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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강해 7)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수요기도회 20250507)

by 온누리선교 2025. 5. 7.

 

 

성경말씀: 유다서 1:22-25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제목: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오늘은 우리는 유다서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하여 바르게 보아주지 않고,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세 부류의 사랍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의심하는 자, 두 번째는 불 가운데 빠진 자, 세 번째는 육체로 더럽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유다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신앙생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도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시길 바랍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하는 방식으로 보다 굳건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제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의 거짓들에 빠져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며 도와주기를 권면합니다. 22-23절입니다.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2절에서 도와주길 권면하는 사람들은 먼저 의심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에게 놓인 삶의 문제를 놓고, ‘의심질문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의심질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을 듣고, 믿음을 얻게 사람들에게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진리의 빛이 그 영혼을 자유롭게 하지만, 그 생명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큰 의심과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가 특별히 잘나고, 똑똑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은혜의 결과였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렵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의심하는 자들, 질문하는 자들을 업신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에 대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예수님 자신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의심질문을 터부시 여기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호기심을 가지고 여러 현상들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성경 안에서 더 깊고 풍성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신앙의 성숙은 하나님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열망 즉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우리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얻게 되지만, 이와 동시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의심나약함’. ‘더러운 죄악을 긍휼히 여기고 이들을 도와주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성숙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나와의 연합의 과정에서도 찾아오지만, 내가 아닌 다른 이웃을 이해하고 품는 과정에서 더욱 깊이 이루어집니다. 그러한 점에서 의심하는 자들을 위하여, 죽음의 불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미련한 자들을 위하여, 더러운 죄악에 빠져 사는 악한 자들을 위하여도, 우리는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놓고 예수님께서는 일찍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계명을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으로 정리하셨습니다.

이어서 24절에서 2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유다서는 도합 25절밖에 되지 않지만 이 짧은 서신 안에 서신으로서 갖추어야 할 구조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1-4절의 문안 인사를 포함한 도입, 5-23절의 본론, 그리고 24-25절은 송영이 포함된 종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유다서의 송영과 종결은 그 내용이 아주 장엄하며 신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선언입니다.

 

24절에서 신앙의 여정이라는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넘는 사람은 모두가 승자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성경의 선언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셔서, 세상의 여러 미혹들을 이겨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감으로 최후 심판의 날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본래 최후의 심판의 자리는 두렵고 떨리는 자리입니다. 그곳은 죄된 인간이 감히 마주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최후 심판에 놓인 인간의 두려움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말라기 32절입니다. :“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이처럼 최후의 심판의 날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하나님의 그 큰 영광 앞에 흠 없이 기쁨으로 설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크고 놀라운 일입니다. 성막과 성전 예배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무엇이든 흠이 없는것이어야 했습니다. , 수양, 어린 양을 비롯한 모든 제물은 하나님께 온전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용 짐승들만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자신들 역시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25절에서 나타나는 마지막 표현들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큰 단어들이 묶여 서로를 더욱 충만하게 함으로, 이것을 해석하기 위해 단어 개개인의 의미를 너무 쪼개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라는 단어의 범위가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충만한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단어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이 찬양보다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냉혹한 현실과 더욱 더 냉혹한 장차 올 미래에 내몰린 인간들을 향해, 광대한 생명의 빛을 허락하신 것이 바로 우리 크신 하나님의 지혜이자,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의 결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의 그 어떠한 큰 단어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모습에 비하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작고, 부족한 것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한 우리의 찬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이 땅에서 메아리치게 되고, 또 하늘에서 메아리치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자, 최고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족한 우리의 입술로, 또 우리의 기도와 삶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힘껏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마지막 찬미를 부르면서 이 편지를 마치고 있습니다. (24-25절입니다.) 마지막 송영입니다. 이 송영은 신약성경 중에 가장 걸작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아주 짧은 서신이면서 그 격식은 극히 장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축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그 내용은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이며,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리고 기간은 영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족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에게 결속되어 있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견고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마치 목자가 어린양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거침이 없이 서게 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의 존전에 흠 없이 서게 하실 수 있습니다.

 

"흠 없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모모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특별히 희생 제물에 쓰이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나 결함이 없어야 합니다. 건강하고 깨끗하고, 좋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때 바로 그렇게 흠이 없이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흠없게 보존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씻어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즐거움으로 서게 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공포는 사라지고 기쁨과 희열로 아버지의 집에 감사와 즐거움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재판장이 되시지만,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계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나 혼자만 잘 믿는 것이 아니라, 단단히 무장하여 우리 주변의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을 건져 살리시는 능력 있는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죽었던 부자를 다시 살려서 이 땅에 보내시지 않고, 이 땅에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어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모세와 선지자들처럼 주의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상의 그 어떠한 큰 단어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모습에 비하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작고, 부족한 것을 주님께 올려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한 우리의 찬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이 땅에서 메아리치게 되고, 또 하늘에서 메아리치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자, 최고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족한 우리의 입술로, 또 우리의 기도와 삶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힘껏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영광이자 능력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과 의심 가운데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견고하게 세우는 일임을 알게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 매일의 삶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 우리가 삶으로 올려 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작은 찬양으로 인하여 크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과 하늘에서 크게 메아리치게 해 주옵소서.

 

이제 우리는 과거 죄악 된 욕망을 떠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찬양하고자 열망하오니 주여, 부족한 우리를 은혜로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