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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 42)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수요예배 20170719)

by 온누리선교 2017. 7. 19.


 

성경본문: 로마서 11: 1~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설교: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꿈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이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소년과 거인 골리앗의 싸움을 종종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골리앗을 물리치기에는 너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감히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돌팔매가 빗나가기에는 골리앗의 몸집이 너무 크다며 자신만만하게 덤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일이 어떤 식으로 해결되느냐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식으로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믿지 않는 자기 동족을 향해서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반드시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라고 사도 바울이 믿고 있는 것을 보면서 끝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을 바라는 그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하나님이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리신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바로 바울,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사울로 살던 자신처럼 악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잡아서 감옥에 넣고 괴롭힌 사람이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너무나 기독교를 핍박하고 힘들게 한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인 자신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부르셨는데 결코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을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나타난 여러 가지 예를 듭니다. 자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서 그 벌로 버림받은 것 같아 앞이 깜깜했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북이스라엘 왕 아합왕은 이방여인 이세벨과 결혼해서 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특히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면서 백성들도 여기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시 유목신으로 여기지던 여호와 하나님 대신 농경과 풍요한 신으로 여겨졌던 바알과 아세라 신은 이스라엘에게 너무나 유혹적이었습니다.

왕도, 여왕도 믿는 신을 백성들이 아니 믿을리 없습니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이 우상들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아니면 하나님을 버리고 이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고 타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자기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절망해서 부르짖었습니다.

모두가 타락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가 사방을 둘러보니,

하나님을 믿는 자는 자기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너무너무 절망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3절입니다! “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로뎀나무 밑에서 철저히 외로워하는 엘리야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셔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당당히 이겼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아합왕이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기적을 보았으니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이세벨 여왕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아합왕도 이스라엘 백성도 뭐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한 명도 회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엘리야가 실망하고 무섭고 힘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4절입니다.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엘리야가 보기에는 이스라엘 나라는 이제 하나님을 영원히 떠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숨겨 놓아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7,000명을 남겨 놓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에서 우리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끝까지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는 자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

2014년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 명량이 대히트를 하면서 유행한 대사입니다. 15978월 정유재란의 칠천량해전으로 조선수군이 궤멸하자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면서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령합니다. 선조와 더불어 조선 최고의 엘리트 관리들의 눈에 이미 수군은 끝장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는 비장한 장계를 올립니다. 모두 이순신이 미쳤거나 소위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명량해전에서 실제로 이순신은 단 13척의 배로 2백여 척이 넘는 일본수군을 대파함으로써 조선수군의 부활을 가능케 합니다.

그 당시 잘 싸우는 장군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처럼 절망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발견해 열심히 싸워 승리한 장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절망 가운데에서도, 남들이 안되고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빋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소망을 발견케 하는 비전과 그 비전을 이루어내는 의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위대한 장수입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로도 도랑을 흙탕물로 만들고 한 방울의 독으로도 한 통의 생수를 독물로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실에서는 항상 악한 것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따라 사는 사람들은 항상 기적을 보고 살게 될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항상 작은 악이 큰 선을 이기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 말합니까?

 

5~10절입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은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깨닫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마음이 열려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은혜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고, 예수님의 놀라운 부활의 메시지를 들을 때에 귀가 열렸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는 것을 확인 했을 때,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은혜를 주시지 아니할 뿐 만 아니라,

그 은혜를 받을까 싶어서 눈도, 귀도 다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남자가 친구에게 꼬여서 밤중에 술집엘 갔습니다.

여자를 옆에 놓고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난 후 음주 운전을 하다가 치어서 사람을 죽였다고 합시다. 경찰서에 가서 술이 깬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왜 탓하느냐? 나를 술집에 데리고 간 친구를 벌주는 게 맞습니다.”라고 한다면 이게 통합니까?

또는 나는 술 취해서 그 사람을 잘 못 보았다. 술 때문에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 변명이 됩니까? 안 통합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이 나중에 이러니저러니 변명할 수 없는 것이 이 술취한 사람하고 똑 같습니다.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고의적으로 어떤 사람을 버리셨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유식하다는 사람일수록 거부 반응이 굉장히 거셉니다. “그런 하나님이면 나는 믿을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 가운데도 하나님에 대해서 거부 반응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여러분 스스로 논리적으로 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왜 버리셨을까?’라고 하는 것 보다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왜 택했을까?”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택함 받은 은혜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은혜로 택함을 받아 험난한 세상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남은자로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연약한 우리를 돌아보시고 악한 세상에서 우리를 택하여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구원받는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늘 하나님 안에서 승리의 길을 가게 하심을 우리가 날마다 봅니다. 사도 바울과 엘리야처럼 우리도 주 안에서 절대로 절망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주를 섬기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