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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강해 10)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수요기도회, 20220817)

by 온누리선교 2022. 8. 17.

성경말씀: 디모데후서 4:1-6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설교: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걱정 말아요. 나에게 계획이 있으니까." 고장난 차 안에서 한 남자가 그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길옆에 차를 몇 시간이나 세워두고,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렸습니다.

"잠깐만요. 당신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해요'라며 그의 아내가 반박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의 계획을 믿을 수 없어요. 이 황량한 길로 우리를 데려온 것도 당신 계획이었잖아요."

인간의 계획이란 늘 이런 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결코 실패하지 아니하시며 그가 하려고 하신 것들을 이루시고야 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일뿐 아니라 모든 사건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으로 부르신 것은 마치 외과의사가 우리를 수술대로 부른 것과 같습니다. 그들의 칼은 무서운 고통을 줍니다. 이 고통을 부인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원하여 이 칼에 우리를 맡깁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의 몸을 맡기는 것은 그 고통을 통해 우리가 더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려움을 선으로 바꾸어 주신 것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며, 또한 그의 완전한 계획을 일깨워주십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이 격려를 잘 받으면 우리는 어려운 고통을 견딜 수 있고, 우리의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잘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님의 복음을 위해 어떠한 고통과 유혹 가운데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함께 나누는 말씀 가운데 큰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전·후서는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써서 보낸 편지입니다. 특히 순교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순간에 보낸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언서’, ‘바울의 신앙고백서등으로 불립니다. 사람은 죽음을 앞두면 누구나 진지해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진지한 순간이 그때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서신은 단순한 격려와 권면의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가장 진지한 말씀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헬라어 성경으로는 1절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는 엄히 명하노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꼭 지키라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그 내용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의 명령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님을 설명하는데, 그분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시고, 다시 나타나실 분이시라고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은 사도신경에서도 고백하는 내용으로,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과 지금 사는 모든 사람, 그리고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사람이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예수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나타나실 것은 주님의 재림을 뜻합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의 심판주가 되시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주가 되신다고 하는 것을 아주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는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내어 쉰 후에는 주님 앞에 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어느 순간에 뒤를 돌아보면서, 과거 그때 다르게 살 걸, 바르게 살 걸, 더 나은 삶을 살 걸 하고 깊은 아쉬움의 한숨을 토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라도 새롭게 살면 됩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더 바르게, 더 나은 것을 선택하면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지고, 새로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섰을 때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서게 되는 그날을 의식하며 사는 것보다 더 성숙한 삶이 없고, 더 가치 있는 삶이 없습니다.

모라비아 교회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최초로 그린랜드에 파견되었을 때 그들은 그 곳 사람들에게 먼저 자연종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단 한사람의 개종자를 얻는데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정도로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카야르낙이라는 매우 사악한 사내가 선교사의 움막에 들렀다가 우연히 선교사가 성경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선교사가 읽고 있었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마지막 한 주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원주민은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죄인들은 그 분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에게 자세히 말씀히 주십시오. 저도 구원받고 싶습니다."

뜻밖의 일에 선교사는 깜짝 놀랐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야르낙과 그의 가족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린랜드에서 구주께 드려진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선교사들은 죄인들에게 가장 먼저 설교해야 할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고 합니다. 흔히 이 말씀은 복음 전파, 전도와 선교의 당위성에 대해서 말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근거로 총동원 전도 주일과 같은 행사를 하기도 하고, ‘불신자(VIP로 부르기도 한다) 초청의 날과 같은 순서를 갖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기 때문에 전도를 위한 본문으로 쓰면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말씀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지, 어떤 상황에 주어진 것인지, 어떤 맥락 속에서 주어졌는지를 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후에 바르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전서 포함)는 죽음을 목전에 둔 노 목회자가 아들과 같은 젊은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또한 3장에는 말세에 있게 될 타락상과 거짓 교사들의 실상과 최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목회자가 교우들에게 복음 전파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한 말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목회자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를 한 동사로 표현하면, ‘전도하라가 아니라 설교하라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3-5절의 말씀입니다.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는 때가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때입니다. ‘바른이라는 단어 앞에 작은 숫자 이 있고, 아래를 보시면, ‘건전한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른 교훈’, ‘건전한 교훈보다 호기심을 끄는 교훈’, ‘정답을 제시하는 것 같은(정답이 아니다) 교훈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은 영상시대라 말씀 영상도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 내 호기심을 끄느냐, 어떤 말씀이 나를 편하게 해 주느냐가 아니라 어떤 말씀이 바른 것이고, 어떤 말씀이 건전한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또 그때는 귀가 가려워서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는 시대라고 합니다.

스승(선생)을 둔다는 것은 그분을 존중하고, 자기 생각을 그분에게 맞추고, 그분의 삶의 발자취를 자신도 따라가기 위함일 것입니다. 즉 자신을 스승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승을 많이 두는데 그 스승을 따르고, 그 스승에 맞추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사욕(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스승을 많이 둔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욕망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나 그 무엇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때는 사람들이 진리를 떠나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시대라고 합니다. ‘허탄한 이야기는 디모데전서에서는 신화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듣는 것보다 허탄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진리는 밋밋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반복적이어서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밋밋하게 보이고, 반복적인 것이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때 제가 종종 했던 말 중의 하나는 인사만 잘해도 존중받는다였습니다.

입으로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삶이 진리 위에 있고, 그 삶이 복음적인 사람은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입으로 말하기만 하는 진리, 귀로 듣기만 한 하는 진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지 않고, 삶으로 말하고, 삶으로 듣는 진리가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그래셔 5절은 그러나 너는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너 자신의 삶이 중요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 가장 강조하는 단어는 너는입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보다 나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신중하다술에 취하지 않다입니다. 술은 단지 마시는 액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일은 구호를 외치거나 캠페인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바울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오늘 본문과 같은 고백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다메섹으로 가던 그를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나 주신 후에, 그가 그의 생애를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곁에 서서 그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선한 싸움으로 우리의 달려갈 길을 신실하게 달리며, 믿음을 지키는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곁에서 힘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것을 늘 기억하고 포기하지 않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의 인생을 살았든, 또 우리의 남은 인생의 길이가 얼마이든, 우리가 이 땅에서 허락하신 마지막 숨을 내어 쉰 후에는 우리의 삶을 셈하실 주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주님을 스승 삼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길에 등과 빛인 것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