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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골로새서 강해 19)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 (수요기도회20210629)

by 온누리선교 2021. 6. 29.

성경말씀: 골로새서 4:7~18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설교: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

 

일본 동경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경기장 확장을 위해 부근에 지은 지 3년밖에 안 되는 집을 헐게 되었는데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는 도중에 꼬리 쪽에 못이 박혀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부들이 집주인을 불러 이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집을 짓던 3년 전에 못을 박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3년 동안이나 못에 박혀 움직이지도 못하였을 텐데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습니다. 그래서 인부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숨어서 도마뱀을 온 종일 지켜보았더니 얼마 있으니까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마뱀은 못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하루에 몇 번씩 먹이를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삼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도마뱀의 우정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생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좋은 환경을 만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훌륭한 부모, 훌륭한 친구, 훌륭한 스승, 훌륭한 선배와 상사, 훌륭한 목회자나 믿음 좋은 분들을 만나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인생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육신의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행복 중에 하나가 되지만 그러나 믿음이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 됩니다. 육신적으로도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겠지만 그를 통하여 영혼까지 구원받고 천국을 향해 가는 거룩한 순례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영혼이 얼마나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그리스도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가 어떤 교회를 선택하여 그 교회를 중심으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중대하고 우선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 사람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사람을 만나야 하고 또 사람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 위대한 사도 바울 같은 인물을 만나서 세계 선교 역사의 장을 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위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가운데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는 '어떤 일에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개인을 위한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을 돕는 자들이요, 하나님 나라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권적인 사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동업자라고 말하고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동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숭고한 목적을 위해 함께 희생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로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보면서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함께 동역하는 일에 대해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9절의 말씀입니다.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본문에 나오는 오네시모'라는 사람은 '라오디게아'의 부자였던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노예였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3년간 강론을 할 때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큰 재산상의 피해를 끼치고 로마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자로서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오네시모가 어떻게 해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제국의 경제생활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 로마제국의 전체 인구가 1억 정도인데 그 중에 약 6천 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합니다.(미국남북전쟁 당시 4백만의 흑인 노예) 그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의 살아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영혼 없는 두발 가진 짐승과 같이 여겨졌습니다. 주인은 노예를 임의로 죽이거나 살릴 수 있었고, 사고 팔기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예의 발목에 쇠고랑을 채워도 되었습니다. 도망한 노예를 붙잡으면 사형이나 혹은 사지 중 일부를 절단하는 형을 가하기도 했고, 영원히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이마에 새빨갛게 달군 쇠로 도망자를 뜻하는 글자 'Fugitivas' 의 첫 글자 'F' 자를 낙인으로 찍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다 붙잡힌 노예는 다른 노예 보다 두 배의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 오네시모는 하나님의 나라에 무익한자였습니다. 그는 로마법을 위반한 도망한 노예였습니다. 그는 로마군사에 의해 체포될 경우 사형까지 당할 그런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 전도 사역에 '유익한' 자로 변했습니다. 복음에는 그와 같은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두나미스(권능)이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오네시모를 언급하면서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4: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오네시모를 부를 때 붙인 수식어를 한번 보십시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 때 주인을 속이고 도망을 쳤던 무익한 죄수 오네시모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로 탈바꿈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자에게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영접한 사람은 그 삶이 변화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은 오네시모의 과거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도 편지를 보내 오네시모를 종과 같이 대하지 말고 사랑 받는 형제로 여겨달라고 부탁을 합니다.(16) 예수 안에서 변화된 사람은 과거 그의 삶이 어떠했든지 관계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 믿기 전에 과거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가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는 우리의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오네시모의 변화된 삶은 그것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오네시모간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전해 오는 전설에 따르면 오네시모는 그 후 에베소 교회의 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빌레몬서를 쓴 지 50년이 지나서 안디옥의 주교였던 이그나시우스(Ignatius)가 에베소의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에베소의 주교 이름으로 오네시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오네시모 주교가 빌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와 동일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죽은 후 그가 여러 교회들에 보낸 편지들을 처음으로 모아서 각 교회에 전파한 곳이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주교 이름이 오네시모이고, 에베소 교회가 처음으로 바울의 편지를 수집하여 각 교회에 전파함으로써 바울의 서신서가 신약성경에 포함되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을 했다는 사실들을 생각할 때 본문에 나오는 오네시모가 후에 에베소 교회의 주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망친 노예의 신분에서 주 안에서 사랑 받는 형제로, 그리고 나아가서 에베소 교회의 주교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복음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용서의 힘이 있고, 사랑의 힘이 있고, 변화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 오네시모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변화된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용서 받은 죄인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받는 형제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형제로 여기고,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 주었듯이 우리가 서로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받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에바브라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바울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내륙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고향 골로새로 돌아와서 교회를 개척하고, 나중에 인근에 있던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도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개척교회 목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던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통해 예수를 만난 후 한결 같이 예수를 사랑했고, 자기에게 맡겨준 양들을 돌보는 데 힘을 쓴 사람입니다. 12절에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했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12:23)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매주 설교를 빠뜨리지 않는 것 처럼 기도를 빠뜨려서는 안됩니다. 에바브라는 사무엘처럼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라의 목회 인생에 큰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그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거짓교사들의 꾐에 넘어가서 신앙이 크게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라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을 찾아 갔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로마까지 갔습니다. 바울 당시 골로새에서 로마까지 여행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위해 에바브라와 같은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에바브라는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목회자였습니다.

 

14절의 말씀입니다.

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데마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소중한 동역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그를 마가, 아리스다고, 누가와 함께 자신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4) 그리고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함께 데마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4:14)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서 볼 때 데마는 마가, 누가와 함께 바울의 좋은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바울은 데마가 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10) 데마는 한 때 바울의 좋은 동역자였지만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을 보고서는 그를 져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데마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한 때 좋은 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날 신앙을 져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배교자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서 6장에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6:5~7)라고 했습니다. 데마가 일시적으로 바울의 곁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주님께로 돌아왔는지 혹은 영원히 예수님을 떠난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의 마지막 기록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의 곁은 떠났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네시모는 한 때 잘못을 저질렀지만 바울을 만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고 초대교회에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에바브라는 에베소에서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교회들을 세우고 항상 성도들을 위해 애써 기도하는 목회자였습니다. 그리고 데마는 신앙이 참 좋았으나 나중에 신앙을 져 버리고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떠났던 사람입니다.

 

오네시모는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그 끝이 아름다왔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에바브라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데마는 시작은 누구보다도 훌륭했지만 끝이 좋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네시모나 에바브라와 같은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들로 정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우리 안에 있어서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들임을 압니다. 우리가 자만하지 않고 오네시모나 에바브라와 같은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믿음을 끝ᄁᆞ지 지켜 천국에 가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