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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강해 1) 받은 은사대로 (딤후 1:1-7, 수요기도회 20220622)

by 온누리선교 2022. 6. 22.

성경말씀: 디모데후서 1:1-7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설교:받은 은사대로

 

영성의 징표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방언이든 뭐든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는 것은 사랑의 원리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성품이 방언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만약 방언이 성숙한 영성의 징표이자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라면, 다음에 열거한 영적 거인들 - 어거스틴, 칼빈, 루터, 낙스, 웨슬레, 휫필드, 번연, 조나단, 에드워드, 피니, 위클리프, 케리, 조지 뮬러, 허드슨 테일러, 아도니람 저드슨, 스펄전, 무디, 빌리 그래함 등등 - 이 한 번도 방언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지 않습니까? 은사는 사랑 안에서 발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 때 무아지경의 소리를 하게 되면 알아들을 수 없을 뿐더러 (통역이 안될 경우) 무익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심리적인 가치나 주관적인 영적 활동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닐 뿐더러, 자기 지위의 상승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은사는 다른 신자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기 위한 것입니다. 각각의 은사의 활용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생각은 그것이 교회를 세워주는가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받은 은사대로 행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역의 시간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음을 직감했기에 자신의 사역을 계승할 디모데의 믿음을 격려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받은 은사에 대해 생각해보고 어떻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힙니다. 바울이 이를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꿈이나 야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전하는 일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이기적 가치관과 야망을 위해 오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다면 그것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 확신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애정이 담긴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성도는 서로 축복하는 관계입니다. 서로 축복하는 데는 지위와 신분이 상관없습니다. 어떤 관계이든지 믿음 안에서 한 형제자매 된 우리는 서로에게 참된 축복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빅토르 프랑클 (Frankl) 2차 대전중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때의 체험담인 "밤과 안개"라는 책에 이런 경험을 고백하였습니다. 수용소의 유태인들은 병으로 죽어가고 차례차례 가스실로 보내져 학살되고 있었습니다. 프랑클 교수 자신도 영양실조로 몹시 쇠약해졌으며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죽음의 날만 기다리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체포되는 당시 뿔뿔이 헤어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내를 생각하였습니다. 자기도 고통스럽지만 여자의 몸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를 할 때, 이상하게도 자신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고 약한 몸을 일으켜 노동을 감수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프랑클 교수는 이런 말을 썼습니다.

"누구든지 좋으니까 그대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 가지면서 살아 보라. 그대는 예상치도 않았던 힘이 어디선가 솟아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도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되 특히 주님과의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들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3~5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를 생각하며 편지를 적고 있는 바울은 축복의 인사를 마치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디모데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 그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디모데의 모든 상황과 형편이 비록 어려울지라도 그가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바울에게 말할 수 없는 감사 제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감사와 함께 디모데를 떠올릴 때 바울은 그의 눈물을 떠올립니다. 이 눈물은 밀레도에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과 헤어질 때 디모데가 흘린 눈물입니다(20:37), 그것을 떠올리다 보면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은 디모데가 매우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다시 만난다면 너무도 큰 기쁨과 위로를 얻으리라 확신하며 그를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러한 신뢰를 받고 있는 디모데는 누구입니까?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향하여 아들’ ‘나와 함께 수고한자’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라고 하였습니다.

2천년 전 로마제국 내에서 상권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 인구가 적은 시골 마을 루스드라 출신, 그의 존재가 매우 미약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십대의 디모데가 자신의 고향 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로부터도 칭찬받음을 다보고 알고 계셨습니다. 디모데는 고향 루스드라뿐아니라 인근 마을 이고니온 사람들로 부터도 칭찬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은 36Km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고, 전국과 세계를 강타하는 놀라운 사람들도 있지만, 사람이 보는 기준이 아니라 그 작은 마을에서 칭찬받는 것을 주님이 다 보고 계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시골 마을의 어린 디모데를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때에 바울의 동역자로 눈에 들어오게 하셔서 사용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나이는 18세 정도의 그를 바울이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 (딤후15)라고 인정하였습니다.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면서 바울이 디모데를 선택하여 평생의 동역자로 함께 했습니다.

그의 할머니는 로이스, 어머니는 유니게로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헬라인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 디모데를 낳았습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였습니다.

홀 할머니 로이스, 홀어머니 유니게의 외로운 기도의 간절함이 주님께 열납 된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린 디모데는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를 방문한 바울로부터 복음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복음을 전한 바울이 유대교인들의 선동으로 사람들로부터 끌려 나가 돌팔매질을 당하고 내팽겨 쳐진 것을 자신의 눈으로 다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참된 제자의 삶을 선택하여 바울의 전도여행을 따라나선 것은 바로 주님이 선택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이어서 디모데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6-7절의 말씀입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바울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 디모데를 격려하고 권면합니다. 가장 먼저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디모데는 당시 큰 두려움 앞에 직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사역자로서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딤전 4:12). 육체가 연약하여 두려워했습니다(딤전 5:23). 성도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도 두려워했습니다. (딤전 1:3~7). 든든한 지원자였던 바울이 감옥에 갇힌 현실도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인한 감격으로 기뻐함이 분명하고 또렷할 때, 그 안에서 샘솟는 기쁨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감사하는 시기에는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고, 또한 어떠한 어려움도 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

우리들은 고독하고 어려운 일에는 더 이상 도전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과 예수님을 등지고서 세상을 통하여 우리 자신들의 유익과 평안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나아가기 시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주님께서 이미 주셨는데 믿지 못하고, 또한 알지 못하여 사단의 권세에 눌려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5장에 보면 이삭이 40세에 결혼해서 20년 동안 아이가 없다가 나이 60세에 쌍둥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을 얻었고, 에서는 장남이었습니다, 장자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한낫 배고픔 때문에 절제하지 못하고 그 장자권을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이것은 곧 절제라는 복을 지키는 그릇 또한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약속된 복들은 땅으로 다 흩어져 밟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환경, 형편,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사명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못하도록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을 주신 주님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주의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살 수 있게 해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낙망하지 않고 육체의 연약함도 이기며 살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