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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전서 강해 2) 분쟁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수요예배 20180117)

by 온누리선교 2018. 1. 16.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 10~17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설교: 분쟁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고양이 두 마리가 고기 한 덩이를 얻어 가지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원숭이가 자기가 재판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고양이들은 쾌히 승낙하고 고깃덩이를 원숭이 앞에 놓았습니다. 원숭이는 고깃덩이를 둘로 잘라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작은 것을 받은 고양이가 "내 것이 더 작다."고 하자 원숭이는 큰 것을 한 입 잘라먹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고양이가 자기 것이 작다고 하였습니다. 원숭이는 또 다른 고기를 한 입 잘라먹었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계속하니 고기가 양쪽 다 아주 작아졌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들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었으므로 원숭이는 고기를 다 먹고는 줄행랑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고양이들은 자기들의 싸움을 후회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싸운다고 합니다. 바울파니, 아볼로파니, 게바파니, 심지어 그리스도파로 불린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일이 고린도교회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교회가 그렇습니다. 잠언 20:3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했습니다. 영광보다는 미련하게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기고 살아가길 원하시는지를 아시기 바랍니다.

 

11~13절의 말씀입니다.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린도교회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큰 문제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대단한 문제가 있었을까요?

황당하게도 세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세례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가는 중요한 예식입니다. 마음이 주님께 향하는 것을 몸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죄가 드러나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용서를 받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교회성도로서 세례는 참으로 중요한 예전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상하게 당파싸움으로 발전합니다.

자신에게 세례준 사람이 바울이냐, 아볼로냐 등등에 따라 성도들이 나뉘어졌던 것입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의 목사가 아니고, 어떤 사람이 세례를 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또 어떤 교회를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높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서 의도적으로 세례를 많이 주지 않았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자꾸 성도들이 파를 나누어 갈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세례 주는 것이 잘못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세례를 통해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맹세를 해야합니다. 저도 세례받는 성도들이 생길 때마다 정말 떨리고 기쁩니다. 세례를 통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마음먹는 성도들을 볼 때마다, ‘~ 내가 목사하길 정말 잘 했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세례에 대해 잠시 고린도교회에서는 절제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가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하는 그의 복음사역에 지장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세례를 많이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5~17절입니다.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뒤에 서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입니까? 세례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복음을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되고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 돌려야 합니다. 사단은 아주 교묘하고 악해서 우리의 순수한 의도를 마구 흩트려 놓습니다. 그러면 사단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작은 어항 속에 금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를 미워하면서 툭하면 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대판 싸웠습니다. 결국 그중에서 많이 다친 금붕어는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살아남은 한 마리는 이제 혼자서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그 금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물고기가 악취를 내면서 몸이 썩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 스스로가 서로서로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착각을 하는데, 혼자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이기고 홀로 다 차지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엄청나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착각을 누가 넣어줍니까? 바로 사단입니다.

사단은 사람이 욕심을 가지게 되면 그 욕심을 이용해서 그럴 듯하게 자기를 합리화해서 작은 어항 속의 금붕어들처럼 서로 싸웁니다. 금붕어들이 작은 어항 속에서 사는 주제에 서로 도와 살아남기는커녕 작은 어항이 비좁다며 하나라도 죽어야 자기가 편하게 넓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믿음의 형태도 옳은 것은 없습니다. 누구는 십일조를 해야만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빚을 엄청나게 졌는데 수입의 1/10을 헌금으로 내는 것이 대단한 믿음이고 축복받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내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나아가는 것이 진짜 믿음일까요?

믿음의 진짜 목적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인생의 구주로, 생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근본적인 목적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복음전파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3일 만에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 도와줘도 이 복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구호단체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아픈 사람들 치료해줘도 이 복음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료병원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문제 해결해줘도 이 복음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법률센터, NGO 센터에 불과 합니다.

복음 없이 아무리 선한 일, 좋은 일을 한다하여도, 이 일들은 사단이 장난을 쳐서 도리어 우리를 타락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보내신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았습니다. 보냄 받은 사도로서 자신의 사명도 분명히 확실히 알았습니다. 사역자는 자신을 보내신 분이 누구이며, 왜 보내셨는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내신 이의 명령을 따르고 제대로 이룰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목적과 목적이 아닌 것을 분명히 구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의 모든 선교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 일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은 항상 복음을 전할 때 세상의 지혜와 언변으로 설득하려 하지 않고 성령에 의지하면서 사역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는 순수한 복음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유명한 성자가 있었답니다. 그에게는 형제가 있었는데 그 형제도 하나님 앞에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자를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들이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 여자, 명예 등으로 유혹했지만 절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귀 대장이 성자에게 가서 딱 한마디 했더니 성자의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네 동생이 교회 주교가 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왜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다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위선의 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있는 것 가지고 경쟁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발돋움해야 하고 결국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존경받고 칭찬받고 대접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다. 지성인들이 범하기 쉬운 것이 자랑하는 죄입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많이 칭찬받고 존경받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독한 시기와 다툼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누가 더 일을 잘하고 선한 일을 하는지 경쟁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고,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고 사랑으로 이해로 성도들을 품어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분쟁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아가시는 열방교회 성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너무나 어리석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도 세상의 방식으로만 살았습니다. 주님의 집에서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의 욕심으로 살아왔던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의 뜻을 받들어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