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로마서 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설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화평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실까요? 아니면 우리가 늘 화내면서 고통 받으며 살길 원하실까요?
네!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가 행복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약한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고 말을 잘 듣게 하려고 억울한 일들을 당하게끔 만드는 존재처럼 말입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자신이 당하는 불행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 탓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온전히 받게 하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은혜 받으시길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과거에는 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과거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한 것이지, 하나님과 원수질 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7절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내 중심으로 사는 것,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명예를 위해서 사는 것, 내 육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과거에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화목 제물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한 손으로는 하나님의 손을 잡으시고, 또 한 손으로는 우리의 손을 잡아서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 사이를 이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1절 마지막에 ‘누리자’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누리라고 합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화평’ 때문에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3절의 말씀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은혜의 자리에 들어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는 생활을 할 뿐 아니라 비록 우리 앞에 환난이 온다고 해도 오히려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환난이란 말은 ‘드맆시스(θλῖψις)’로 억누른다. “괴롭히다”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환난이란 고통이 따라오는 것이기에 그 자체를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필요 없이 아무에게나 환난을 주시지 아니하십니다.
처음에 인간에게 고통이 생긴 것은 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이마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라든가 하와가 잉태하는 고통을 받은 것 등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고통을 당하고 사는가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인 양, 마음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서 생긴 것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우리에게 더 굳센 믿음과 축복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통일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더 좋은 것을 예비해두시기 위하여, 더 좋은 것에 합당한 우리를 만드시려 환란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받을 만한 그릇, 담기 적당한 그릇에 우리도 더 많은 음식을 넣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면, 우리의 그릇대로 그 축복을 가득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란을 만나면, 우리가 고통의 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평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불평하는 자는 그 고통의 자리에 더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더욱 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켜달라고 해야 합니다.(시18:6, 34:17).
그러면 고통의 상황은 보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성급해서 일을 그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평안함을 얻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된 우리들의 가장 수준 높은 신앙적 자세는 바로, “즐거워하는 자세”입니다.
야고보서 1:2~4절만 보더라도,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렇습니다. “환난은 인내와 연단을 이룹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 환난을 즐거워하는 이유는 맨 마지막에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환난은 성도들로 어려움 속에서 인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환난은 일정한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환란의 기간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기간입니다.
우리가 그 환난의 기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성경에도 시련을 통해 성장한 많은 인물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요셉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았던 요셉은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고 이집트에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등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어려운 환경들을 이겨냈습니다.
결국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가족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인내하고 연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라고 순종하며, 소망을 붙들었던 결과입니다.
이렇듯, 그처럼 환난 중에 인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그것을 인내로 견디는 사람들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이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눅8:15).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에게 인내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내의 훈련을 통해서 소망의 경주에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의 경주의 승리자로서 가장 최고의 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환란을 인내로, 인내를 연단으로 연단을 소망’으로 아주 완벽히 바꾸어 내신 분입니다.
그 분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환란을 당하시고, 그 가운데 인내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의 죄를 감당하기 위하여 인내가운데 연단을 당하시고, 연단이 후, 다시 살아나셔서 모든 자들의 소망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한 모범의 이 과정을 겪어내셨기에 우리는 그를 의지함으로 소망의 경지까지 이르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예를 따라, 우리는 시련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약 1:2)고 하시는데, 이는 시련이 바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밭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 그 밭이 귀한 것처럼, '시련이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그 시련을 우리가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그 과정을 겪으셨고, 또 축복의 상징인 요셉도 그리하였습니다. 고난과 축복의 사람인 욥도 그리하였습니다.
우리도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할 때 온전히 인내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 인내가 연단이 되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품은 그 위대한 영광의 소망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기를 주 안에서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견고한 믿음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을 늘 의지하며 따라가고자 하오니, 우리에게 환란을 인내로, 인내를 연단으로, 연단을 소망으로 바꾸는 승리의 삶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늘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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