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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고후 1:4, 주일예배 20220327)

by 온누리선교 2022. 3. 26.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설교: 환난중에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

 

어린 소년이 연못가에서 손으로 만든 작은 종이배를 띄우며 놀고 있었는데 배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밀려나자 소년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소년의 형이 배가 나가는 방향에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더 소리 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이 던지는 돌맹이가 배를 맞추어 가라앉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해서 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던진 돌맹이 때문에 서서히 물에 물결이 생겨 배가 뭍으로 점점 움직여 왔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대부분도 어린 소년과 같이 고난의 물결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앞에 떨어지면 당황하고 울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려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승리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리고 더 넓고 더 크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주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그 위로의 음성을 우리 모두가 말씀을 통해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절입니다.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자비 앞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로 그 자비 곧 자비 그 자체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위로 곧 온전한 위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여기서 위로란 어려움을 당할 때 이에 맞서 승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 격려하는 힘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위로는 자신의 문제를 극복할 정도만 힘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 중에 있는 모든 자들을 능히 위로할 수 있을 정도로 차고 넘치는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크고 작은 고통의 순간들이 많고 많은 고난과 환란이 많은 이 세상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이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러면 주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에 대해 방관하고 계실까요? 공감하실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인디언 한 부족에는 이런 성년식이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에게 칼쓰기, 창던지기, 활쏘기 같은 강도 높은 무술을 가르칩니다.

그런 다음에 13살이 되면, 남자아이들을 깊은 산 속에 데리고 가서 혼자 남겨두고 옵니다. 깊은 산속에는 위험한 일도 많은데 거기에서 살아 돌아와야 성인으로 인정받습니다.

이 부족의 한 소년이 13세가 되었을 때 캄캄한 밤에 눈 가리개로 그의 눈을 가리고 말에 태워 깊은 산속으로 데리고 가서 그 소년만 그곳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산 속에 혼자 남은 소년은 무서워 떱니다. 사방이 무섭습니다. 낙엽소리가 들려도 호랑이가 접근하는 것처럼 무섭게 느껴집니다.

정말 무서워 떨며 밤을 보내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맹수가 공격해 오는 꿈을 꿉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보니 동이 트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펴보는데, 저편 바위 옆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보니, 바로 자기 아버지입니다. 창과 칼과 활로 무장한 아버지가 짐승이 아들을 해칠까봐 밤을 지새우며 아들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고통과 근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픔과 실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험과 환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할 수 있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하시면 겁날 것 없습니다. 주님은 내 편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내가 너를 위로하는데 왜 낙심하느냐? 내가 너와 함께 하는데 왜 낙심하느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참으로 힘있게 고난 중에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 받아 살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환란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과 위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위로도 넘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고난에 참여한 것같이 위로에도 참여할 줄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3-10절 사이를 살펴보면 고난, 고생, 사형선고, 큰 사망환난을 나타내는 단어가 10번 나오며, ‘위로역시 10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환난과 위로는 개인에게 있어서 이처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바울은 자신의 예를 들어 개인의 고난과 위로가 신앙공동체에도 상관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는 고난과 위로에 참여한다는 표현을 신앙 공동체의 교제를 나타내는 헬라어인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를 일부러 사용해서 그 뜻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이 말을 한 것은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난과 위로는 결코 개인만의 것이 아닙니다.

26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일 또 매일 고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교회 안에서 만난 모든 영혼을 모두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위로를 이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서로서로 받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미국에 뷸라(Beulah)라는 한 성실한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갑자기 급성 관절염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몸은 치료할 수도 없게 굳어졌습니다.

그녀의 오른쪽 손가락의 신경만 왕성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하늘과 운명과 세상을 원망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오른쪽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전화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병실에 전화를 설치하고 병상의 환자들과 가족, 친구를 잃고 슬픔에 젖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이 마음을 바꾸어 새로운 삶을 다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로의 전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너무 깊숙히 감추어 놓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합니다.

욥기 57절에 보니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가벼운 불티가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듯이, 인생에 고난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에게 전혀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으리만치 엄청난 시련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눈을 들어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절절하게 고난과 위로의 하나님을 전했던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의 하나님을 이 세상 끝까지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통 가운데 낙심할 때 우리에게 조용히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는 주님,

내 힘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의인의 길에 약속된 것들을 바라보며 낙망하지 않고 세상의 유혹을 이기게 하소서.

우리 가정과 교회가 위로의 터전, 격려의 터전, 축복의 터전이 되게 하옵소서.

지금 당장 힘들지라도 정직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시고 끝까지 십자가 위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본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