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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강해 34) 사도바울의 자랑 (수요예배 20191218)

by 온누리선교 2019. 12. 17.


 

성경: 고린도후서 11:16~33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설교: 사도바울의 자랑

 

지렁이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벌레는 없습니다. 오죽하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이 다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자기의 부족과 약함을 깊이 깨달을 때 날카로운 타작기계가 산을 부스러뜨리듯이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힘과 수단으로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느낄 때는 참다운 축복을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다. "지렁이"라고 하는 이름을 받은 야곱도 언제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라고 하는 축복을 받았습니까? 많은 재산과 처자식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얍복 여울에 이르렀을 때 20년 전에 자기가 속여 먹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복수하여 죽이 려고 마중나온다는 말을 듣고 재산, 처자식 다 보내놓고 큰 두려움과 근심 가운데 캄캄한 밤에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자기의 환도뼈마져 천사가 쳐서 위골이 되어 싸울 수도 없고 뛸 수도 없이 심히 약해졌을 때 하나님께 항복하면서 매어달리다가 그러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사도 바울의 그 놀라운 능력과 축복은 곧 자기가 한없이 부족하고 약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잘나고 강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은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이도 성공적으로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참된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이 약함을 자랑하는 이야기를 통해 진짜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보고 우리도 그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6~21절입니다.

16.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18.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자기를 스스로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자기 자랑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 고린도 교인들이 복음에서 멀어질까봐 바울도 어리석은 자와 같이 자랑을 합니다(17).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하는 자랑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17) “육신을 따라 자랑하겠노라”(18)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도 교회 성도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어리석은 자와 같이 자랑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당시 고린도 교회를 어지럽히고 복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잘못된 신앙을 가진 거짓 선생들이 자신들의 자랑거리를 늘어놓아 고린도 성도들에게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고린도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주고 양육해 준 바울에 대해서 거짓 선생들이 비판하는 것을 받아 들여 사도 바울에게 대해 마음이 바뀌어진 상황이 나타나자 (18-20) 사도 바울은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때문에 세상에 있는 어리석은 자같이 되어 육체의 자랑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사도 바울과 같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일까요?

영적인 시험에 들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겸손히 자신이 세상적으로 자랑할 거리가 많았는데도 겸손히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를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자신들이 구원받고 신앙생활 하는데 작은 도움도 주지 않은 예루살렘에서 온 율법주의자들과 거짓 선생들에 대해서는 매우 호의적이고, 따르고 관대해서 그들의 실수나 잘못은 잘도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런 거짓선생들이나 율법주의자들이 고린도교회를 장악하고 성도들에게 매우 거친 행동을 하는데도 용납하고, 영적으로 잡아먹는데도 용납하고 있는 모습에 바울은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사장이나 경영자에게 가서 나를 사원으로 써달라고 신청한 사람이 마지막의 질문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습니까? 내가 결정하면 당신을 뽑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라고 질문을 한답니다. 그러면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점수를 많이 따는지 아십니까?

만약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자신감입니다. CEO들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현대회장 정주영 씨 책에 이기적인 목적을 두고 위선적 표현을 하는 자랑을 하지 말고 자기 표현을 확실하게 하라고 나옵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건방지거나 이기적이거나 욕심을 부려서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육신적 자랑을 자꾸 해서 그 자랑이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바울을 무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깎아버리려 하는 육신적 자랑을 자꾸 하니까 그러면 나도 자랑하겠노라.” 자기표현을 하는 이유를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에 보면 킹 아더라고 하는 임금님이 있었는데 전쟁을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여인들은 다 물러가라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하잖아요? 전쟁에 직접 참여한 병사들만 모아놓고 너희들 다 옷을 벗으라.” 하나도 옷을 입히지 않고 다 벗겼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뭐하시는 것인가?” 그랬더니 신하들을 데리고 그 많은 병사들을 일일이 몸을 검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신 일이 가장 상처가 많은 순으로 포상을 해줘라.” 옛날에는 칼로 전쟁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몸에 상처뿐입니다. 총알을 맞으면 죽지만 칼은 맞아도 상처뿐이지 죽지는 않을 수가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몸을 검사해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의 순으로 포상을 해주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난 상처는 하늘나라의 상급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될 수만 있으면 나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상처투성이여야 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내 몸에 지녔노라. 상처투성이의 사람이 되어라. 괜찮다.” 바울 사도의 자랑이었습니다. 이런 자랑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 나하고 한번 자랑을 해보자.” 바울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의 자랑을 바울이 자기 자랑을 갖다 대니까 아무 소리도 못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나라를 위한 상처는 영광입니다. 모두 그렇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세상과 다릅니다.

사도 바울의 자랑과 거짓 교사들의 자랑은 근본적으로 동기부터 달랐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스스로를 자랑하였지만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해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어리석고 미련한 자라는 평판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성도들의 영적 안녕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을 향한 불타는 사랑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눈에 더욱 어리석은 자로 보인 것은 어리석은 거짓 교사들을 용납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거짓 교사들의 평가에 대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담대한 것 이상으로 담대할 수 있는 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거짓 교사들이 자랑으로 내세우는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그 어떤 것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십자가에 못박혔던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살고, 십자가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요? 다마스쿠스 길 가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부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다 바울과 같은 경험을 하기를 사도 바울은 바랐습니다. 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사람이 된 그 놀라운 기적을 다 받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자랑이 다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이런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이 세상을 살지만 저 천국에서 사는 기쁨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은혜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모자름이 없는 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낮아지고 많은 것들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오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