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히브리서강해23)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하게! (수요예배20140108)

by 온누리선교교회 2014. 1. 9.

설교본문: 히브리서 10:1~9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설교: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하게!

우리가 종종 보면,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목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살면서 “나는 도대체 왜 사나~목숨 붙어있으니 살지..‘라고 사는 사람들은 늘 사는 게 그저 그렇고, 오늘도 그날 내일도 그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표가 있고 꿈이 있는 사람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바쁩니다. 하루를 쪼개도 너무 모자를 만큼 바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 시간 이 땅에서 살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할 때 아주 당황스럽지만 똑똑한 돌직구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유치원 학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왜 오신 거예요?” 그 어린 아이이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구해주시려고 오신 아주 훌륭하시고 좋은 분이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왜 함부로 우릴 위해 죽는데요?”라는 질문에 탁 막힌 적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 유치원 학생이나 우리에게 아주 명확하게 답을 해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꿈을 가지고 계셨고, 왜 이 땅에 살아야하는지 그 이유도 정확히 아셨고, 무슨 일을 하고 또 하나님 명령에 어떻게 순종해야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할 일과 목표, 그리고 꿈꾸는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아시고 계시기에 그 엄청난 일들을 다 견디고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오늘 말씀을 통해 만나시고, 주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고자 결단하시는 값지고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1~4절 말씀입니다.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율법은 어떤 것일까요? 이스라엘이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려준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한 율법을 통해 메시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지키라고 만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늘 겸손해져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하나님 뜻이 어디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기능은 첫째, 참된 것을 기다리고 준비하게 합니다. 만약 율법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죽음이 죄를 씻는 희생 제물로서의 죽음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율법은 죄를 생각나게 합니다. 만약 인간이 죄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희생 제물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죄를 깊이 인식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앞으로 하나님께서 해주실 완벽하고도 좋은 축복을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우리를 완전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완벽히 지킬 수 없을 뿐 더러 지킨다 하더라도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 1~2절의 말씀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이 제사 때 아무리 많은 제물을 바쳐도 사람들에게 온전한 구원의 희망은 없었으며 끝없이 바쳐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허탈감만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소, 양, 비둘기 등과 같은 동물 제사는 그저 상징적인 것일 뿐, 우리의 죄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해에 우리나라 안에 들어오는 가짜 명품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홍콩 대만 일대에 가짜 명품관광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꾸찌, 프라다, 샤넬”을 사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아마 가짜라도 가지고 다니며 자신의 완벽한 모습을 만들고 싶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가짜를 들여오다가 세관에 걸리면 엄청난 관세를 내야하거나 심한 경우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진짜 명품을 가지지 못하면, 이렇게 모양새도 우스워지고, 또 심지어 더 많은 돈을 내야하고 벌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비슷한 모양, 똑같은 디자인이라 할지라도 그 내용물과 핵심은 전혀 다른 것을 위해 많은 사람들은 진짜인 척 하며 사고 가지고 다닙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하고 덧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도리어 이런 가짜가 판치니, 원래 진짜 명품들은 더 값이 올라갑니다. 비상식적으로 부르는게 값이 될 정도로 올라갑니다. 심지어 남들이 쓴 중고품도 보통 디자인 백이나 가방보다, 구두보다, 옷보다 더 가격이 비쌀 지경입니다.

율법은 마치 가짜 명품과 같습니다. 그 모습과 그 디자인은 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진짜로 가져야 할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의 모습을 인간들이 이해하기에 딱 맞고 들고 다니기에 맞게끔 만들어졌습니다. 적당히 어렵고 적당히 지켜 성취감있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수도 없고, 온전히 이룰 수 없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데로 살 수 없습니다. 즉, 율법만으로는 천국을 가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진짜인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떤 건물을 지을 때, 설계도를 미리 만듭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의 전체적인 모양을 알기 위해 조그마하게 미리 만들어봅니다. 이런 것을 조감도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조감도는 실제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건물이 다 만들어졌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미리 보여 주는 그림일 뿐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친히 희생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써 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복음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과 복음에 대해 참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아주 재미있고 그 차이를 잘 알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어느 촌락에 한 가정만 빼고 모든 가정의 젊은 남자들이 아내를 학대하고 바람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촌장과 노인들은 모여서 법을 만들었습니다.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는 자는 마을 법에 의해 처벌할 것이다!” 그 법이 만들어진 뒤로 바람피우는 남자들은 줄었지만, 여전히 남자들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고, 바람 못피우는 것을 포르노영화를 보고 도박을 함으로 대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정의 남자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이 가정은 늘 웃음이 넘쳤습니다.

마을 촌장과 노인들은 어떻게 하면 마을의 남자들이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매일 모여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여러 가지 법을 더 만들었습니다. "도박하지 말 것, 포르노 영화보지 말 것, 아내의 말을 들어줄 것" 그러나 아무리 수백 가지의 법을 만들어도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도록"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제법 똑똑해 보이는 노인이 마치 해법을 찾은 듯 말했습니다.

"모든 법을 폐지하고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법을 만들면 어떨까?"

촌장을 비롯한 모든 노인들은 그럴싸해서, 박수를 치며 만장일치로 법을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젊은 남자들이 이 법이 만들어지자, 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마을 촌장들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가장의 남편을 본보기로 해서 여러 가지 행동 규칙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설거지 해줄 것! 사랑한다고 매일 말할 것! 용돈의 십분의 일은 아내를 위해 쓸 것! 시간 날 때마다 청소해줄 것! 주기적으로 꽃을 사 줄 것! 등등"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모든 마을 사람들이 제법 열심히 법을 지켰지만 여전히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오직 한 가정만이 행복했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사랑은 법으로 만들어서 강제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에 새겨져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아내를 사랑하는 그 사람은 오히려 마을의 법이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자발적으로 해왔던 것인데 갑자기 강제로 하려니 아내와의 관계가 어색해진 것입니다.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옳지 못한 사람들, 곧 불의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이 아내를 사랑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젊은 남자들에게 큰 각성이 일어났습니다.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마음이 새로워졌습니다.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만든 "아내를 사랑하는 법"은 마침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가 이런 것입니다.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에 새겨져서 우리를 바꾸고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복음을 높이 우리의 인생 앞에 놓고 살아야 합니다. 6~9절의 말씀입니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오늘 9절에서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뭐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내가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려고 하셨던 일이 무엇입니까? 율법으로는 절대 구원받지 못할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시키신 일입니다. 또 각종 동물의 피와 희생으로 죄 용서받는 제사의식을 폐하시고, 그것으로부터는 사람이 온전히 죄에서 자유해지지 못하니까, 죄 용서받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너무 잘 알고 계셨습니다. 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목적, 이 땅에서 하기를 원하시는 일들을 하면서 33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아가셨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 부모를 공경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갔습니다. 서른 살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을 만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억눌린 자에게는 자유함의 복음을 전해주시고 가난한 자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바쁜 일과를 보내면서도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시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셨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보시며 용서를 선언하시고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담당해주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일이고, 이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그러나 아버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 다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 생명 한 생명이 다 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사는 것이 예수님처럼 힘들고 괴로울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며 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마시고, 늘 하나님 안에서 순종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에게 복음의 은혜를 알게 하시고, 이를 따르도록 순종하는 마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늘 우리가 주 안에서 살도록 복 내려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살 수 있도록 힘과 능력 주시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