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빌레몬서 1:20-25
20.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2.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설교: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혹시 비행기의 조종실을 구경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입구에 들어가다 보면 왼쪽편에 조종실이 있습니다. 이따금씩 조종실 문이 열려 있을 때가 있습니다. 흘깃 그 안을 들여다봅니다. 아주 좁은 공간입니다. 조그마한 유리창이 있고, 의자가 몇 개 놓여있을 뿐입니다. 그곳은 복잡한 기계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비록 조종실은 좁지만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전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종실 안에 조종사들이 앉아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공간이지만 테러범들이 그곳을 장악했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이번에 일어났던 동시다발 테러사건처럼 비행기가 가다가 정상궤도에서 이탈해 버립니다. 대형빌딩에 가서 내려 꼽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 계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면 우리의 마음은 주님이 계신 나라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빛과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움과 증오에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틈타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내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빌레몬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용서의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미움의 찌꺼기가 남아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오네시모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해묵은 미움의 찌꺼기를 완전히 씻어버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오네시모를 깨끗이 용서하고, 우리 마음에 빛과 사랑이 넘치는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1절의 말씀입니다.
20.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아무리 바울이 빌레몬에게는 신앙의 아버지 같을 지라도 오네시모를 위해 부탁하는 일은 그리 쉽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며 빌레몬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 된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지내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 다툼으로 인하여 틈이 생겼을 때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라도 섣불리 화해를 위해 둘 사이에 끼어들기란 쉬운일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 나섰다가는 오히려 자신도 그 다툼에 휘말려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보면 나름대로는 교회 내에서 열심을 내고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하는 분들 가운데 다툼도 일어납니다.
옥중서신 중 하나인 빌립보서를 보면 빌립보 교회에 신실한 여성도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나옵니다. 바울은 그 둘을 향하여 권하며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 4:2)라고 말씀합니다.
둘 다 빌립보교회의 귀중한 집사요, 권사인데 만나면 다툼이 그치지 않는다는 소식이 바울에게까지 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다른 성도들에게는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빌 4:3)라는 말씀을 합니다.
즉 두 여성도의 열심은 그 정도면 나무랄 때가 없고 그들이 같은 마음을 품고 교회를 위해 헌신한다고만 하면 다른 성도들은 그저 돕고 따라 주기만 해도 교회는 왕성한 교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화해와 연합을 기대하며 이제까지 부탁의 말을 써내려 왔고 서신을 마무리하면서도 빌레몬을 향하여 ‘오 형제여’라고 부르며 사도의 권위가 아닌 믿음의 형제로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이제 바울은 빌레몬으로 인하여 기쁨얻고 평안을 얻기를 요구합니다.
여기서 ‘기쁨’(오니이멘)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자식의 도리’를 말할 때 사용하는 말로서 빌레몬이 자식이 아버지에게 순종의 도리를 다하여 기쁨을 드리듯 믿음의 아들로서 도리를 다하여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또 평안은 7절에서 성도들이 빌레몬의 헌신으로 인하여 평안을 얻었다고 말씀했던 것처럼 이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자신과 같이 맞아주므로 바울도 걱정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평안할 수 있도록 순종해주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바울은 이 서신을 쓰는 이유를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라고 밝힙니다. 이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조심스럽지만 오네시모를 부탁할 마음을 갖게 되고 이 부탁의 서신을 쓰게 된 것은 이미 빌레몬이 순종하리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처음에 부탁으로 시작한 서신을 마무리를 하면서 순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강요가 아닌 빌레몬에게 대한 강한 신뢰를 밝히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어서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말이라면 어떤 무리한 부탁이라도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순종할 만한 사람이므로 오히려 그 순종이 억지가 되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배려하며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부탁의 말을 끝내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2-25절의 말씀입니다.
22.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그는 자유의 몸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골로새를 방문할 것이라고 바울은 그의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하게 될 때 빌레몬의 집에 머물겠다고 그를 위해서 처소를 예비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바울에게 머물 곳이 없어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입니까? 바울의 의도는 다른데 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해서 빌레몬의 집에 머물게 되면 자동적으로 무엇을 알게 됩니까? 빌레몬이 바울의 부탁대로 오네시모를 용서했는지 용서하지 않았는지가 자동적으로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적당한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빌레몬으로 하여금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직접 가서 확인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기도의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일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약5:16의 말씀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빌레몬과 그의 가족들, 또 그의 집에서 모이고 있는 골로새 교회 모든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자유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골로새를 방문하고 또 빌레몬의 집에 유하게 될 것입니다.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했는지 안했는지 바울은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고 어떻게 바울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그것이 선결되어야지 그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은 속히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가 맺힌 것을 다 풀었는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나와 너와의 관계가 화목한 사람은 기꺼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러나 아직도 맺힌 채로 살아가는 사람, 자기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래도 그러한 기도를 드리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곧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종말론적인 신앙을 늘 유지하면 우리는 좀 더 용이하게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지금 여기에 다섯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빌레몬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또 빌레몬도 그 다섯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잘 아는 다섯 사람의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다섯 사람도 바울과 똑같은 소원과 기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면 이 다섯 사람은 그 소식을 듣고 바울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면 바울 뿐만 아니라 그들도 함께 마음의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감화를 끼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가혹하게 다루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우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사도 바울은 빌레몬과 그의 가족들 또 그의 집에서 모이고 있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만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의 힘으로는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본능적으로 복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법으로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법은 본질적으로 공의와 정의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만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나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인격, 힘, 의지, 교양으로서는 결코 오네시모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의 심령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사랑으로 주님의 일꾼들을 섬기고 또한 주님께 충성하여 주의 복을 받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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