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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1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주일예배20120729)

by 온누리선교 2012. 7. 29.

성경본문: 요한복음 3장 9~17절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어떤 40대 남자가 자기 60대 어머니에게 그랬답니다. “어머니, 교회 가기 싫습니다.” 어머니께서 왜냐구 그랬더니 교회가기 싫은 이유를 3가지를 얘기했습니다. 뭐냐면, 주일날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은데 일찍 일어나서 가야 되니까 그게 싫고 두번째는 성가대가 불협화음으로 할 때는 정말 죽이고 싶도록 싫고 세번째는 장로님 기도가 얼마나 긴지 그것 때문에 싫다고 말이죠.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내가 너한테 그래도 가야만 되는 이유 3가지를 말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교회는 사람보고 가는 것이 아니니까 가야되고 두번째,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가야되고 세번째는 (조금 쉬었다가...) “니가 그 교회 담임 목사니까 가야된다.”라더랍니다.

오늘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사실 하나님을 보기 보담은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또는 개인적 유익을 위해 이 자리에 나와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찌했던 간에 하나님은 어떤 것을 사용하시더라도, 우리를 엮어서 이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우리의 구원자로 어렴풋하지만 그렇지만 마음 속에 부정할 수 없는 믿음이 있어서 이 자리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더욱 그 사실을 확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확신을 가져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또한 구주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희생과 사랑을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이를 의지하여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 우리 함께 9~12절 함께 읽겠습니다.

니고데모가 이야기 한 “어찌 그러한 일”이란 무슨 일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즉 성령으로 나게 된 사람이어야된다”라는 말을 뜻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은 당시 성경학자였고 산헤드린 공회의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야말로 자신들이 기다려왔던 메시야이시고 이제야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에 세워지게 되었으며 자신들은 당연히 자동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자동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즉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이 깜짝 놀라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놀라는 모습에 아주 논리적으로 반응하십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율법에 전문가이며, 또한 이스라엘의 민족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네가 이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실력이 없느냐?라는 인식의 변화를 지적하셨고, 둘째는 세상의 혼돈과 어둠에 대하여 지적하십니다. 진리를 말하여도 진리를 알지못하는 그러한 세상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너, 니고데모도 이러한 혼돈 가운데 있어 의심하느냐?라는 진리확신에 대한 점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실로”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라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어떤 외딴 마을에 술집이 하나 생겼답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술꾼들이 모이고 밤늦도록 어찌나 떠들어대는 지 인근 교회에서는 특히 주일 저녁 예배에 큰 지장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그 술집을 불태워 버리시든지 어떻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교인들이 한참 기도하는 중 마침 그 술집에 벼락이 떨어져 순식간에 온 집이 다 타 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술집 주인은 동네 교회에서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여 재산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법원에 재판을 걸었습니다.

반면에 교인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변호사를 대고 맞소송을 걸었습니다. 얼마 동안의 심의 끝에 재판관은 아주 도전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반면에 소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걸론이었습니다.

 

니고데모와 우리들은 과연 하늘의 일을 구하고 살면서 실상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에 대해 믿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내 주변에서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났는데도, 불가능한 일이 현실화되었는데도, 그것을 위해 열심히 간구하여 일어났는데도,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잣대를 들어서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하늘의 일만을 보기를 바랄 뿐, 실상 땅의 일에 대해 진실되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 말씀하심에 대해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우리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왜 오셨는가? 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우리와 함께 하셔서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이 바로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피와 살이 되는 현실적인 진리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인자는 예수님 자기 자신을 뜻하십니다. 하늘의 일을 알려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또한 동시에 하늘에 올라간 자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 두가지가 가능한 분은 누구신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니고데모에게 그가 잘 알고 있는 구약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통해, 그에게 확신을 가지게 하십니다. 14~15절함께 읽겠습니다.

이 구절은 “광야에서 들린 청동의 뱀”(민수기 21:9)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는 사단이 생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청동으로 뱀을 만들어 높은 장대위에 달고 뱀에 물린 사람들은 그 뱀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말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이 청동의 뱀을 보면 살아난다는 말입니까? 약을 쓰든, 독을 빼든 해야 살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음의 공포와 고통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시하셨던 것은 너무나 쉬운 것, 바로 “높은 장대 위에 걸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을 본 사람들마다 다 불뱀으로 인해 죽어가는 재앙으로부터 벗어났고 깨끗이 치유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여도 예수님께서는 아주 적절한 비유로 니고데모에게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과 그 의미도 아주 잘 나타내주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높은 장대 위에 걸리는 죽음과 멸망을 상징하는 놋뱀”처럼, 인간의 사망을,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뱀에 물려 광야에서 비명횡사하게 될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고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영생은 어떻게 어떠한 과정으로 우리가 얻게 될까요?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마 외우시는 분들도 있기에 그냥 함께 외워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시작!

 

마틴 루터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작은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한절의 분량 속에 복음의 내용이 전부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 구원의 주체 : 하나님

● 구원의 대상 : 세상

● 구원의 방법 :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

● 구원의 도구인 믿음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

● 구원의 결과 :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 입니다.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wight L.Moody 1837-1899)는 말하기를 ① "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② 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③ 그대의 명성을 믿어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④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루 24시간 중에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계십니까? 그 많이 할애하는 대상에게 어떠한 믿음이 있어서 그 많은 정성을 쏟으십니까? 그곳에서 어떠한 즐거움을 얻고 계십니까?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이 죽는다 하여서 영과 혼이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존재는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영원히 자연의 법칙에 의해 없어질 존재이지만, 영혼이 살아있는 우리는 창조론에 입각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영원히 어떠한 상태이든 살아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성서에 말하는 영생과 사망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 간단히 말하자면, 영생이란 천국에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히 산다는 뜻이고, 사망이란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14장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잘 묘사되어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윤회를 믿는 힌두교에서도 심판의 날은 항상 있습니다. 즉, 사람은 죽음이후에 신이 사람의 행위를 통해 심판하는 일이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과 이 세상에서 사는 우리는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전혀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앞에서 당당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오늘 본문에서 나온 율법도 잘 지키고 심지어 선생인 니고데모도 그 의로운 사람 리스트에 올라가기 아주 힘들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기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도 이 순간 자신이 율법에 전문가이고 율법에 맞추어 거의 의로운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사람이 영원히 살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 은혜가 바로 자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왜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자녀된 것으로 인하여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17절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왜 하나님께서 이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 죄악된 세상을 구성하고 있던 영혼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녀가 아무리 잘 못해도 집에 못들어오게 합니까?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하지만 실지로 호적에서 파버립니까?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한다지만, 가족관계증명서에 그 사실이 없어집니까?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실 정도로 사랑하시는 우리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만 하면,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 은혜의 자리로 바뀌어져 하나님 나라에서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 분의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희생이 온 세상을 변화시켜 버린 역사!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옛날에 지지리도 복도 없는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이 총각이 하도 힘들어서 복을 좀 얻어보려고 하늘님이 계시는 서천 새앗골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다가 하루는 산골자기에서 밤을 맞게 되어 한 집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한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처녀에게 “복을 타러 하늘님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를 하자, 처녀는 ”제발 가시거든 제가 언제 누구랑 결혼을 해야하는지 물어봐주세요“라고 하자, 꼭 물어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또, 길을 걷다가 한 번은 어느 마을에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이 노인한테 길을 물어보자, 알려주면서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서 하늘님을 만나거들랑 왜 우리집 뒤뜰에 있는 소나무가 자라지 않는지 좀 물어봐주게“ 이것또한 그 총각을 물어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길을 가던 중 커다란 강이 나왔습니다. 다리도 없고 배도 없어 건너갈 방법이 없던 중에 큰 이무기 하나가 그 총각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무기도 이 총각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도대체 왜 나는 용이 되지 않는지를 좀 물어봐주게“

우여곡절 끝에 이 노총각은 서천 새앗골에 도착하였고, 하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노총각은 하늘님에게 복을 달라 졸랐지만 거절당하였습니다. 거절 당한 상한 마음 가운데에서도 이 세명의 부탁만은 이루고 가야했기에 물어보았습니다. 왜 이무기는 용이 되지 못하는지.. “여의주를 두 개 가지고 있어서 하나를 버리면 용이 될 것이다” 왜 소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지 “뿌리 쪽에 금덩이가 있기 때문에” 왜 처녀가 결혼을 못하는지 “두번째 그 집을 방문하는 자가 바로 그 신랑이 될 것이다”

이 세답을 얻은 노총각은 돌아가는 길에 이무기에게 답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무기는 여의주 하나를 노총각에게 주고 용이 되어 날아갔고, 노인에게 가서는 함께 땅을 파서 금덩어리를 제거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소나무가 자라서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노총각에게 금덩어리를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혼자 산골에서 사는 처녀에게 가서 답을 주자, 그 처녀는 환히 웃으면서 그 노총각에게 “두번째 방문하신 분은 바로 당신이세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노총각은 그 처녀를 아내로 맞아 행복하게 복있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복을 주셨지만, 알지 못하고 살아왔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구원케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을 우리는 우리만 받고 있는지요. 우리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함께 누리지도 못하기 까지 하는지요.

요한 복음 3장 16절의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아들을 믿는 사람이 가지는 이 하늘로부터 오는 복을 저와 여러분만이 누리시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 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이 복을 무시하고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서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하나님 은혜를 저와 여러분이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오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의 복에 대해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와서 예배 드리는 것이 의무가 아니고 강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진정으로 깨닫고 누리기 위해서임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이 복을 정확히 알고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이여 임하셔서 우리만 이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 이 사실과 그 기쁨을 우리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도 전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서 이 세상을 살게 하시고 이를 통해 이 세상이 변화되어 온전히 주님의 것으로 만들어 주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