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데살로니가후서 1:1~4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설교: 바울의 감사
유리는 앞이 잘 보입니다. 상대방의 모습도, 불평할 만한 현실의 모습도 잘 보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똑같은 유리인데도 뒤에 수은이 발라졌기 때문에 거울에는 내 모습만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그리스도인인데도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불평할 상황만 보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자신의 허물이 보이고 약점이 보이며 죄스런 모습만 보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 받는 모습,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한 몸에 입은 모습, 하나님의 축복을 통째로 받은 모습만 보입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왜 이리 사랑해주신단 말인가? 왜 이리 은혜를 베풀어주신단 말인가?”
그래서 은혜받은 성도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감사만 합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유리 성도입니까? 아니면 거울 성도입니까?
이런 상황은 바울 사도가 살던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은혜로운 상황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지를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절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대단한 칭찬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칭찬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는 믿음이 성장하며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풍성하며 환난 중에 참는 인내가 있어서 바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준 것입니다. 3절과 4절에 이들에 대한 칭찬과 자랑이 나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너희 믿음이 더욱 자랐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면 목회자들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믿음은 밭에 심기운 씨앗과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쑥쑥 자라야 합니다. 물도 주고 밭도 가꾸어 주건만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눅 13장에서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도랑도 파고 거름도 주었건만 심은 지 삼 년이나 지나도 실과를 맺지 못하자 주인이 ‘어찌 땅만 허비하느냐 찍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쓸모가 없는 것처럼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성도는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말썽만 일으키는 것입니다. 고무신 같으면 잡아 당겨서라도 키우겠지만 그럴 수도 없어 목회자들은 답답할 뿐입니다. 한참 자라나야 할 어린애가 영양실조로 말라서 일어서지도 못할 때 그 어머니의 마음이 아픈 것처럼 목회자의 마음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성도들에게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경우, 성도들의 신앙이 만족스럽게 성장했습니다. 이럴 때 목회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목회의 크나큰 보람을 느끼며 성도들에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입니다. 생명력 있는 씨앗이기 때문에 자라기도 잘하거니와 번식력도 좋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비유하시기를 ‘천국은 마치 한말 가루 속에 넣은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작은 누룩은 한말의 가루를 전부 부풀게 하는 것처럼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과 멀리 하는 사람과는 그 결실의 차이가 굉장합니다. 그 씨앗을 아름다운 밭에 심으면 30배로 60배로 100배로 열매를 맺는데 좋은 밭이란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이며 이런 마음은 회개하여 깨끗해진 마음을 말합니다.
어떤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그 집사님은 지금껏 스스로의 별칭을 ‘나이롱 집사’라 하고 다녔습니다. 관광지에 갔다가 친구들을 따라 용한 점쟁이 방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점괘가 안 나온다고 야단을 떨더니 여기 예수 믿는 사람이 들어왔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친구가“너 때문이니 나가라.”하자 그 집사는“나는 나이롱이다.”하고 맞섰습니다. 그랬다가 친구들에게 밀려 자기가 나갔더니 금방 점괘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니이롱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성영이 함께 하시므로 점쟁이가 점을 못하도록 사단의 세력을 제압하는 믿음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로부터‘나이롱 집사’가 변하여‘믿음의 확신 집사’가 되어갔다는 내용입니다.
믿음의 진보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요?
사람의 속임수, 간사한 유혹, 세상의 풍조 의심 욕심등입니다. 이런 풍조에 휩쓸리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또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서로가 각기 다 사랑함이 풍성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사랑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물론 사랑의 근본적 관계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어서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데로부터 우리의 신앙이 시작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음 단계는 그 사랑을 사람들과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 놓인 교우를 모른 체한다면 아무리 믿음을 외쳐도 자랑스러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서로 돕고 격려하며 나누어 주면서 형제 같은 사랑으로 교제하는 모습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 공동체의 사랑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같은 교우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며, 그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려 노력했는가요?
이것이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이 없어요. 나를 사랑해 주지 않거든요.”이것이야말로 미숙한 사랑입니 다. 그는 자기가 사랑을 받아야만 남을 사랑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에 먼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랑은 사랑하는 것에 마음을 씁니다. 내 사랑은 이미 주님께로부터 넉넉히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남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니까요. 내 자신과 우리 교회도 남에 대한 사랑이 성숙한 사랑이 되어야만 자랑스러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사회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과제를 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에 사는 청소년 200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한 뒤 그들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의 평가는 동일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절대로 미래가 없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25년이 지났습니다. 다른 교수가 이 연구 결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시 과제를 냈습니다. '25년 전의 청소년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망하거나 이사를 간 20명을 뺀 180명 중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변호사, 의사, 사업가 등 상류층 인사들도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교수는 추가로 '이유를 알아 보라'고 학생들에게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한 여(女) 선생님 덕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낸 교수가 '도대체 어떤 교육 방법을 썼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늙어버린 여교사의 대답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했다'였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사랑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뜨거움에서 자랍니다.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어 가질려는 마음이 있을 때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사랑은 쓰면 쓸수록 더욱 뜨겁게 발산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내가 하고자 할 때 비로소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 이상의 사랑은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의 이 새 계명을 지켰으며 이로 인하여 바울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합니다. 4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견뎌 나갔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그들의 믿음을 칭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언제 어디서 나타나는 줄 아십니까? 핍박과 환난 중에 인내하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인내와 믿음은 금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사랑과 믿음이 없으면 핍박과 환난 중에 끝까지 인내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오래 전 영국의 한 아버지가 아들의 질문에 자상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당시 사전이 없던 시절이라 아들은 조그만 수첩에 아버지의 설명을 가득 적어 놓았습니다.『사랑이란 뭐예요?』 『사랑이란 아끼고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는 마음이란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습니다. 아들은 자라면서 사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스스로 생각 하는 교육」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커서 위대한 철학자 경제학 자가 된 밀(1806~73)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는 예술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매일 6시간씩 연습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왜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헤비급 챔피언 제임스 콜베트는 늘 이렇게 말했다합니다. 1라운드만 더 싸우면 챔피언이 된다. 모든 일이 힘겹겠지만 1라운드만 더 싸우면 된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성도들의 공동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며, 그중의 하나가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는 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교회가 자랑할 조건은 성장하는 믿음, 풍성한 사랑, 인내하는 신앙의 세 가지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생활을 잘하여 바울의 자랑이 되고 하나님께 감사가 된 것처럼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인내로 하나님꼐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주님!
앞으로도 이러한 은혜를 계속 붙들고 나아가서 모든 상황과 형편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이룬 믿음과 사랑의 풍성함을 저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인내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경험하기를 원하오니 우리를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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