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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9) 거짓선생님들에 대한 심판 (벧후 2:17-19 수요기도회 20240508)

by 온누리선교 2024. 5. 8.


본문: 베드로후서 2:17-19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설교:  거짓 선생들에 대한 심판 

보석 중에서 ‘오팔’ 이라는 보석이 있는데, 이 보석은 평상시에는 평범한 돌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특별한 광채도 없고, 그렇게 단단해 보이지도 않고, 단지 알록달록한 돌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오팔이 오래 전부터 귀한 보석으로 분류된 이유는 오팔의 ‘아주 특별한 특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팔은 평소에는 평범한 돌같이 보이지만 사람이 손에 올려 놓으면 무지갯빛 광채를 낸다고 합니다. 오팔이 보석으로서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람의 체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팔은 사람과 함께할 때 나타나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교감의 보석’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오팔’과 같은 존재입니다.
평소 우리의 모습은 그저 평범합니다. 아니 어쩌면 남들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되는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손에 올려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올려지기만 하면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멋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이러한 비밀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먼저 17절 함께 읽습니다.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베드로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거짓된 동기와 그에 따른 삶의 허망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첫째, ‘물 없는 샘’인 그들은 뭔가 신선한 것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영적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구약에서 선생들은 종종 갈증을 풀어주는 샘에 비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시대의 비극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렘 2:13)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의 영적 갈증을 풀어주시고,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 4:13-14; 7:37-38).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은 ‘물 없는 샘’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이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제보다 더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치 영적 복어처럼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자신을 부풀렸습니다.
둘째,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인 그들은 우레와 같은 주장과 번득이는 호소로 사람들을 속이지만, 영적인 자양분을 공급하기는커녕 쓸데없는 안개만 가져왔습니다. 눈에 보이지만 막상 잡으려고 하면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그들의 가르침은 실질적 내용이 없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안개 같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셋째, 그들은 깨우침을 주는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들 앞에는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어둠은 모든 악한 사람들의 마지막 운명을 상징합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약 3:1).
이처럼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딤후 3:5)’ 자들입니다. 또 자신뿐 아니라 자신을 좇는 사람들에게도 신령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막 11:12-14)’와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처럼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영혼의 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원수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벧전 5:8). 이제는 깨어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고, 믿음을 굳게 하므로 그들과 맞서야 합니다.
 그러면서 18절에 그들의 특징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여기에서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라는 말은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헛된 말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큰소리치며 강조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듣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릇되게 행하는 자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 이란 이러한 그들의 가르침이 거짓임을 간파하고 그 가르침에서 이제 간신히 막 벗어난 성도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이러한 성도들을 포기하지 않고 쉴 틈 없이 연이어 또 다른 미끼를 동원하여 계속해서 미혹합니다.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가짜 복음’과 ‘가짜 거룩’으로 실패하자 이제는 육체의 쾌락에 약한 인간 본성을 미혹하여 넘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의 음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적인 방종과는 다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이런 음란의 유혹에 넘어가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드로후서가 기록될 당시의 음란은 종교행위의 일부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서신서에는 많은 곳에 우상과 음행이 짝으로 등장합니다(행 15:20, 롬 2:22 고전 5:10, 6:9, 엡 5:5, 벧전 4:4).
다시 말해 당시 거짓 선생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타락한 사회문화를 통해 성도들을 미혹’한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세상이 다 그런데 괜찮아”, 마치 도통한 사람인 것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며 성도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죄성의 찌꺼기를 자극함으로써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또다시 이 미끼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신앙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견디기 힘든 어려움은 어느 날 우리 앞에 갑자기 닥쳐온 불행한 일들이나 빈곤과 질병과 같은 여러 가지 환경의 악조건들이 아닙니다.
정작 우리 성도들을 괴롭히는 것은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육체의 정욕과 죄의 본성’입니다.
믿음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사도바울도 이것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내 지체 속에 죄가 있어서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한다”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탄식했습니다.(롬7:24)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돈이나 건강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본성’ 때문에 생겨납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사탄이 미혹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불끈불끈 일어나는 ‘죄의 마음’들이 우리를 상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인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성도의 거룩과 경건’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권고합니다(잠 4:23).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지름길도 없습니다. 유혹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조율해야 합니다.
오직 이것만이 이 세대의 유혹을 이기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길만이 생명의 길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생들은 다른 말을 합니다.
19절 함께 읽습니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자유를 약속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들을 멸망의 종으로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유를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들에게 자유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죄에서 자유롭고, 진리에 구속받지 않으며, 현세나 내세에 미칠 여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어도 된다는 허가증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로마서 6장 1-2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우리는 그 가운데 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자유의 교리를 정체불명의 괴상한 것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말처럼 그들은 ‘싸구려 은혜’를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베드로는 예수님이 아셨고(요 8:34), 바울이 사용했던(롬 6:16) 말로 결론을 내립니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는 말은 패배한 군대를 승리한 군대의 종으로 사슬에 매어 놓는 풍습을 말합니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분을 섬기지 않는다면, 분명 죄와 그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 난무하는 거짓을 분별하고 하루하루 하나님의 분명하시는 말씀과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 
거짓 선생들은 어떠한 자들인지, 그들이 무엇으로 우리 성도들을 미혹하는지 집중적으로 베드로사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이 교훈의 말씀들을 듣고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마음 판에 깊이 새겨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 건강한 사회를 이루는데 선하게 쓰임받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