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온누리선교교회 Onnuri Mission Church Миссионерская церковь Оннур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사도행전 강해 73) 예수는 그리스도 (수요예배 20151007)

by 온누리선교 2015. 10. 7.

 

성경본문: 사도행전 17: 1~9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설교: 예수는 그리스도

 

스위스에 가면 유럽의 지붕이라고 하는 알프스 산이 있습니다. 알프스의 어떤 봉우리에 누군가가 하얀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하나 세워 놓았습니다. 그 십자가에는 "오직 예수"라고 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철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스위스를 방문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은 사랑하는 딸과 함께 어느 알프스 산봉우리를 오르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올라갔습니다. 거의 다 올라갔을 때 사랑하는 딸이 그만 실족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돈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이 그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도 지위가 대단히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도 그에게는 아무런 힘과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때에 그에게 참된 위로가 되고 그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었습니다. 지위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고 신체보다 마음의 장애가 더욱 괴롭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맙고 놀라워서 사랑하는 딸이 떨어진 그곳에 하얀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라고 하는 글귀를 적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우리의 위로가 되시며,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에 헬라인 중에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억울하게 예수를 로마황제대신 왕으로 섬긴다고 고발하고 잡으려하자 급히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들을 피신시킵니다. 예수를 위해 헬라인 그리스도인들은 당하지 않아도 되는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우리가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해바라기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무슨 일을 당하든지 의의 태양되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모습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10에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잘 알아서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귀중하고, 축복의 일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함께 깨닫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1~4절의 말씀입니다.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냐의 수도였고 빌립보 보다 큰 성이었으며, 유대인들도 상당수 이었기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마게도냐는 헬라의 북쪽이요 한반도에 비교하자면, 빌립보가 신의주라 하면 데살로니가는 평양 격입니다. 거기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또 회당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회당에 이방인 유대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당문화에서 외부에서 온 유대인이라면, 격식에 차려 성경을 읽고 그 뜻을 풀어 해설하는 강론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 출신이며 가말리엘 문하생이었던 것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아주 파격적인 강론을 펼쳤습니다. 그렇다면 그 강론의 내용이 무엇이었기에 세 번만에 강론의 자리에서 강제로 내려오게 되었을까요? “이사야 등 메시야에 대한 성경에서 보면, 메시야, 즉 그리스도께서 갖은 박해와 고난을 받으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추신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시며, 그 분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교는 참으로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그 회당에 혈통적 유대인과 경건한 헬라인이라 불리는 유대교 개종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정치적 그리스도, 즉, 로마식민지를 끝내고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서 다윗-솔로몬 왕조때처럼 부강한 이스라엘국가를 만드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말하는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적인 구원자이고 평범한 목수의 아들 예수가 부활하여 성경에서 말한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거짓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며 화를 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간절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낫 목수의 아들 따위가 하나님의 아들로, 병이나 고치고 다니던 자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니 기가 막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유대인들이 성경으로 바울을 논박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도 성경에 비추어보면,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각한 메시야가 아닌 것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유대인들의 바울을 향한 분노는 그저 “시기 질투”때문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쌓아온 기존 신앙을 흔들고 경건한 헬라인들에게 신앙적으로 군림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공격당하고 침해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자신의 유익을 지키려하고 다른 사람을 밟고 우뚝 서려는 모습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 그리고 이들을 따르는 주님의 자녀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꽤 큰 부자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고령의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가 예수님 믿고 중생한 후 어느 날 손녀의 손목을 잡고 장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불쌍한 사람이 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그에게 얼마를 주고 가다 보니 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합니다. 물론 이 할머니는 그에게도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구세군의 자선냄비에도 얼마를 집어넣고, 이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손녀가 말합니다. "할머니, 오늘 참 손해 많이 보시네요 ?" 할머니는 그 어린 손녀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렇게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예수님 믿은 후에 급한 성격도 버렸고, 남 흉보던 말도 버렸단다. 세상 쾌락도, 욕심도, 이기심도, 질투도, 남을 비판하는 마음도 다 버렸단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예수님뿐이란다"라고 대답하셨답니다.

 

시몬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예수님께 말했습니까?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5~9절입니다.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그러나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들은 경건한 헬라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놀라기는 했지만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진지하게 들었고 진리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그 진리를 듣기 위해 바울과 실라를 쫒았습니다. 유대인문화와 달리, 데살로니가는 여인들의 지위가 놓았습니다. 그래서 부인들을 존중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라는 이름도 빌립왕의 딸이요, 알렉산더 대왕의 누이동생의 이름을 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에도 먼발치에서나마 강론을 들을 수 있는 문화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이 곳에 세워질 때에 여성신도들이 많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유대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이러다가는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야손의 집에 있는 바울과 실라라는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반역을 꾀하고 있다. 로마황제 가이사를 왕으로 여기지 않고 예수를 왕이라고 하고 예수를 왕으로 섬긴다!!!”라고 말하면서 반역죄를 뒤집어씌웁니다. 그러자, 그 지역 지도자들이 놀라서, 야손과 함께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다가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평범하게 성실하게 데살로니가에서 살던 야손과 몇 형제들이 졸지에 그리스도인이 되니 감옥에 갇혀 보석으로 풀려나는 범죄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후에 이러한 고난에도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셔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왜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고난의 사건들이 일어나야 하냐고 말입니다. 온전히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평안하게 세워지고 부흥되면 왜 안되냐고 말입니다.

그런 것으로 치자면, 예수님께서 사단의 유혹을 세례요한의 세례 후에 세 번이나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죄없이 누명이 씌워져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리스도이시기에 그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감당하시고 이겨내시고 온전히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어떤 집사가 세상을 떠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했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은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물으셨습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왔는가?” 역시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 역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닙니다” 간신히 대답을 하고 어떤 벌이 내려질 것인가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전신을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눈을 드니 예수 그리스도가 곁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사를 껴안고 보좌를 올려다보면서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도 못했고 의롭지도 못했고 깨끗하지도 못했으나 세상에서 이 사람은 항상 저의 편에 있었으니, 지금 이 곳에서는 제가 이 사람 편에 서겠습니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의 편에 서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메시야이시며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타깝게도 이를 몰랐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메시야를 이용하려했고, 주님의 피 값으로 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계속해서 퍼져나갔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늘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져서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피를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여!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당신의 사랑을 전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사랑 가운데 많은 자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널리 전하고 또 그 이름 위에서 주님의 백성으로 축복받으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