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후서 강해 2)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이유 (수요예배 20190508)

by 온누리선교 2019. 5. 6.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1:8~11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설교: 우리에게 고난이 오는 이유

 

유월절이라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큰 축제입니다. 이 날은 일찍이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있다가 해방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경축일입니다. 이 날에는 몇 종류의 상징적인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고엽, 즉 쓴 나물을 씹음으로써 과거 이집트에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을 되새기려 하는 것입니다. 또 이집트에 잡혀가 노예 생활을 할 때 먹었던 무교병이라는 거친 빵을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식탁에는 딱딱하게 삶은 달걀도 나오는데, 이 달걀은 매우 상징적인 것입니다. 일반 음식물은 삶으면 삶을수록 부드러워지지만, 이 달걀은 삶으면 삶을수록 단단해집니다. 유대 민족은 난관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리고 패하면 패할수록 그 신념과 결의가 단단해집니다. 삶은 달걀은 그런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납니다. 견디고 어렵고 참기 힘든 일들이 별안간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을 믿는 자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식탁에 삶은 달걀을 놓고, 거친 빵 무교병을 놓고 쓴 나물을 씹으며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생각했던 것처럼, 고난에 대해 당당하고 주눅이 들면 안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자신이 겪었던 엄청났던 고난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사형선고도 받았고, 바다에서 죽을 뻔도 했습니다. 얼마나 사는게 고난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고난이 의미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 믿는 방법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이 시간 들으시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참여하시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8~9절입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왜 고난을 당하게 하시는가? 바로 하나님만 의뢰하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 환란이 힘들어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이 의미가 없고, 차라리 죽고 싶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려고 고난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 믿는 방법, 하나님께 진실되게 간절히 나아가는 경험을 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아이 중에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도 가고 학습지도 하고 심지어 핸드폰 게임도 하는데, 이 아이는 집에서 인형놀이를 하고 공부에는 병적으로 싫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 엄마는 온갖 좋은 것으로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키고 해도 고집을 피우면서 아기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엔 이 엄마가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이가 또래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하게 되고 아이들이 서서히 놀아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이가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더 크고 싶지 않고 책임지거나 스트레스 받고 살기 싫어서 최대한 어린 짓을 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더이상 안되겠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상처를 받으니, 고생을 하니, 뭔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 아이가 달라졌습니다. 숙제도 스스로 하고 어린 짓하던 모든 일을 다 그만두었습니다.

 

더 깊게 더 넓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려면 온전히 하나님께 의뢰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방법을 위해 주시는 고난이라면 감사하며 견디고 이기기를 우리는 기꺼이 해야 합니다.

 

이어서 10~1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바로 기도의 동역자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십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 사람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고난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기도의 동역자를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최초의 순교자가 나옵니다. 야고보입니다. 목베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엄청난 핍박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 순서가 누구냐면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잡혀서 옥게 갇혔습니다. 날이 밝으면 죽는 겁니다.

그때 교회의 성도들이 마가 요한의 집에 모여 함께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 기도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이끌어 만들어 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베드로를 옥에서 구해내신 겁니다.

만약에 베드로에게 이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처하게 되는 고난이 없었다면 이런 기도의 동역자들이 세워질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죠?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도의 동역자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중보기도의 능력은 엄청났습니다.

19세기 미국을 뒤흔든 찰스 피니목사는 1830년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그 도시 전 인구의 10%1천 명을 단 몇 달 만에 구원하였는데, 이 역사는 찰스 피니의 중보자 아벨 클레리의 중보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피니 목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클레리씨는 나의 모든 집회를 위해 기도했다. 내가 집회 장소를 떠난 후에도 남아서 기도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그는 전 삶을 다 바쳐 나를 위해 기도했다.”

우리가 잘 아는 무디 목사도 마리안 아드라르드라는 중보자가 있었습니다. 장애로 인해 침대에 누워 살아야했던 마리안은 시카고에서 무디 목사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에 있는 그녀의 교회로 무디 목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무디 목사는 1872년 영국 런던에 와서 단 10일 동안 4백 명을 회심시켰습니다. 그 기간 동안 런던에 사는 마리안이 뒤에서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캐나다 선교사 조나단 고퍼스는 1909년에 중국 만주에서 집회를 할 때 성령의 특별한 능력이 그녀에게 임했다는 기록을 한 처녀의 기도 노트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중보기도의 결과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최전방에서 싸우는 하나님의 종에게는 반드시 이 이상 중보기도로 헌신하는 후방의 기도 동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사역자와 중보자는 하나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알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중보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지금까지 자신의 고난에 대해 솔직하게 성도들에게 나눈 이유는 이와 같은 기도를 요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중보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한 몸 곧 고난과 위로의 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몸속에 피가 흐르듯이 서로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교통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중보기도의 위력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와 같은 기도를 부탁함으로 그들이 놀라운 응답으로 인해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무엇을 잘못했길래, 뭐가 마음에 안들기에 그러십니까?

하나님을 아주 삐치고 속 좁은 분으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절절한 고백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많은 사람들의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시고 어느 때든 힘들때도 어려울 때도 결코 고난과 환란에 주눅들지말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나가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넓고도 깊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그 뜻을 받들어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