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1서 2:24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설교: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결심하고 나서 3일 뒷면 그 결심한 것이 흔들리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사람들이 ‘처음 결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믿음도 이 법칙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처음 예수님의 사랑을 접했을 때 가졌던 그 마음, 그 결단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미지근한 종교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오랜 초대교회의 박해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잃고 타락하게 되는 모습을 사도들이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들이 있었을까요? 우리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첫 사랑이 희미해져가고 있다면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24절의 말씀입니다.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에서 처음부터 들은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듣고 배웠던 ‘사도들이 가르친 순수한 복음’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이 직접 듣고 보았던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하심, 그리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 그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시작된 교회공동체,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성령님의 놀라우신 역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처음부터 들은 것’이란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복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의 그 순수함이 아직도 그대로 잘 유지되고 있습니까?
지금 사도요한은 이러한 ‘순수한 신앙’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질되어지고, 왜곡되어 ‘처음부터 들은 것’과 전혀 다른 복음을 향해 솔깃해 있는 당시 성도들에게 ‘처음 받은 믿음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첫사랑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세 가지를 늘 기억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첫째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영원한 죽음에서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사랑을 생각하며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살전 5:16)
만일 우리가 이 기쁨을 잃어버리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생기도 잃어버리고,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는 삶은 믿음을 지키는 ‘근본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 구원의 기쁨이 변질되고, 왜곡되지 않도록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 5:17)
우리 성도들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를 쉬게 되면, 순간 기쁨을 잃어버리고 기도도 할 수 없고, 기도를 하더라도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나의 ‘영적 호흡’이라고 생각하며,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지금 나의 형편과 처지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나에게 가장 적절하고, 필요하고, 최고의 것임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살전 5:18)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감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불투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잠시 후의 일조차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을 믿으면 염려가 떠나가게 되고 지금 이 시간, 이처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 일을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고, 좋은 결과를 내게 되고, 그로 인해 감사가 우리의 삶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또 감사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우리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워보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자녀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이겨낼 의지가 부족합니다.
그러하기에 아이들은 밤새도록 게임하고 놀고 싶어 합니다.
맛있는 것을 주면 배가 배탈이 나도록 먹습니다.
눈에 보기에 멋진 것이 있으면 주변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것만 보고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납니다.
이러한 아이들을 부모가 절제시키지 않고 그냥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는 잘못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순간부터 지금껏 우리가 살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욕심, 내 욕구, 내 자랑, 내 편함 다 포기하고, 나 자신을 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복종시키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고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은 내 힘으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때때로 고난과 시험을 통해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들을 우리들은 알면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평안과 욕망만이 채워지기만을 원합니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들이 “엄마 미워!” 하듯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신의 삶을 비관합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심을 믿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어떠하든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자 ‘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복음’입니다.
제가 얼마전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있답니다.
어떤 범죄학자가 실험을 하나 했습니다. 구석진 골목에 2대의 차량 모두 보닛을 열어둔 채 주차해두고 차 한 대에만 앞 유리창을 깨뜨려 두었다고 합니다. 일주일 관찰한 결과 보닛만 열어둔 차량은 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앞 유리창이 깨져 있던 차량은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었다고 합니다. 사소한 무질서, 작은 상처를 가만히 두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상황이나 기후재난등의 일들이 터지고 갈수록 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요즘 사람들의 마음, 생각, 삶의 소중한 부분들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 틈으로 불안과 염려, 반목, 문제들이 들어옵니다.
무디 목사님은 “저는 깨어져 늘 새고 있는 그릇이라서 흐르는 물밑에 거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깨진 영혼과 마음을 세상에 두면 불안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내 모습 이대로 성령 안에 거하면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넘치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무엇이든지 처음에 가졌던 마음자세를 잘 간직하면 오랫동안 변질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처음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아멘입니까? 아멘!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며 새로운 믿음의 삶을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믿음의 삶을 온전히 살기 위해서는 처음 신앙을 지켜야 함을 깨닫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설레임과 감사와 기쁨을 소중히 여기고 잘 지키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이미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 삶임을 믿고, 이 놀라운 삶, 생명의 삶을 기쁨으로 누리고 전하는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을 사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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