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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강해 3) 십자가의 도 (수요예배 20180131)

by 온누리선교 2018. 1. 3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 18~21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설교: 십자가의 도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일하던 중 피곤하여 밤나무 밑에서 잠을 자려고 누워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구? 참 어처구니가 없단 말이야. 왜 아름드리 밤나무에는 조그마한 밤이 열리게 하고 새끼손가락보다 가는 호박 덩굴에는 큰 호박이 열리게 하셨을까?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호박 덩굴에는 밤만한 호박이 달리게 하고 밤나무에는 호박만한 밤이 열리게 할 텐데. 그것 하나 따가지고 삶아서 모두들 나누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투덜대다 그는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코를 고는데 갑자기 !’ 하더니 알밤 하나가 이마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난 그는 이마에 떨어진 알밤을 보고는 얼른 무릎을 꿇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밤이 호박만 했더라면 제 머리가 박살났을 텐데, 밤을 작게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매번 교회에 와서 십자가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 듣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제대로 느끼고 있습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진지하게 감사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런 감사를, 그런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어떤 지혜보다 놀랍고 더 뛰어납니다. 소크라테스가 와도, 플라톤이 와도, 그 어떤 사상가가 와도 이렇게 계획하고 생각하고 의미를 맞추어 댈 수 없습니다. 다 하나님 앞에서는 미련합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십자가의 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8~19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안경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조사한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은 27,9% 가 안경을 착용하고, 중학생은 49.1%, 고등학생은 58.9%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력이 나빠져서 여고생의 경우에는 61.6%가 안경을 착용한다고 합니다. 성인의 경우에는 44.7% 가 착용한다고 하니 - 이제 거의 인구의 절반정도가 안경을 착용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수이상이 안경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영적인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있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인생을 것인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어 놓고도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시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시력을 잃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대대적인 영적인 개안수술을 했습니다. 그 수술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함으로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가렸던 죄와 죽음, 슬픔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므로 인류는 영적으로 어두웠던 눈을 새롭게 뜨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믿음으로 인해 영적으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십자가의 사역을 믿는 사람도 있고, 그 십자가의 사역을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십자가의 도십자가의 말씀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말씀은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은 세상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는 멸망하는 자들이고 또 한 종류는 구원받는 자들입니다. 구원받는 자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을 들을 때 미련하게 여기지 않고 말씀을 믿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말씀을 통한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지혜 있는 자들이나 총명한 자들이 그들 자신의 지혜와 총명으로 십자가의 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말씀을 받아들일 눈과 귀가 열리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떠신 분인지를 분명히 알게 다음과 같이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20절입니다.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세상의 지혜 있는 자나 학자, 수사학적 능력을 자랑하는 변론가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높고 깊어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으니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첫 번째로,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달리셨다는 십자가는 기분 나쁜 것이었습니다.

왜 기분 나쁜 것이 되었을까요? 성경대로 말하면 거리끼는 것이 되었을까요? 원래 유대 사람들은 표적, 초자연적인 이적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시면 알겠지만 출애굽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까지 그들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이적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10가지 이적으로 통해서 해방시켜주었습니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도록 해 주셨습니다. 광야생활을 할 때는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의 표적을 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야, 구원자도 이런 표적을 행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한 청년이 나타나더니만,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해서 혹시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큰 표적은커녕 중한 죄인만이 달려서 죽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럭 표적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보지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사람들의 대표로 본문에서는 헬라인을 들었습니다. 헬라하면 그리스들 말하지요? 그리스 하면 무엇이 생각이 납니까? ‘파르테논 신전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는 철학자들이 철학을 논하고 토론했던 아레오바고 언덕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아주 뛰어났던 똑똑한 철학자들이 모여 토론 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이성적인 지식으로 어떤 경지에 들어가기를 바랐고, 어떤 사건도 이성적으로 풀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는 그들의 철학적인 지식으로 보면 아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문에서처럼 그들은 미련한 것으로 여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떠한 똑똑한 사람도, 지식이 많은 사람도, 지혜가 뛰어난 사람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1절입니다.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의 미련한 것입니다. ‘전도로 번역된 케리그마설교또는 선포를 뜻합니다. 자세히 말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으로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선포하는 것은 한없이 미련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면 자랑하거나 교만할 수 있겠지만, 십자가의 복음은 인간의 자랑과 교만을 없애버립니다.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자신의 지혜와 교만을 내려놓고, 구속의 은혜 앞에 겸손히 서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의 지혜로 알 수 없는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믿어 구원을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믿음으로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진 그 뜻을 아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들었을 때 믿음으로 바라본 자들이 산 것처럼 말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세상의 지혜가 아닌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순수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을 붙잡는 자들에게 구원을 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흥은 있을 수가 없고 십자가 없는 찬양과 기도, 봉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을 하나님이 비춰주시고, 십자가 있는 곳을 기뻐하십니다. 십자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십자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천군천사가 따라오는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 있는 모든 곳에 자유와 평화가 있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대로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십자가 짊어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승리하고 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

십자가를 붙잡고 주님의 지혜를 날마다 구하며 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살면서 힘들어하며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능력으로 일어나 걸으며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살길 원하오니,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