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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14) 온전한 사랑 (수요기도회 20241016)

by 온누리선교 2024. 10. 16.

 

본문: 요한14:11-15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설교: 온전한 사랑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철길 가에 있는신 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안고, 업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공장 안에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두 아이들이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을 때 기차가 달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철길에서 놀고 있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뛰어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는 고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후 어머니의 무덤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백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던 그것이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찬송 작사자 하버겔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읊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사랑을 하나하나씩 말하는 사도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1절 함께 읽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원인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 결과입니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악한 종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임금에게 빚진 한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만 달란트를 빚졌지만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고, 자신은 물론 아내와 자식들까지 다 종으로 팔아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이었습니다.

임금은 이러한 처지에 놓인 종이 간절하게 애원하자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빚을 탕감 받은 그 종은 나가자마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다그쳤습니다.

이 동료는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갚겠다고 사정했지만, 그는 빚진 동료를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은 그 종을 다시 불러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네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너도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하고 다시 그 빚을 모두 갚도록 옥졸에게 넘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행하지 않는다면, 마태복음 18장의 악한 종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일만 달란트 빚진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시면서, 우리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룰 것을 요구하셨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우리가 더욱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보기 전에는 참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듯이, 세상 사람들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였듯이 이제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입으로만 복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랑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입니다.

 

'미네소타 크리스챤 크로니클' 이라는 잡지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킴 푹 여인은 베트남 여인으로 월남전쟁당시 살을 태우는 무서운 네이팜 폭탄이 떨어진 마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생존한 사람입니다. 그가 유명인사가 된 것은 우연히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그 도망치는 모습이 찍혀 전 세계 여러신문에 실렸기 때문입니다.

1996년 워싱턴에선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는데 킴 푹 여인이 초청되어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연설에서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면 그를 용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죤 머플러라는 비행기 조종사가 참석하여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제가 그 조종사입니다. 저의 오판으로 고통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일로 인해 전 그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주시오"

"용서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다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깜짝놀랐습니다. 그리고 다들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감격스런 장면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기와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긴 그 당사자를 킴 푹 여인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지, 신문은 그녀가 월남전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비행기 조종사 역시 오래전부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는 사랑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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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함께 읽습니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 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즘도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많은데, 이 말씀은 당시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보아서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한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의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대하면서, 비록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을지라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행함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가페 사랑을 행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한 것처럼(1:18) 우리 성도들도 이웃을 사랑함으로 자기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그리할 때 이웃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가능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아가페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받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쓰고 노력할 때, 차츰차츰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이 자라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삶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3-15절의 말씀입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는 시간 아까운줄 모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합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주님과 대화합니다.

감사도 풍성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지면 하나님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만나는 시간도 짧아집니다. 핑계도 많아집니다. 감사에도 인색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셔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 뜻대로 합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는 주님을 위해 목숨이라도 버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도 나옵니다. 자기를 비우는 마지막이 목숨을 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식어지면 자꾸 받으려고만 합니다. 받아도 받아도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위해서 마지막 하신 것이 목숨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자기를 비워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탐욕의 마음이 비워지고, 고집이 비워지고, 불순종이 비워지고, 자기 우선적인 태도가 비워지고, 그 안에 성령충만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셔서 자기의 모든 것을 비우시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뜻대로 행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를 위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보혜사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러하기에 먼저 자신을 비움으로써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고, 믿음으로 확신한 일도 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 복음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하나님 안에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자신을 비우고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순간 성령의 가르치심에 순종함으로써 예수님과 한 몸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만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하는 삶입니다(15).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로서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나타났음을 믿습니다. 오늘, 이같이 사랑을 받은 하나님께 속한 성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