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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어버이주일)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창 22:7~12 주일예배 20190512)

by 온누리선교 2019. 5. 11.

설교본문: 창세기 22: 7~12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설교: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어떤 동물학자가 원숭이의 심리 상태를 실험하기 위해 원숭이 가족을 철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불을 지폈습니다. 철판이 서서히 달아올랐습니다. 바닥이 뜨거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엄마 원숭이는 뜨거운 철판 위에 들어 눕고는 자기 배 위에 새끼 원숭이들을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참으로 엄마 원숭이처럼 감동적이고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0: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하였습니다.

또한 이런 사랑을 잘 아시는 주 하나님이시기에 아버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넓고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아주 잘 알려주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특별한 날에 더 한번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신 오늘의 귀한 말씀 들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7~9절입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 산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우르(Ur)는 이 갈대아 지역에 있는 도시로 당시 크게 번성했습니다. 이 도시는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는데 헬라어로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서 농사도 잘되고 문화적으로도 아주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함이 없이 살던 아브라함은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라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그 우르라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부분 우르에 사는 사람들은 이 신, 저 신, 믿는게 너무 당연했는데, 아브라함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믿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신앙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는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참으로 예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1~2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이 한 명 없던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만한 자식들을 많이 아주 많이 주시겠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크게 하여 그 이름이 축복이 되게하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하고 가슴에 박히는 말입니까? 아브라함에게는 가장 필요하고 가장 좋은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향인 갈대아 우르도 떠나고,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이 가장 잘 아는 곳이라 어디를 가든지 불안하지 않습니다. 친척과 아버지 가족은 자신이 어렵거나 힘들 때 부탁하고 든든한 배경이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보고 의지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으로 말입니다.

 

우리 같으면 하나님의 이러한 확실한 말씀을 듣고도 참으로 결정이 어려웠겠지만 정말로 아브라함은 아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시다시피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심지어 조카 롯까지도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지 않고 그저 사라의 여종에게서 난 이스마엘 뿐이었습니다. 이 이스마엘을 얻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시고 사라의 몸에서 자식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강한 아브라함에게도 이리저리 고난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실망하거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은 자식을 사라를 통해 갖게 하셨습니다. 100세라는 나이에 말입니다. 인간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이에 아들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의 아이를 갖게 하셨고 가장 소중하게 키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고 이삭을 사랑으로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하십니다.

어떤 순간에도 지키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셨던 하나님이 참으로 아브라함에게 엄청나게 잔인한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은 몇일이 걸렸습니다. 아마 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는 몇 번이나 이삭을 데리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이 나무도 있고 제단도 있는데 바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어봤을 때는 너무나도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 때 곧 자신의 손으로 바쳐질 아들 이삭을 바라보며 말했던 아브라함의 말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여기서 번제할 어린양은 우리도 알다시피 이삭을 뜻합니다.

이 어린양을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들 이삭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이삭을 소중히 여기시니 지켜주실 것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결코 이삭이 망가지거나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그저 이 땅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그 영혼을 지켜주신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실제로 이삭이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7-19)

 

그래서 감히 아브라함은 이삭을 놓고 하나님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주고는 왜 다시 빼앗아가냐고 화내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참으로 넓고 크게 사랑하였습니다.

그 사랑을 이삭도 아는 듯, 순순히 제단 위에 누웠습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100세가 넘은 늙은 아버지에게서 멀리 도망쳐도 될 만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깊이 믿는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칼을 든 손을 높이 들고 아들의 몸에 꽂으려는 찰나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진짜로 이삭을 죽이려 하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급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자 여호와의 사자가 이삭에게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거듭 명령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의지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셨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타이밍입니까?

아브라함의 아들의 이름을 웃음을 뜻하는 이삭으로 주셨는데, 전혀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실제로 아들을 죽이려는 것을 보고 여호와의 사자가 그의 행동을 제지했습니다. 다행히 이삭은 죽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하신 수양을 번제로 드리게 됩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 아브라함과 이삭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어 자신이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늙어 죽어 이 땅에 없어져 이삭이 홀로 남게 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삭을 통해 이루실 것이라는 걸 확신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가지고 한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아비로서, 어미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태어나기 전에 한번도 그 누구도 부모였던 적은 없습니다. 그저 어떻하다보니 아빠가 되어 있었고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훌륭한 엄마 대단한 아빠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아들 이삭을 키웠습니까? 철저히 하나님 안에서 키웠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고 하나님의 것이기에 더욱 소중히 키웠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어느 부모가 그렇게 키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소중하게 잘 키우는 방법은 하나님의 손에서 키우게 하는 것입니다.

아들 이삭을 보십시오. 어떻게 아버지 아브라함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까?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버지가 우스워보이고 힘없는 돈많은 늙은이로 여겼다면 결코 그 제단 위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왕기상하에 보면 솔로몬왕, 히스기야왕, 요시야왕 등 아주 하나님을 잘 섬겨 축복받은 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왕이된 자녀들은 전부 하나님을 멀리했고,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지어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부모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또 우리가 이삭과 같은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백성으로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사랑이라 해서 다 사랑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자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 받는 믿음의 자녀로 사는 것도 우리의 기도제목이고 해야할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이 길을 가게 하옵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같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