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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롬1:16~17 주일예배 20171008)

by 온누리선교 2017. 10. 7.

성경말씀: 로마서 1: 16 ~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설교: 하나님의 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는 말을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또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믿는다는게 정말 쉬운 건데 사람이 믿는다해서 죄많은 인간이 하나님께 용서받고 구원받아 축복을 받는다는 말이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말입니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참으로 좋다’하면서 동시에 말도 안된다는 말을 하니 말입니다.

제가 사역했던 교회들에 이런 분들이 꼭 계셨습니다. 한신교회 청년 중의 한 명은 자기 집안은 5대째 기독교집안이라면서 대학생인데 십일조며, 주일에는 와서 꼭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1시간 딱 예배드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주 유명한 잘 노는(?) 분이셨습니다. 또 중국동포교회 있을 때, 중국 있을 때 가정교회에서 성령받아 방언도 받았다며 교회에서 손들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일만 가면 욕하고 거칠게 행동해서 문제가 많은 그런 분도 계셨습니다. 또 인천 와서 초창기에 목회하는데 교회는 다녔으나 상처를 받아 교회를 안다니고, 또 너무 힘들게 사는 가정이 있어서 도와드리고 좋은 섬기는 한국 분들 소개시켜드렸더니, 교회를 안다닙니다. 바쁘답니다. 힘들답니다. 그래서 도와주시는 분들 가까이 사니 그 교회로 가라 했더니, 안 간답니다. 그 한국 분들한테는 이 교회다닌다 말하고, 저한테는 그 교회 안 간다며 배신 안한다며 열방교회도 안오고... 그러면서 자기는 하나님 믿는다고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영혼들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는 평생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마지막 마지노선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변하지 않는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자녀되는 사람은 오직 진실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일어날지 복된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6절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의 주제는 ‘복음’입니다. 바로 ‘축복된 소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만 ‘복음’이라는 단어가 7번이나 나옵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복음, 복된 소식이다. 이 만큼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누군가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랑스럽지 않으면 또 부끄럽다고 여기면 숨기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복음을 부끄러워했을까요?

초대교회 교인들 중에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십자가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시대의 십자가는 아주 죄질이 나쁜 사람들을 심판해서 죽이는 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너무 가혹했기에,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생각할 때, 자랑스럽기보다는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웠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문화에 나무에 달려죽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뿌리 깊은 의식이 있었기에(갈3:13), 저주받아 죽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복음을 미련한 것(고전1:18)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복음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구원받는 길이 됩니다. 어디에서 구원을 받습니까?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죄를 가지고 그대로 가면 결국 망하는길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지옥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해결해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죄를 해결하고 지옥에서 벗어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은 돌아가시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여, 유산을 모두 챙긴 후, 집을 나갑니다. 집을 나간 아들은 허랑 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하고, 흉년을 맞아 비참한 모습이 됩니다. 얼마나 비참해졌냐면, 심지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며 삽니다. 처참한 인생을 체험한 후에,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하며 그는 후회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품을 떠난 사람들의 끝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자기 욕심 때문에 아버지를 버렸고, 아버지에게 돌아가기에는 큰 죄를 지었고, 이렇게 살지는 못하겠고~ 이렇게 고민하던 아들은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라고 말하면서 아버지께 돌아가, 용서를 빌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아들의 죄가 아니라, 아버지를 떠났음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려고 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하여도 용서하는 사람은 바로 아버지일진데, 배신하고 떠난 아들을 용서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보아도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아들이 나간 이후, 아버지는 대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돌아오는 아들을 맞아, 죄를 묻지 않고 불쌍히 여겨, 안고 입을 맞춥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주었습니다. 데려다가 잔치를 베풉니다. 아버지는 벌써 아들의 죄를, ‘돌아오는 순간’ 다 용서하였던 것입니다.

온전히 아버지의 능력 때문에 아들은 살았습니다. 그 비참한 인생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습니다. 비참한 죄의 인생에서, 그리고 지옥에 빠져 영원히 살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영혼이 건져져서 주님의 품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 속에는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고, 죄악을 멸하는 능력이 있고, 그래서 사람을 새롭게 하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 안의 능력은 절망한 인생을 영원한 소망으로, 가난한 인생을 부요케 하는 능력이 있고, 가정을 새롭게 하고 사회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으며, 미움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이런 모든 능력이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겠습니까?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하며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어서 17절의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것은 복음에는 인간의 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모두 덮고 하나님과 연합한 자가 되게 하시어 의로운 자로 여김 받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에 속하게 하신 은혜를 말합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기에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믿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선물로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하시고 믿음에 일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는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란 말로 이 말은 히브리어 '체덱'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언약 개념' 즉, 약속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도덕적 기준에서 흠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을 맺은 둘 사이에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으려면 두 가지를 꼭 믿어야 합니다.

첫째는 십자가상에서 나타난 구원의 약속을 믿는 것, 즉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약속을 지키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옛날 노아가 120년 간 그 약속을 믿으며 방주를 짓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한 구절의 말씀이 참으로 간단해 보여도 이 말씀은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 세상을 누구를 통해 흔들었냐 하면 바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였습니다.

루터가 천주교의 신부로서 사명을 갖고 로마에 갔을 때 그의 나이 30대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그가 동료 신부들과 같이 '스칼라 상타'라는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계단은 28층으로 되어있는데,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면서 올라가신 계단인데,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천사들이 로마로 옮겼다며, 누구든지 이 계단을 무릎으로 한번 오르내리면 15년간의 죄가 용서를 받는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전설이 카톨릭 안에 있습니다. 루터가 반쯤 올라갔을 때 평소에 읽고 은혜를 받았던 로마서1:17절의 말씀이 캄캄한 밤중에 샛별처럼 그의 마음을 밝혀 주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는 즉시 헛된 고행을 중지하고 뛰어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주교의 비 성경적인 점이구나 생각하고 95개조의 항의문을 만들어 단독으로 로마 교황청에 도전하여 마침내 종교개혁의 위대한 금자탑을 세웠습니다.

그 당시, 루터는 95개조항을 내세우고 다음의 3대원칙을 주장했습니다.

“첫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지키거나, 선행이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 성경만이 신앙의 행위의 표준이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셋째, 카톨릭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개신교가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죄사함을 받는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고, 면죄부로 죄사하는 티켓을 사지 않아도 되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하나 소개해드리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어떤 외딴 마을에 술집이 하나 생겼습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술꾼들이 모이고 밤늦도록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인근 교회에서는 특히 주일 저녁 예배에 큰 지장이 되었다.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그 술집을 불태워 버리시든지 어떻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교인들이 한참 기도하는 중 마침 그 술집에 벼락이 떨어져 순식간에 온 집이 다 타 버리고만 것이었습니다. 술집 주인은 동네 교회에서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여 재산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법원에 재판을 걸었습니다. 반면에 교인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변호사를 대고 맞소송을 걸었습니다. 얼마 동안의 심의 끝에 재판관은 아주 도전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반면에 소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걸론이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받는다고 믿고 있습니까?

진실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변하지 않는 진짜 사실을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게 해주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날마다 하나님 축복 가운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죄많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천국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통하여 영혼이 살고, 인생이 살게 해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큰 은혜 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주님의 사랑 안에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