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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눅 5:8~11 주일예배 20190203)

by 온누리선교 2019. 2. 1.

성경봉독 : 누가복음 5:8~11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설교: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합니다. “전능하다라는 뜻은 모두 전, 능력 능을 써서 모든 일에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더 가까이 교회에도 오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보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십니까? 바로 모든 일을 다 해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크게는 우주로부터 작게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고 할 때에 하나님은 악도 주관하시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도 주관하시지만 악도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때때로 선한 것만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악한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왜 이 세상에 악이 생겼는지 우리가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러나 악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능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하신 섭리를 따라 완벽하게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가 계획하신 일에 실패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이끌고 가시려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광야는 더위와 추위가 교차하며, 물이 없고, 양식이 없는 곳입니다. 장정만 60만 총인구 2백만과 가축들이 불모지인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가능케 하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지키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게 했을까요? 그냥 옛날 사람들이 지어내서 성경에 넣은 걸까요?

1967년 이스라엘의 3차 전쟁 때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문제의 희나이 반도에 진주하여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초저녁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야말로 우박처럼 새까맣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 전문가들이 연구를 했는데 그 지방에는 메추라기들이 철새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그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힘이 떨어지면 그냥 한 곳에 머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룻밤을 지내서 힘을 얻어 다음에 떼를 지어 날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쓰여 있는 말씀대로,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가 하실려고 하시는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왜 보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기에 완전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8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어부인 시몬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설교하시기 위해 배를 빌려달라고 했을 때 아하~ 이 선생에게 뭔가가 있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자 밤새 고생해도 한 마리도 못잡았는데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계획과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물고기가 잠들어 있을 때, 밤에 잡아야 쉽게 많이 잡는 것이 상식입니다. 얕은 곳에 프랑크톤이나 벌레가 많아 얕은 곳에서 많이 잡힙니다. 이것이 지금도 상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날이 휘엉청 밝고 먹이도 별로 없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평생 이렇게 잡아본 적 없이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떠나시라고 했던 것입니다. 흠 많고 죄많은 인간인 베드로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감히 설 수도 말할 수도 없었기에 무릎을 꿇고 떠나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유튜브 방송 뇌피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초능력자가 있다 vs 없다]에 대한 재미있는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왜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냐고 하니 남들이 할 수 없는 일,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이 얼마나 좋겠냐고 합니다. 한낱 공중에 뜨고, 한낱 숟가락을 구부리는 그런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베드로의 입장에서 엄청난 물고기가 잡히니 맨 처음에는 좋다가 예수님 앞에 오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결국 베드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기뻤지만 또한 참으로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무서웠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0~11절 말씀입니다.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이 베드로를 불러 제자로 선택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의 "취하리라“(조그레오).... "붙잡다, 체포하다, 사로잡다"를 뜻합니다. "살아 있는"+"사냥해 잡다"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산채로 잡다"는 말입니다. 즉 죽은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곧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입은 제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 바다의 죄인들의 영혼을 산채로 사로잡아 구원해 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는 모습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이들 모두 바다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어부입니다. 더욱이 배를 버리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주님을 좇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는 결단, 장례를 치르고가 아니라, 부모님께 인사하고가 아니라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런 결단이 바로 신앙의 결단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스스로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보기에는 각자가 내리는 결단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5:10a)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입니다. 우리 경험으로 밤새 수고하며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하나도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5:5)하면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결과는 이렇게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베드로 뿐 아니라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바보가 아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을 아주 바보같거나 오버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을 좀 열심히 하거나 신앙생활을 깊이 하고자 할 때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단지 지금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유명한 무디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이런 예화를 드신 적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큰 승합차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승합차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세 부류의 승객석이 있었습니다. 1등급석과 제2등급석과 그리고 3등급석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차가 출발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같은 승합차 안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승객들이라는 점에서 각기 다른 등급석 승객들에게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높은 언덕길을 오르고 있을 때 그는 비로써 그 안에 등급석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운전수는 차를 세우더니 승객들에게 말했습니다.

"1등급석 손님들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계십시오. 그리고 2등급 손님들은 내려서 내 차를 걸어서 따라 오십시오. 그리고 3등급 손님들은 모두 내려서 뒤에서 차를 미시오."

 무디 목사님은 계속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1등급석과 2등급석과 3등급석으로 나눠있지 않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 안에는 온 성도가 다 3등급석 여행자들입니다. 온 성도는 3등급석의 승객들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에 다 일어나서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모두 함께 밀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누가 만났습니까? 바로 베드로가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던 안드레, 야고보, 요한에게도 보여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들을 부르셨습니다. 자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곁에 더 가까이 부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모으시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도 영광을 받고자 하십니다.

2019년에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살지 않고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으로 외치며 축복 안에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처럼 해야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돈이며 건강이며 이런 저런 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오직 그 분만 따라나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전능하시기에 못하실 일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린 베드로와 그 친구들처럼, 우리도 말씀에 항상 순종하여 주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 축복을 우리에게 주셔서 2019년도 주 안에서 항상 거하기를 원하오며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