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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강해 43) 은혜로 되어지는 것 (수요예배 20170726)

by 온누리선교 2017. 7. 26.

 

성경본문: 로마서 11: 11~12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설교: 은혜로 되어지는 것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책이 우리 나라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는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죽음을 앞에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환상 중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에 부딪혔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앞으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답답해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바위를 치워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물으셨습니다. 워치만 리는 바위는 그대로 두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지나갔답니다.

이 환상을 본 다음에 그는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평생토록 귀한 일을 하는 주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바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앞에 있는 바위. 즉 원수나 시험 등을 치워달라고만 부르짖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게 주신 분복 그 상태에서 초연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다. 넘치는 은혜가 있기만 하면 시험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을 말하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교회에 다니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 짧은 두 구절이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축복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어떤 의미로 혹은 어떤 목적으로 택함을 받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그것 그 자체만으로도 복 받은 민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축복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 백성되는 일은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의무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별한 복을 누리는 백성이 됨으로써 그들은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명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복을 자기들만 누리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거부하고, 복음 전하는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도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주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핍박을 날마다 당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여러 번 하고, 죽음의 위험과 온갖 고난의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유대인들이 바울을 괴롭혔냐면, 소아시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유럽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다른 도시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괴롭히고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참다참다 못해 바울은 이제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13:46)로 살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든 결정입니까! 사랑하는 가족들, 민족들을 버리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귀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결정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듯이 하나님은 동일하게 그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으면서 바울은 그것을 통해 자신이 이방인을 위해 부름 받은 사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발견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기막힌 은혜란, 감옥에서 석방을, 질병에서 치유함을, 막힘에서 형통함을

궁핍에서 부요함을 주시는 것 뿐아니라 감옥에서, 투병중에서, 막힘속에서, 가난속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가 실로 기막힌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 자체가 축복이며, 기적이며, 형통함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기막힌 은혜가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오래 교회에 다니신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사업 때문에 전처럼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날마다 사업에 매달리느라 직분도 제대로 충실치 못했습니다. 어느 날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졌습니다. 그래서 동분서주 뛰어보았지만 마침내 사업은 부도나고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람도 떨어져나가고 거래도 끊기고 친구도 멀어졌습니다. 순간 배신감과 좌절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상당히 은혜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한 말 한마디. “고난을 받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들과 멀어지니까 비로소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참 값비싼 공부를 했습니다. 때로는 실패도 은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냐?",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져 사느냐?"입니다.

 

그래서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읍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한마리 닭과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읍니다.

가도 가도 집은 없고, 해는 저물어 하는 수 없이 길옆에다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에다 묶었습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하고 아침을 알려주는 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랍비가 천막 속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등잔대가 넘어지고 그만 불이 꺼졌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 기도를 하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 맹수들에게 나귀와 닭이 죽고 없어졌습니다.

그는 찢어진 천막을 챙겨서 주위를 살펴보니 자기가 바로 동네 가까이서 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갔더니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어제 밤에 강도떼가 이곳을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그야말로 수라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때 랍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만일에 등불이 켜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고 내었다면 자기도 틀림없이 죽었을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미리 잃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잃어버린 것이 많았습니다만, 잃어버린 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에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때로는 역경에 처하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어떤 여건 속에서라도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깊은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렇게 주님을 섬기는 일이 실패라고 세상이 손가락질 할 때 이렇게 주님께서 돌봐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된다라는 오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중 적은 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으나, 남은 대다수는 완악하여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이제껏 믿지 않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에 예언된 바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방인들의 구원이 되었고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 즉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 그 엄청난 일이 도리어 이방인들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엄청나게 많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약 유대인들이 나중에 깨닫고 하나님에게로 온다면 얼마나 큰 구원을 누리겠습니까? 아마 전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큰 실패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실패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사단이 이기고 그리스도께서 지신 것처럼 보였지만 그리스도께서 3일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미래에는 구원함을 얻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왜 유대인들이 이런 귀한 은혜를 못 받는 것입니까?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믿지 못합니까?

세계의 많은 민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축복을 받고 있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님을 무시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교만'입니다.

이 교만 때문에 오늘날 유대인이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되었고, 핍박받고 고난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교만은 선민의식입니다. 자신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들의 의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교만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죄사함의 진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생명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나라이셨지만 군인도 없고, 돈도 없으셨습니다. 내각도 고기 잡는 어부로 구성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 때도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겸손입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납니다. 구원의 은혜는 나의 공로가 아니라 겸손하게 주 예수를 영접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은혜를 못 받았지만 오히려 창기나 세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가 필요하다고 찾는 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나라를 떠나 이방나라로 건너가 이방 땅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겸손이 생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생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교만입니다. 교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어떤 개인이든지 기업이든지 권력이든지 교만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를 망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교만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교만한 지도자 하나가 들어와서 온 나라를 망친 것입니다. 천 가지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교만하면 은혜가 다 떠납니다. 교만은 모든 축복의 문을 닫습니다. 교만은 좋은 친구도 다 떠나가게 합니다. 겸손해야 친구도 늘 옆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오직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에 늘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가 겸손히 주님께서 주신 말씀과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기도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항상 함께 하셔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가 악한 사단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영적으로 강건케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