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빌레몬서 1:13-19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설교: 사랑받는 형제로
오늘 말씀에 보면, 바울은 빌레몬에게 더 강력한 표현으로 오네시모를 용서할 것을 권합니다.
우리는 이 짧은 편지 안에서 바울이 영적 제자요 아들인 빌레몬에게 보내는 사랑의 부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빌레몬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담긴 사랑의 부탁입니다. 빌레몬의 사랑의 선처를 기대하는 사랑의 부탁입니다.
우리는 이 바울이 빌레몬에게 전하는 사랑의 부탁 안에서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사랑의 부탁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부탁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기대하는 사랑의 부탁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요, 자매요, 하나님의 자녀로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사이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연결된 관계임을 사도 바울을 통해 아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3~14절의 말씀입니다.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빌레몬 대신 오네시모가 자신의 곁에 머무르며 자신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의 승낙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노예는 그 주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주인의 승낙 없이 바울 마음대로 결정 할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와 함께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그를 용서해 줄 것을 권면하고 오네시모를 내 곁으로 보내도 되지만 억지로는 하지 말고 빌레몬 너의 자의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값을 지불하고 산 노예를 보내라고 하는 것은 빌레몬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더욱이 오네시모는 종 곧 노예로서 주인의 돈을 가지고 도망친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법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노예가 도망칠 경우 당시 사회의 질서와 기강을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죽일 수 있게 했습니다. 게다가 오네시모처럼 돈을 가지고 도망칠 경우 그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죽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지금 죽여 마땅한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탁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무리한 부탁입니다. 어떻게 죽여야 할 사람을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고 또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은 채 용서하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빌레몬이 잠시 오네시모를 잃은 것은 그를 빌레몬의 곁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계속 있었더라면 영원히 주님을 만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입니다. 당시 문화적으로 노예는 주인의 소유였고 주인에게 인격적으로 대우받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오네시모가 주인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도망쳤을까? 빌레몬은 훌륭한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헌신이, 과연 자신의 노예도 미쳤을까? 당시의 문화에 노예는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성도로 생각하며 믿음의 교제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편지를 통하여 노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었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씀의 실천이 노예에게도 미쳐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비록 죄를 짓고 도망쳐 로마로 왔지만 거기서 바울을 만나 새로운 오네시모가 되었고,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으로 빌레몬 역시 새로운 빌레몬이 되어야만 오네시모를 영원히 네 곁에 둘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왜 그렇게 오네시모가 필요한 것입니까? 그리고 왜 이렇게 빌레몬에게 간절히 요청하는 걸까요? 16절에서 19절의 말씀입니다.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본문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라는 부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1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니까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주 안에서 형제로 대해 주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용서할 뿐 아니라 그를 사랑하여 형제로 친구로 세워주는 일은 더욱 힘 드는 일입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구약 인물들 중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을 꼽으라면 요셉을 들게 됩니다. 그의 성품 속에 예수님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품이 나타나는 말씀들 가운데 하나가 창세기 45:5 이하의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미워하고 시기하던 형들 때문에 어린 시절 애굽에 종으로 팔려왔습니다. 그리고 정말 험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긴 세월이 흘러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자기는 애굽의 총리가 됐고, 형들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러 요셉 앞에 왔습니다. 요셉은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때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했습니다. 비록 형들이 자기를 미워해서 애굽에 종이 되어오게 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자기 가문과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섭리가 있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도 깨달았습니다. 비록 형들이 밉지만 저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계속 형으로 세워주고 사랑하며 관계를 세워가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형제로 동역자로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부탁을 합니다. 우선 오네시모의 모든 죄와 잘못을 용서하라는 부탁입니다. 다음으로 저를 사랑받는 형제로 세우라는 부탁입니다. 이제 본문을 보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빌레몬을 대신하여 정식으로 자기에게 파송하여 보내라는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뒷바라지 하여 오네시모를 바울에게로 사명을 주어 파송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탁은 무리한 부탁입니다. 또한 염치없는 부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특별한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다른 은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명에 맞게 그리고 그 은사에 맞게 하나님을 위해 일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간청하며 부탁하고 있습니다.
김제시 금산리에 ‘ㄱ자 교회’로 알려진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 전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한말 레위스 테이드 선교사님이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때 그 고장에서 가장 큰 부자인 조덕삼이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게 됐습니다. 이분이 예수를 믿기로 하고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 이 집에는 마부 이자익이라는 청년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도 주인을 따라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교회가 부흥되어 장로를 세워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주인인 조덕삼과 마부인 이자익이 경쟁을 하게 됐습니다. 놀랍게도 주인은 떨어지고 마부인 청년 이자익이 장로로 피택 됐습니다. 이 때 주인 조덕삼은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서 교회에서 자기 집 마부를 장로로 깍듯이 받들었습니다. 물론 집에 오면 이자익은 마부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조덕삼은 주일에 선교사님이 오지 못할 때 이자익 청년으로 하여금 설교하게 했고, 자기는 마루에 꿇어앉아 설교를 들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조덕삼은 이자익을 평양신학교로 보내서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2대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자익 청년이 신학공부가 끝나자 다시 교회로 청빙하여 목사로 목회하게 했습니다. 조덕삼 장로는 최선을 다해 이자익 목사를 뒷바라지 했습니다. 마침내 이자익 목사님은 조선 기독교를 이끄는 총회장이 됐고, 그것도 세 번이나 다시 총회장으로 세움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조덕삼 장로님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의 사랑의 뒷바라지가 있었기에 총회장이 되어 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사랑의 뒷바라지로 주의 일꾼을 파송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네시모와 같은 빚이 있는 죄의 종입니다. 그러나 그 빚을 주님께서 대신 지불해 주심으로 ‘사랑 받는 형제’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을 항상 생각하며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다른 이들을 용서하라는 말씀,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고 세우라는 말씀을 마음깊이 새깁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 우리에게 죄를 진 사람 그들을 용서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저들을 용서하겠습니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들을 친구로 형제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우리는 세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아서 저들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은사와 사명을 살펴서 주를 위해 일하게끔 그들을 가르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에 늘 거하기를 원하오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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