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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10) 사람의 속에 있는 것 (주일예배 20120722)

by 온누리선교 2012. 7. 22.

 

 

 

성경본문 요한복음 2:23~25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설교: 사람 속에 있는 것

 

연예인들이란 대중의 인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중의 인기가 하락되면 연예인들의 가치또한 하락됩니다. 나름 자신들은 뮤지션이다, 연기자 배우다 하며 인기와 관계없이 전문가인척 하지만, 그들도 인기가 없어 찾는 사람이 없다면, 음악도 연기도 할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과 관심을 사는 것이 바로 연예인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마음을 영원히 사는 연예인들은 아주 드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로 받는 인기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스캔들에 휩싸이게 되거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바뀌면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은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오빠 오빠”라고 외치던 팬들이 오늘은 돌을 던지며 비난하거나, 아니면 “언니 언니”하면 다른 연예인을 향해 자신의 관심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늘 항상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관심을 돌리지 않기 위하여 늘 노력하고 그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워낙 변화무쌍하고 불안정하여서 항상 일정하게 유지시킨다는 것은 어렵기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길 인기란 한갓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과 이적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그 이름을 믿었고, 또한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표현하는 인기에 흡족해하거나 그들의 존경과 사랑을 믿지 않으셨다고 나와있습니다. 왜 그리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가지기 위해 당시 표적과 이적을 보면서 따르고자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라본 예수님의 눈을 통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어찌하면 올바르게 믿음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지를 함께 알아보고 이를 통해 큰 은혜 받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믿는, 체험중심적인 믿음을 경계하셨습니다.

 

주님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십니다. 갈릴리에서 살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기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4복음서를 보면 엄청난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문등병자도 고치고, 중풍병자도 고치고, 귀신들린 사람도 고쳤습니다. 그 소문이 얼마나 빨리 퍼졌겠습니까? 그러니 그 소문이 어찌 예루살렘에 퍼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왜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기적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고 기적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떠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지면 한계가 있습니다. 체험과 기적을 통해 세워진 신앙은 조심해야 한단 말입니다. 사람의 시청각은 믿을 수 없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이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람 눈에는 세균이 안 보입니다. 그 세균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존재인데도 안 보입니다. 사람의 청각도 후각도 동물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연약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뭔가를 보았기에 믿는다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따라 믿은 사람은 기적이 사라지면 그들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것을 아셨기에 기적을 보고 믿는다는 사람들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요20:29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도마에게 하신 말을 아시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롬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기에 우리 신앙의 기초는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는 ‘말씀’이고 그 말씀을 통해 믿음이 새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말씀보다 기적을 더 선호하면 우리 신앙은 뿌리가 견고치 못한 연약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기적에 근거한 믿음보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사람 한 사람 한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바라보는 숫자 중심적인 믿음을 경계하셨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을 찾아가며 그곳에 있으려고 합니다. 식당도 사람이 많은 곳이면 맛있는 곳이라는 믿음, 친구가 많은 사람이면 뭔가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면 실력이나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성도가 많은 교회의 목사이면 뭔가 특별하고 강력한 은사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등... 많은 숫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들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23절 중간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가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의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그들에게 몸을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왜죠? 그 몰려든 사람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그들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아니고 그 숫자가 허수인 것을 주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사실, 숫자에 연연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인생을 보자면, 예수님의 인생은 참으로 실패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일으키시고, 혁명자적인 삶을 사셨지만, 결국 예수님에게는 12제자밖에 핵심적으로 따르는 자가 없었고, 많은 정치적인 적들로 인하여 늘 불안한 삶을 살았고, 결국엔 그 적들로 인하여 정권을 잡는데 실패하고 십자가에서 중형을 받아 죽게 되는 처참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적으로 보면 불쌍하고 억울한 그리고 뒷전으로 처참하게 물려져 버린 존재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고 영적으로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시고 진정으로 승리한 분이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신앙의 눈, 믿음의 시각입니다.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감히 여러번 시험했던 기드온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미디안이 아말렉과 동방사람들을 다 규합하여서 이제는 완전히 이스라엘을 먹어버리려고 요단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쳐버렸습니다. 이 군사의 숫자는 135,00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이 전쟁을 위해 모이라고 말한 이스라엘 장정들의 자원자 수는 단지 32,000명이 모였습니다. 너무나도 전쟁에서 싸우기에는 부족한 수였습니다. 결사항전한다해도 금방 무너져 패하여버릴 군사의 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 즉,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너무 사람이 많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기드온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의 편을 들지 않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두려운 자는 다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용감히 남은 10,000명도 너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물가로 데려가 손으로 물을 떠먹은 300명만 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31,700명이 돌아가더라도 그들을 통해 일하고 싶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바른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끝까지 남은 300명을 통해 십삼만 오천명의 미디안 연합군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잘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을 조직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들을 피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숫자를 바라보지 마세요. 수가 많다고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소수라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나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이 바로 세상을 바꾸고 천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대중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서서 하늘의 축복을 받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4~25절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간혹 부모님들이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 이야기는 자식의 독립성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자녀들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상처받는 어머니 아버지들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어렸을 때는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하여 부모에게 의지하고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성장하여 힘이 있고, 능력이 되면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마음대로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버이 은혜를 일 년에 한 번씩 부르고 기억하지만, 실상 모든 삶 속에서는 오직 자신만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만 집중하는 이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24절 하반절에서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이라고 말씀하시고, 25절 하반절에서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이나 “아셨다”는 표현을 했는데 뭘 아셨나요? 그들 속에 “이기적 믿음”을 아신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중심적인 믿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text)보다 자기 상황(context)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늘 자기 환경을 중요시합니다. 기적을 보일 때만 내 주님인 그런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게 이익이 될 때는 따르는데 내게 이득이 안 된다 싶으면 돌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실상,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따랐던 사람들 중,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 세워졌을 때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구원해보라”라고 비웃었던 사람 또한 그 중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아시기에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한다며 존경한다며 따르는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사명을 이 땅에서 묵묵히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신앙은 현재 주님 앞에서 어떠한 상태일까요?

제가 작정기도를 위해 한 기도원에 올라가 예배를 드릴 때 어떤 부흥사 한분이 이러한 말씀을 하신 적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를 보면, 종이배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도들은 파도가 밀려오면 홱하니 엎어지는,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 너무나도 연약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또 보면, 돗단배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믿음 가운데에서 바람이 불면, 그것을 잘 타고 앞으로 전진하지만, 강풍이 불어버리면 또한 쉽게 쓰러져 버리는 그런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랍니다. 그래서 큰 시련 가운데에서는 쉽게 무너져 버리고 침몰해 버리는 그런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또 통통배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있다고 합니다. 거친 파도와 풍랑 가운데에서도 힘겹지만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통통통” 너무나 시끄럽습니다. 너무나 엔진소리로 인해 파도소리도 뭍혀버릴 지경입니다. 이렇듯, 고난 가운데에서 묵묵히 가지 아니하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게 고난을 이겨내며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예배하지만 그 하나님께 그리고 사람에게 시끄러운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이 때문에 받은 은혜도 이런 사람들은 다 까먹어버리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크루즈같은 큰 배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이 성도들은 큰 파도와 풍랑 심지어 태풍 속에서도 든든히 믿음의 항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성도들은 통통배신앙을 가진 성도들과 달리 아무 소리 없이 풍랑 가운데 서도 있는지 없는지 그저 거친 파도를 거슬러 신앙 생활을 합니다. 가끔 너무 힘들면 “뿌웅~”하고 크게 기적 소리를 낼 뿐, 아무런 변함없이 험난한 바다를 항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한 배로 이 험난한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까? 고난 앞에서 홀라당 뒤집어져 젖어버리는 종이배입니까? 믿음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거친 파도 앞에서 뒤집혀 버리는 돗단배입니까? 주님을 온전히 의지한다지만, 그 품 안에서 고난이 닥치면 인간적인 눈으로 불평불만하는 통통배입니까? 마지막으로 거친 풍랑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강력한 엔진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면서 가끔 너무 힘들면 “주여!”라고 뿌웅~하는 엔진의 기적 소리를 내는 크루즈입니까?

오늘 예수님 앞에서 크루즈 신앙을 가진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적만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온전히 믿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표적으로 인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하여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의 연약한 이기심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히 충만한 은혜의 바다에서 살아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주님!

우리의 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이기적인 것인지 주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 속에 있는 더러움이 전혀 씻어질 수 없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가 부르면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기적만을 바랄 뿐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진심이 없었음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순간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져주셔서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순전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이 험난하고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