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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38) 사랑의 마음으로 (수요예배 20200129)

by 온누리선교 2020. 1. 28.


 

성경: 고린도후서 12:11~21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16.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17.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8.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19.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설교: 사랑의 마음으로

 

오랜 세월동안 가지를 뻡고 키가 자라 제법 큰 호도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어서 빨리 열매를 많이 맺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불행하게도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도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몇 년 후 드디어 소원대로 큰 호도 알맹이를 주렁주렁 맺게 되었습니다. 호도나무는 속으로 기뻐하였습니다. 드디어 열매가 무르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오더니 돌맹이를 집어 호도나무를 향해 마구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호도가 와르르 떨어져 내렸습니다. 어느 날은 꼬마들이 긴 장대를 가져왔고, 또 어떤 때는 어른들이 몰려와 나무가 상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돌멩이를 던져댔습니다. 몇날 몇일을 이렇게 지낸 호도나무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가지고 여기저기 부러져 나갔습니다. 돌에 맞은 자리가 몹시도 아팠습니다. 나무는 자기의 찢긴 상처를 내려다 보며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 나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주려고 오랜 세월을 애쓰며 기다렸는데, 사람들은 정말 은혜를 모르는 구나!"

 

이런 똑같은 경우를 사도 바울도 당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정말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머물렀고, 오랫동안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교인들을 현혹하더니 교인들이 바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해했지만 자신에게 등을 돌린 고린도교인들을 향해 같은 방법으로 대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품고 그들을 향해 인내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음을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지식에 있어서나 당시의 유대 사회의 영향력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바울이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는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참여하였고,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갔습니다.

그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더 깊은 영적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실을 이 편지를 통해 밝히고 있는 자신이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강함보다는 자신의 약함을 더 자랑하는 그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사도바울의 사랑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자주 겪는 일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사랑으로 기도하고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더욱 힘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1~13절입니다.

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12.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3.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바울은 자신을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고린도 교회에 대해 사도권을 변호한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겁니다. 바울이 사도라는 사실을 변호하기 위해 복음사역에서 있었던 일을 많이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말은 졸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고 했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선교여행 하면서 겪은 숱한 고난과 마음 고생을 다 자랑했습니다. 또한 14년 전의 삼층천에 다녀온 신비체험까지도 말했고, 몸의 가시를 위해 기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도 고백했습니다. 이 모든 자랑을 고린도 교회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바울)를 너무 흉보지 말라는 겁니다. 바울은 자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14년 전의 신비체험을 이제 와서 자랑했습니까?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바울에게 당신은 사도가 아니라고 하니까, 나도 신비한 영적 체험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생색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만,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고생한 것을 말한 것은 자기가 사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결국 바울은 다른 어느 사도보다 자신이 부족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12절에서 사도의 표를 말합니다. 즉 사도의 증거물을 제시하는데,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바울이 사도됨의 물증으로 제시하며 자랑한 것이 다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토록 바울은 작심하고 자기가 사도임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다른 사도와 비교할 때 굳이 다른 것이나 부족한 것이 있다면 한 가지가 있는데, 너희(고린도 교회)에게 경제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은 것뿐이라고 합니다. 13절 말씀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이게 내 약점인데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용서 좀 해달라는 겁니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는 이것을 빌미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했습니다. 바울이 선교비를 받지 않은 것은 그가 무자격자이기에 무급으로 사역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의 사도권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이것이 흠이라면 용서하라는 겁니다. 바울은 내가 무자격자기이게 무급으로 일한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14~16절의 말씀입니다.

14.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이 말씀은 바울 사도의 <괴로움의 편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에게 있어서 눈물과 아픔을 안겨다 준 교회였습니다만,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 큰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 모릅니다. 여전히 사도에 대한 오해가 장벽처럼 높게 우뚝 서 있음을 봅니다.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14) 고 하는 말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마저 엿보입니다. “너희 영혼을 위하여 ~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15) 는 말에서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의 진한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단 한 번이라도 고린도교회나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준 적이 있느냐면서 오히려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거짓 교사들을 비난합니다. 교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도 주지 않고 여러 표징들을 행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기꺼이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이어서 고린도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비난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서신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했던 디도를 통해 고린도교인들이 다시 변화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에 이제 곧 세 번째 방문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번 방문이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경제적 이득이나 다른 속셈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사랑 때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19~210절입니다.

19.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21.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19) 는 말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까지 진실성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도는 이처럼 구차한 구걸하듯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까?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말입니다. 그것은 사도의 마음속에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20) 해서 이었습니다. ,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이번에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두렵다고 합니다. 또한 여전히 사람들이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하고있을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보고 싶지 않은 그런 모습들이 행여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이 절절히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섬기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사랑으로, 바울처럼 우리도 사랑의 마음으로 이 영혼들을 기도하며 섬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능력의 주님이시여!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사오니,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능력으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