅이 남편을 위하여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날마다 기도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우연히 술에 깨어 보던 남편이 묵직하고 지저분한 구두를 벗어서 아내에게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 집사님은 꼼짝도 않고 기도를 계속하였답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자신의 신발이 빛나게 닦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남편은 몹시 부끄러웠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뒤로 술을 딱 끊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이 집사님을 모시고 평생 살았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그 능력을 의지하여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다니고 예수님 믿으면서 살지만 항상 주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이깁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능력은 오로지 우리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겁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축복을 반드시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옵소서. 용서하지 못하여 괴롭게 살고, 풀지 못하여 힘들게 사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서, 요셉과 같이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자신의 영혼도 잘되는 축복을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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