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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야고보서 강해 16) 온전한 자의 혀(수요기도회 20230426)

by 온누리선교 2023. 4. 26.

성경본문: 야고보서 3:1-8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설교: 온전한 자의 혀

 

작은 시골 천주교회의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고 있던 한 소년이 실수를 하여 제단의 성찬으로 사용할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즉시 소년의 뺨을 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서 물러가고 다시는 제단앞에 오지마!" 이 소년은 장성하여 공산주의의 대지도자인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큰 도시의 천주교회당에서 미사를 돕던 한 소년이 역시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신부는 곧 이해와 동정이 어린 사랑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여 주었습니다. ", 네가 앞으로 신부가 되겠구나." 이 소년은 자라나서 유명한 대주교 훌톤 쉰이 되었다고합니다.

 

티토 소년은 그 말대로 제단 앞에서 물러가 하나님을 비웃는 공산주의의 지도자가 되었고, 쉰 소년은 그 말대로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어떤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을까요? 그것은 축복과 믿음의 긍정적인 말들입니까? 아니면 의심과 저주의 부정적인 말들입니까?

 

오늘 우리가 우리의 말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우리의 혀가 과연 어디에 쓰여야 할지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입니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선생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로 시작합니다. 초대 교회의 선생은 유대교의 랍비와 유사한 직책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따라서 이 선생의 직분에 상당한 권위가 뒤따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시의 사회는 소수의 사람만이 읽을 수 있었고, 따라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지위 향상을 노릴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사회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이 가르치는 사역에 매력을 느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야보고가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권면하는 그 배경에는 아마도 좋지 못한 동기로 이 직분을 얻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 선생이 다른 그리스도인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랬다면 선생이 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다만 선생이란 직분이 너무나 중요해서 면밀한 주의를 요구하며, 따라서 그 직분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보다 더 심각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절에서는 야고보는 선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닌 혀가 지닌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혀가 지닌 특별한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야고보는 먼저 '우리가 다 실수가 많다'는 말로 죄의 보편성을 인정합니다. '실수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프타이오''넘어뜨리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신약성경에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영적 실패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죄의 숫자가 아니라 죄의 다양성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실수를 하며 살아갑니다. 이 실수가 우리 자신을 넘어트리기도 하고, 혹은 다른 사람을 넘어트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실수가 많은 허점투성이의 사람인지를 인정하는 것이 경건의 시작일 것입니다. 다양한 실수 가운데 우리 모두 보편적으로 짓는 죄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혀로 짓는 죄임을 야고보는 증거합니다. 입은 통제하기가 너무 어렵고, 거짓말과 실랄한 말과 비방하는 말이 나오기 쉬우며, 다무는 것이 좋을 때에도 입은 열려는 경향이 있음으로 입을 통제하는 사람은 몸의 다른 자체를 다스릴 능력을 가집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서 인간의 죄에 대한 고발할 때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3-14)라고 혀로 짓는 죄에 대해서 고발했습니다. 혀는 너무나 제어하기가 어려워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을 온전히 정복한 사람입니다. 잠언은 입의 파멸에 대해 잠언 186-7절에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아멘!

혹시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말을 많이 하는 자리에 있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3~5절의 말씀입니다.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인간의 모든 지체 가운데 가장 제어하기 어려운 지체가 무엇일까요? 바로 세 치 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혀를 제어하기 위해 자연적인 방어 장치 두 개를 주셨습니다. 바로 치아와 입술입니다. 만일 나쁜 말이나 악한 말이 나오려고 할 때는 이빨로 혀를 깨물어야 합니다. 또한 혀가 치아를 뚫고 나올 때에는 입술을 다물어야 합니다. 꽉 다물어서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어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세 치 혀로 인해 얼마든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입술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입술로 희망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독설을 내뱉는다면 그것은 전도의 문을 막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고 끊임없이 기도함으로 우리의 혀에 숨어 있는 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 자가 세워야 할 덕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의 위력과 위험성을 분명하게 지적하기 위해 말과 배, 불의 이미지를 가져와 예를 듭니다. 재갈과 키는 오늘날에는 흔하지 않지만,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흔한 소재입니다. 만약 야고보가 오늘날 글을 쓰고 있다면, 자동차 핸들같이 우리에게 낯익은 물건을 사용하여 설명했을 것입니다. 재갈이 말의 입안에 있는 것처럼, 혀는 인간의 입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작은 것이 큰 몸을 움직이고 제어합니다. 또한,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 배의 작은 부분이 전체의 방향을 돌리는 것처럼, 혀는 전 인격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야고보는 말의 입에 물린 재갈이 말의 방향을 정하고, 키가 배의 방향을 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혀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혀, 즉 우리의 입술을 제어할 때, 우리의 전 생애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항로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는 앞서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증거했던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몸에서 작아 보이는 혀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우리의 몸과 인생을 파괴하는 불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우리의 혀를 불로 비유합니다. 그 이유는 혀가 가진 통제할 수 없는 위력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날씨가 건조한 봄, 가을 때마다 산불로 인해 많은 산림이 회손되는 것을 뉴스를 통해 쉽게 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산불도 작은 불씨, 작은 부주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처럼 혀는 작아 보이나, 그 영향력에 있어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지닙니다. 삽시간에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불의 이미지를 통해 야고보는 통제되지 않는 혀가 얼마나 많은 것을 삽시간에 파괴시킬 수 있는지 경고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6-8절의 말씀입니다.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혀는 불이며, 우리의 지체 안에서 불의한 세상이 됩니다. 야고보는 혀 안에 타락한 세상의 죄가 들어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몸의 작은 부분이 모든 불의의 세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강조하시며, 그 입이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나오는 마음을 표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5:11, 18-19). 몸의 그 어떤 지체도 혀만큼 경건한 삶에 파국을 가져오는 것은 또 없습니다. 그래서 7~8절에 있어서 혀에 대한 위력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모든 종류의 동물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짐승이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갈 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우리의 혀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할 수 있는 혀를 주신 원래의 목적이 상실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든 동물을 정복할 수 있으나, 결코 자신은 정복할 수 없습니다.

야보고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라고 결론지은 것은 어느 누구도 혀를 길들일 사람이 없다며 우리의 혀 길들이기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우리의 혀를 길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결코 쉬지 않는 악이며 죽이는 독이 가득한우리의 혀를 길들일 수 없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5:1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혀가 우리를 더럽히고, 삶과 관계를 불태우는 이유는 우리가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바라고 지킴으로, 오늘 하루도 입술의 파수꾼을 세우고, 우리의 입술의 문을 주님 안에서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시고, 우리의 입술의 문을 지켜주옵소서. 우리는 실수가 많으며 입술로 많은 죄악을 범합니다. 우리의 입에 주님의 말씀으로 재갈을 물려주셔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항로로 향하길 소망합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살아감으로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