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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야고보서 강해 15)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 약 2:23-26, 수요기도회 20230419)

by 온누리선교 2023. 4. 19.

 

성경본문: 야고보서 2:23-26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설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한 사람이 지나가다 보고하는 말이 "왜 변변치 못하게 행동해서 거기 빠졌는가?"하고 꾸짖기만 하고 지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유교는 윤리적으로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 잘못을 전제적으로 경책만 합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하는 말이 이편으로 나무 가지를 붙잡고 저편으로 돌뿌리를 딛고, 올라오라고 다만 동정의 뜻을 표하며 나오는 방법을 말해 주었습니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입니다. 자력으로 구원 얻는 지식을 제시하여 줄 뿐입니다. 그러나 자기 노력이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책망하거나, 물에서 나오는 지식을 전할 여지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이 물 속에 들어가서 죽어 가는 자를 끌고 나와서 상처를 치료해 주고 새 옷을 입히고 그 사람의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공자나 석가처럼 이론만을 가르치지 않고 죄인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구속하여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데려다 주십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 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4:12)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곧 우리의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믿음이 아닌 진짜 살아있는 믿음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믿음이 무엇인지 알려주시 위해 야고보 사도는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 정말 가장 좋고 적절한 예를 보이며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게 할 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뚜렷이 할게 해줍니다. 주님께서 오늘 야고보 사도를 통해 말씀하시는 귀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23~24절의 말씀입니다.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 확실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이 행위란 교회를 위한 헌신이나 순종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착하다고 하는 그런 행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억지로 마지못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그런 행함을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목숨과 같은 이삭을 바치는 행위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으로 믿음을 보인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이삭 바치는 행위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의 확증적인 사건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좀 더 원론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때 낳은 아들로 이미 사라의 태가 끊어진 다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위하여 사라의 태를 여셨으며 그가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내주신 이삭을 하나님은 돌연 바치라는 명령을 아브라함에게 내립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간구한것도 아니었고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지금에 와서 또 다시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옳은 것일까요?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나 말것이지 하며 울분을 토하며 대성통곡을 하지 않았을까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삭의 씨를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같은 민족을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맹세하신 말씀은 그 유효기간이 소멸된 것일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항변도 하지 않았고 자기를 대신 바치겠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접어두고 순종을 선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와 관습과 가족과 환경과 지식과 논리와 합리적인 그 어떤 생각보다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우선으로 생각했고 바로 그 하나님의 결정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순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주어진 두가지 선택가운데 하나만을 택해야 했을때 그는 주저없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선택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우리와 다른 길을 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불순종을 선택하였고 아브라함은 순종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혹은 우리의 생각으로 항변하며 수긍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바른 신앙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선택이며 순종입니다. , 행하여진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만큼 순종이 어렵고 힘들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하여 모든 민족과 끝없는 후손들이 날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의하여 그 약속이 깨진다고 할 지라도 그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믿음의 행위라는 것들이 어떤 것들입니까? 교회에 대한 충성이나 세상에서 윤리 도덕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러한 행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가 아브라함의 행위인 것입니다.

이런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을 또 야고보는 소개합니다. 기생 라합입니다.

25-26절입니다.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기생 라합”, 그녀의 이름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직업이 함께 나옵니다. 기생입니다. 몸 파는 여자입니다. 그런 여인이 믿음의 행위를 말하는 예증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행함 역시 세상의 상식이나 윤리나 도덕과 전혀 어울리지 아니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조국을 배신하고 스파이를 숨겨주었습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자기 혼자, 자기 가족만 살겠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조국을 헌신 짝 버리듯이 버리는 것을 믿음의 행위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행위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의 행위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2:8-11에 보면, 라합이 정탐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주님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이 땅의 주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당신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 당신들 앞에서 어떻게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셨으며, 또 당신들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어떻게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는가 하는 소식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했고, 당신들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 위에서, 과연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방인입니다. 다른 신들을 충분히 섬길 수 있습니다. 자기 맘에 맞는 신들을 골라 믿을 수 있는 문화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참 신, 하나님을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피신시킨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너무 신기하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은 여리고성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내용입니다. 모든 백성이 다 간담이 녹는다고 합니다. 다들 간담이 녹을 뿐 그 누구하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워, 정말 두려워!“라고만 하지 그 누구도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기생 라합뿐입니다. 이 기생의 행함이 무엇으로 설명이 됩니까? 세상의 윤리와 도덕으로 국가관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과 그가 행하시는 일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은 망해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스파이를 숨겨준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에 따른 행위입니다.

 

이 세상이 망한다는 소식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수도 없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나라는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의를 구하는 것도 역시 나의 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런 행함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는데 행위로는 전혀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교회는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던 교회였습니다. 1866년에 소속 성도가 4366명으로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스펄전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 두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가슴뜨거운 살아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 아버지시여

주는 나의 주이시며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찬양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피조물로 돌아가서 하나님께만 영광도리며 감사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셔서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믿음없는 자가 되게 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믿습니다. 그저 머리로, 마음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믿음이 나타나게 주의 말씀을 어느 때든 어느 곳이든 행하게 하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