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1서 3:13-16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설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설교자 무디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을 온전히 버려야 하겠지요?"
"이닙니다. 버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대답을 들은 그 사람은 속으로 놀랐으나 걱정스러운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버리지 않아도 좋은 가요?"
무디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담대하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만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즉시 당신을 배척할 것이요, 이것은 세상에서는 그러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달콤한 잔으로 인해 감사기도를 드릴 일보다는 쓴 잔으로 인해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필요로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쓴잔을 마셔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함께 살아가고 있고 마귀의 자녀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그 일이 얼마나 귀한지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13절 함께 읽습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 말씀을 보니 좀 섬뜩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 복 받으려고 예수를 믿는데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사랑해야지 복을 받은 것이지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데 어떻게 복 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복 받은 사람은 이웃에게 사랑받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일반상식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의 ‘세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앞서 살펴본 2:15-16에서 사도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했고,
5:19에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 곧 마귀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세상’은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과, 음란과 술 취함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삶에 빠진 사람들은 왜 우리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마귀의 자녀이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8절).
그리고 세상이 성도를 미워하는 것은 기독교 역사 2천년동안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초대교회에 저지른 로마의 핍박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을 화형 시켰는가 하면, 십자가에 못 박고, 심지어 성도들을 굶주린 사자우리에 집어넣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핍박은 무슨 큰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미명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기독교는 이러한 핍박을 통해서 더욱 부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핍박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변명도, 항거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던 핍박자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자신들의 무지함과 악한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복음은 전 세계로 퍼져갔습니다.
그래서 15-1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왜 그럴까요? ‘성령의 권능은 사람의 능력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형제를 미워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먼저 죄 많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남보다는 자기를 더 중시합니다.
이웃 간에도 작은 이익 때문에 과격한 언쟁이 오갑니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같은 반 학생을 ‘왕따’시키고, 사회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이 이제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타인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고, 남의 입장에서 서서 생각하기를 꺼려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모습과 비교할 때 예수님의 사랑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우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수치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으며, 온몸을 던져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은 구원받은 우리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목수의 십자가 독실하게 예수를 잘 믿는 어떤 목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으로만 구원 받기에는 무엇인가 미흡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는 하지만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잘하고, 헌금도 많이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확실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 그위에 나의 공로와 선한 행위가 따라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신 말씀을 제시하며 설명해 주어도 어쩐지 믿음으로만 구원받기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 출입문짝을 그 목수에게 맞추었습니다. 목수는 하나님의 집에서 쓸 성물이라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문이 다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목수를 찾아갔습니다. 완성된 문짝을 한참 바라본 목사님은 목수의 솜씨를 칭찬하더니 문득 생각이 난 듯 문작 위에다 사과 궤짝을 덧붙여 못을 잘 박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목수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잘 만들어 드렸는데 문짝에다 왜 사과 궤짝 나무판을 붙인단 말입니까?" 이때 목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완전한 걸작품입니다. 거기에 인간이 더하거나 감하여도 안됩니다. 다만 십자가를 믿으면 인간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멘’ 하시겠습니까?
물론 이 길은 힘든 여정이 될 것입니다. 때론 포기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과 그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의 간곡한 뜻을 헤아린다면 결코 주저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이 교회를 함부로 대하는 이러한 때일수록 더욱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굳게 붙잡고, 세상 사람들처럼 항변하고 미워하고 대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더 겸비하고 힘차게 사랑의 달음질을 함으로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우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들을 사랑함으로, 그들까지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음을 깨달아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방법으로 세상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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