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디모데전서 6:17~21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설교: 선한 사업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신자가 평생에 힘쓸 가장 큰 의무는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마음 씀, 그리고 삶 전체가 그 유일한 동기에 의하여 지배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기를 구원하신 계획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선(善)한 삶, 곧 착한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도, 성경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디모데전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디모데전서 6:11절부터 계속되는 바울 사도의 디모데에 대한 개인적인 권면의 말씀입니다. 6:11-16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영생을 취하기 위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부한 자들이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힘쓰도록 권면하라고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17-19). 그리고 끝으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다시금 이단 사상과 거짓 교훈을 경계함으로써 믿음을 굳게 지킬 것을 당부하면서 끝맺는 인사로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20-21).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전서를 마무리 하면서 디모데로 하여금 부한 자들에게 권면하라고 하는 이 권면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의미있는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17~19절의 말씀입니다.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농촌 친구도 별로 없이 인색한 부인이 어느 날 자기 채소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배고픈 거지가, "마님! 먹을 것 하나만 주세요."하고 구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인색한 부인은 탐스럽게 열린 토마토나 오이, 가지 같은 것은 아깝게 생각하고, 다른 것이 없나 하고 돌아보니 밭고랑 언덕에 씨가 잘못 떨어져 자라고 있는 무 한 포기가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뽑아서는 선심이나 쓰듯이 거지에게 던졌습니다. 인색한 부인으로서는 그 나마 평생 처음 좋은 일을 한 셈이었습니다. 얼마 후, 이 부인이 죽게 되어 세상을 떠나간 곳이 지옥이었습니다. 지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을 때에 한동안 부인을 맡고 있던 천사가 그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부인은 큰 소리로 천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세상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하였는데 왜 이런 지옥에 보냈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천사는, "무슨 착한 일을 하였느냐?"고 물었더니, 부인은 대답하기를 "아무 때나 배가 고파하는 거지에게 무 한 포기를 준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에 천사는, "한번 확인하고 오겠다."고 하고는, 창고에 들어가서 여인이 행한 착한 일을 찾아보니 과연 시들시들한 무 한 포기가 여인의 이름밑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천사는 그 무 한 포기로 부인을 건질 수 있을까 하여 무잎을 들고는 부인더러 무 밑둥을 단단히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지옥에서 낙원을 향하여 날아올라갔습니다. 부인은 너무 기뻐서 옆을 바라보니 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이웃집 부인도 무엇을 붙잡고 따라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이 부인은 눈을 흘기면서 '원, 저 따위가 다 낙원에 가다니'하고는 옆에 있는 부인을 발길을 걷어찼습니다. 그랬더니 무를 잡고 올라가던 부인은 그네를 뛰듯이 흔들거리다가 줄기가 끊어지는 바람에 지옥으로 다시 떨어지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적은 것이라도 구제하는 일은 귀한 것이지만 이웃과의 원수 맺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을 알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를 마무리하면서 디모데로 하여금 부한 자들을 권면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디모데로 하여금 부한 자들을 어떻게 권면하라고 합니까? 17-19절의 말씀은 부하게 되려고 하는 자들을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한 자들에게 권면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에베소는 아시아 주의 수도로서 상업이 매우 융성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에베소교회에도 부유한 신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와 같이 이미 부유한 성도들이 어떻게 그 재물을 선용해야 하는지를 디모데로 하여금 권면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 말씀을 보면 “부 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 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부 하려고 하는 자들은 결국 침륜과 멸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곧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돈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서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합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을 믿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모든 삶과 장래를 자기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온갖 근심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주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부 하려고 하는 자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아니라 이미 부한 자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당부의 말을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하고 있습니다.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바그다드라는 중동의 어떤 왕국에 어린 왕자가 강에서 놀다가 그만 거센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습니다. 왕은 자기의 군대를 총동원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찾기 위해 며칠간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강 하류를 샅샅이 수색해도 왕자를 찾지 못한 왕은 자기 아들이 죽은 줄 알고 크게 낙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러 주간이 지난 후에야 왕자가 어느 깊은 강의 바위 위에서 살아있는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왕은 놀랍게 살아난 왕자에게 어떻게 살아 있게 되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왕자는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강 위를 떠내려가다가 다행히 강 한복판에 우뚝 솟은 바위에 걸려서 바위 위로 올라올 수가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빵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가 떠내려와
그것을 먹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빵이 들어있던 가죽주머니에는“모하메트벳 핫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사람을 수색해 보았더니 강가에 정말 그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가죽에 빵을 담아서 강 하류로 떠내려보냈던 것입니다. 왕이 그에게 그렇게 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선행을 하라, 빵을 물위에 던지라. 그러면 그대에게 어느 날 반드시 보상되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 속담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물위로 떠내려 보내는 이 빵 조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한 선행이었지만 이것이 기대하지 않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를 마치면서 디모데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디모데에게 자신이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바른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며,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들은 이미 믿음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21a절을 보면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3-4절 말씀을 보면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디모데전서 4:1-2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6:9-10절 말씀을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처음부터 믿음에서 벗어난 자들에 대해서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의 말씀으로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경계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1:5절 말씀에 보면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이 경계하는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르게 알고 믿기 위한 것입니다. 바르게 알고 믿는다면 당연히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오는 사랑으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요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며 바울은 서신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일에 더욱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더욱 힘써 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선한 일을 행하며, 선한 사업에 부하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당신의 선한 백성으로서 주님의 귀한 일들을 감당하게 하시고 주님의 자랑스런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로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을 후히 누리는 축복의 사람들로 세워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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