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야고보서 강해 21) 비방하지 말라 (수요기도회 20230604)

by 온누리선교 2023. 5. 31.

 

성경본문: 야고보서 4:11-12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설교: 비방하지 말라!

 

입에서 나온 말은 '에너지'입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사라지지 않고 작은 에너지 덩어리가 되어 나의 주위를 감쌉니다. 그래서 내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말들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내가 그동안 해 놓은 말의 에너지를 느끼게 됩니다. 나 또한 상대방이 한 말의 에너지를 감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하지 않아도 그냥 상대방의 얼굴만 봐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거에요. 심지어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감사, 기쁨, 만족, 행복, 사랑, 웃음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주위에 밝은 기운이 가득하여 그냥 그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져요.

평소에 불평, 불만, 험담, 거짓말, 욕설, 돈돈돈타령, 변명만 하는 사람은 그 옆에만 가도 어두운 기운이 훅! 밀려와서 숨이 막히게 됩니다.

평소에 예수님~ 찬양, 기도, 영광, 순종, 말씀 주님을 높이며 주님과 대화하는 사람의 옆에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을 만난 것 같지요.

 

우리는 야고보서를 공부하면서 시험을 기쁘게 여기는 것, 온전한 혀, 차별하지 않는 것 등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비방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는 남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이야기를 폭로하는 것을 좋아하고 약점이나 예전의 실수를 들춰내서 그 사람을 당혹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많은 후보자들이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어내서 비방하고 깎아내려서 자신의 표를 얻고자 합니다. 세상은 비방하고 헐뜯어야 살아남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우리는 잘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세상에서 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1절의 말씀입니다.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야고보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비방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서 큰 적대심과 악의를 가지고 심하게 말하는 것이 비방이라고 생각합니다. 험담, 뒷담화, 뒷공론, 명예훼손, 모독, 중상모략 등 상대를 공격하고 해를 끼치기 위해 하는 말들만이 비방일까요? ‘비방이라는 말은 어떤 사람에 대항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악의와 적대심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속에 악의가 분명히 있는데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인격과 평판에 해를 끼칠 목적을 가지고 말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 추측해서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정작 그 사람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제대로 해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또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잘못하거나 실수한 것에 대해 쓸데없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과장해서 몇 번 그런 것을 항상 그렇다고 정의내립니다. 그것도 비방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할 때, 비방이라는 것은 당사자가 내 앞에 있다면 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당사자가 내 앞에 있으면 왜 말하지 못할까요? 분명 그 형제가 기분 나빠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악의와 적대심이 크지 않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비방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말하기를,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뒷공론의 죄만큼 성경에서 용서 없이 비난하고 있는 죄는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분명 그러한 비방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비방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어떤 여지도 주지 않았습니다. 비록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해도, 그것이 사실에 입각해서 말한 것이라 해도, 나의 원통함과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라고 여겨져도, 야고보는 예외 없이 비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비방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1:30). 이것은 죄의 특성이고 구원받기 전의 상태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참된 믿음을 가진 자로서 이러한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러한 죄에 거한다는 것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비방은 교회의 하나됨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가 다른 형제를 비방을 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형제들 간의 사이는 갈라지게 됩니다. 비방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던 형제 자매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가 그 말 때문에 선입견이 생겨서 역시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혈로 하나되게 하는 교회를 나누고 갈라놓는 것이 비방입니다. 또한 비방은 성도를 실족시킵니다. 주님은 성도를 실족시키는(죄를 짓게 하는) 자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7). 누군가를 비방할 때 그 자리에 있는 형제 자매는 그 대상자에 대해 판단과 정죄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또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그 역시 형제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한 사람의 비방으로 인해 많은 다른 형제들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비방은 다름이 아닌 사탄이 좋아하는 일입니다. 밤낮 하나님 앞에서 형제를 비방하는 자들이 사단이 아닙니까(12:10). 우리가 형제를 비방하면 사단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 가운데 행하신 모든 일을 역행하는 것이 바로 이 비방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셨는데, 그래서 다시 죄의 노예가 되게 하지 않고 선한 일에 힘쓰며 하나되게 하셨는데, 그러한 성도를 죄 짓게 하고 교회를 나뉘게 하며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모든 일을 역행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모든 형제 자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지 그것을 정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율법을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준수해야 하는 자인 것입니다. 모든 형제 자매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법을 마땅히 순종하고 지키는 자여야 하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고 형제 자매를 비방한다는 것은 그 법을 내가 스스로 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 아는 형제 자매에 대해서는 지키지만, 내가 싫어하는 형제 자매에게는 지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 이것은 율법의 준행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준행자는 오직 법을 지키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준행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입법자와 재판관이 하는 일입니다. 입법자는 법을 제정하는 사람이고, 재판관은 그 법에 따라 심판하는 사람인데 그런 일을 하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입법자와 재판관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여러분은 누구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십니까?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형제 자매에 대해서 비방을 시작한다면, 그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율법의 준행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리에 앉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전체의 죄의 모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반역하여 세상에 떨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 생각하고 말씀에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비방을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마지막 질문을 기억하십시오. “네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비방할까요?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억울하셨던 분이 있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죄를 범치 않으시고 거짓도 위협도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조롱과 핍박, 모진 고난을 당하셨지만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어떤 대항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자는 입법자와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고 형제 자매를 비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순종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비방하지 않으며, 오직 유일한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련의 스파이 로젠버그를 재판할 때의 일입니다. 검찰의 구형이 있고 피고인 로젠버그의 최후 진술이 끝났습니다. 이제 재판정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재판장인 카프만 판사에게로 쏠려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의 변호사는 판사님, 공정을 기해 주십시오. 너무나 여론에 치우쳐서 내린 판결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면서 항의했습니다. 이때 카프만 판사는 정의와 공정은 이미 집행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이 구할 것이 있다면 자비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법의 적용과 집행은 공정하고 준엄한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한 사회의 질서와 기강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의 모든 것을 판단하십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시기에 가장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동의나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때 어떨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잣대 앞에서 부끄럼 없을 만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우리의 욕망을 위해 남을 비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엄청난 대속의 은혜를 받았는데도 서로를 비방하며 교만한 삶을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참으로 복음을 지키고 전하며 결코 하나님꼐서 주시는 사명을 다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