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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설교 3)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이사야 9장 6절, 주일예배 20241215)

by 온누리선교 2024. 12. 15.

성경본문: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설교 :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 12월에 있기 때문에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소망이 없다고 슬퍼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매년 1225일에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전 세계의 소망이 되신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가 한번 떠나버리고 다시 안 오면 소용이 없지만, 다시 오셔서 구원하여주신다는 것은 소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또 우리가 그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또 그대로 순종하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뜻으로 대림절(Advent)’를 왕의 색깔인 보라색으로 상징합니다. 또 네 개의 촛불을 켜고 기다리는 뜻을 가집니다.

 

이 예수님을 기다리기 위해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할까요?

오늘 성경 말씀으로 우리 함께 이것을 알아볼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듣고 하나님의 축복 받기를 바랍니다.

 

6절의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말씀은 구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큰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와서 만왕의 왕이 어디에 있느냐고 헤롯왕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1:!4) 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예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죄를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그는 바로 십자가에서 죄없이 돌아가시고, 거기서 끝나지 않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죽음을 그는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예전에 깡패 아버지를 둔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너무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서 아무도 그 사람의 가족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 마을의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이 목사님의 아들이 학교에서 이 아이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아주 무시무시한 깡패 아버지를 둔 아이라는 것을 목사님이 아시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도 눈치를 챘는지 목사님의 아들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버지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은 아들에게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놀라고 했습니다. 깡패 아버지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내 아들의 친구이기 때문이라면서요

그 아이는 그 이후로부터 목사님 집에서 놀게 되었고, 나중에 커서는 그의 깡패 아버지와 아주 다른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전에는 사단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다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믿으며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두 천사가 말한 것,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1:11)라는 말이 이루어진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묻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기다리는데 속히 오시리라 하신 주 예수님의 오심이 왜 이리 늦어지는 것인가를 말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람들은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줄로 알고 매우 급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심지어 일도 하지 않고 종말을 기다렸으며, 착한 일을 행하다가 금방 낙심하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세상의 모든 것은 끝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강림의 때를 인간보다 더 애태우며 기다리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는 죄인 한 명이라도 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원 얻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이런 기다림은 어떤 것일까요? 그냥 참는 것일까요? 그냥 기다리는 걸일까요?

무조건 참는 것은 바보입니다. 무조건 기다리는 것은 진짜 바보입니다.

제가 교회에서 상담을 하다보면, 참으로 참기만하고 기다리기만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참으셨어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방법이 없잖아요. 참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아주 밝은 얼굴로 웃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

진짜 제대로 기다리는 것은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오는 것을 믿고 참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버스 정류장에서 6-1번 버스가 올 것을 알기 때문에 2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 있는 기다림입니다.

얼마 전 어느 탄광에서 나가는 문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거기에 갇힌 광부들이 모두 숨을 못 쉬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살아났습니다.

어떻게 살게 되었냐하면,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조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참으며 기다리고 있던 순간, 위에서부터 구멍이 뚫려 산소를 마시게 되었고, 결국 그 사람은 구출되었다고 합니다.

쉽게 포기하고 실망하는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며 끈질기게 버티던 그 사람은 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목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도 그를 구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탄광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려고 온 구조대를 하나님은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이 혹시나 해서 뚫은 구멍 중 하나가 이 사람의 위에 바로 생겼습니다. 이 구멍 때문에 이 사람은 산소를 마실 수 있기 되었고 구조될 때까지 어둠 속에서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예수님을 어떻게 기다리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시므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꽉 잡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메세야를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성령이 누구에게 역사합니까? 누구에게 지시하고 감동합니까? 성령은 불의한 사람에게 절대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성탄절을 맞이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아기 예수를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아기 예수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을 수가 없습니다.

시므온과 같이 의롭고 경건하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성령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 축복은 영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눈은 세상의 눈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이 영의 눈을 가진 시므온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시므온은 누구를 정확히 보았습니까? “주의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보내신 분을 그는 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기다림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기다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림은 소망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희망이 있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참아내는 것입니다. 인내입니다.

바로 이런 기다림 속에서 우리들은 평강의 왕이신 주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다시 만날 때를 위해 준비합니다. 가슴에는 끝없는 그리움과 용서와 자비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대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시는 축복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우리가 살아서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