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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행 1: 3-4, 주일예배 20230521)

by 온누리선교 2023. 5. 21.

성경말씀: 사도행전  1:3-4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설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영국에서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건망증이 심한 아버지가 있었는데 옛날에는 마차를 타고 다니던 때였는데 멀리 출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멀리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는 것은 어린 소년에게는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멀리 와서 만날 사람을 만나고 볼 일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던 길에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한 사람을 더 만나고 올 테니 너는 여기 내려서 어디 가지말고 아버지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만날 사람을 만나고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오는 것을 잊어버리고 혼자만 집에 온 것입니다. 그가 어디 나갔다고 집에 돌아오면 아들이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였는데 아들이 나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부인이 나와서 어째서 아들은 데리고 오지 않고 혼자 왔느냐고 야단합니다. 그때 생각하니 아들을 길에 내려놓고 자기만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룻밤을 꼬박 달려가서 아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가면서 후회도 하였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길에 서 있는 것을 본 동리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집에 들어와 기다리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이 자리에 있으라고 했다면서 온 밤을 꼬박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동리 사람들을 더욱 안타까워서 잠시만이라도 들어와 쉬라고 해도 그는 아버지가 여기 기다리라고 했으니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야 아버지가 정신없이 달려와 보니 있으라는 자리에 아들이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이 아들이 미련한 아들입니까? 순종이 지나쳤다고 할 것입니까? 순종이라는 것은 나에게 무리가 되어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따라도 그대로 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이렇게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줄 터이니 기다리라고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시고 믿음에 대한 회의가 든다면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3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바로 승천하셨다면, 사도들은 예수님의 증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여인들의 말을 허탄한 듯 듣고 믿지 않았고, 빈 무덤을 확인하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엠마오로 간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경을 풀어 증명해주신 예수님을 증언했어도, 그들 중에 주님이 나타나셨을 때, 놀라고 무서워 귀신 보는 것처럼 여기고 마음에 의심했습니다(24).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나타나 살아나셨다는 것을 확증하고 그들이 전파할 메시지를 분명히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 계속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던 건 아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 오랜 기간 여러 차례 친히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사십 일 동안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 제자들에게 맡겨진 것이고, 그 사명을 맡기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자신이 참 메시아이고 그들이 전파할 하나님 나라 복음이 얼마나 확실하고 진실한 것인지 친히 증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폭발적인 전도의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확실한 증거를 많이 보여주심으로 예수께서 살아계심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일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험판매와 전도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예전에 청년선교구에서 사역하면서 각 대학교 캠퍼스를 다니며 교구 청년들을 심방하면서 그 캠퍼스에 있는 학생들을 전도하던 적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청년과 함께 온 학생하나가 제 수첩을 보더니 꼭 보험 설계사 수첩같다는 것입니다. 새로나온 성도들이나 아직 믿음이 적은 성도들과 만나면서 그들을 관리하고 전도대상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복음을 끈질기게 전하고자 많은 약속들이 그 수첩 안에 있었습니다. 보험설계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과 노력으로 관리하지만,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보험 상품을 판 대상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대상자들을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로 보고, 우리의 형제자매를 다시 찾는 사랑의 정성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겉으로 볼 때 전도하는 모든 과정은 보험판매과정과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보험 상품을 소개하고 살면서 암이나 교통사고,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품을 팔면서 고객이 그것으로 인하여 인생의 큰 도움을 받았다면 보람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우리가 전해야할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고대문서에 나오는 허구 인물이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영웅을 전파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이며,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은 죄로 죽은 자를 살리고, 죽을 몸도 다시 살리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가는 큰 복을 받는 길입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도 잃어버린 당신의 자녀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바치셨고, 우리도 제자로서 사도로서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어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요? 4절의 말씀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기다리는 자세는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앞장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거룩한 성을 떠나거나, 내 방법대로 앞서서 일하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보혜사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다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이 없거나 의지가 없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저 하나님 하시는 일대로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합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하나님 기뻐하시겠지!” 무엇인가를 자꾸 꾸미고, 만들고,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인간적인 노력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 일들이 열매 맺게도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궁리하고 또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무엇인가를 꾸며서 가다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공덕 사상입니다. “아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지, ! 이렇게 했는데 사람들이 나보고 훌륭하고 존경한다고 하네.. 기쁘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며 비난하며 너그럽지 못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다 보면, 교만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됩니다. 이런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라 늘 스스로 교만이 들어오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사탄이 늘 그 틈을 타고 와서 우리를 넘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영어를 배우다가 들은 이야기가 참으로 이 경우에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영어로 'GOD'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글자의 순서를 뒤집어 보라. 'DOG'가 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면, 다른 어떤 것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에게 하찮은 의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기다린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뜻과 같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기다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 예수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거룩한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주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94%가 기다림이 삶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인생 전체가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라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첫 번째였습니다. 성도는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기를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 니이까”(6)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생각하는 착각된 왕국을 버리지 못하고 초조해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알바 아니다오직 관심은 성령임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 시대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기다리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께서 주신 명령을 성실히 믿음으로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여 내 뜻, 내 의지, 세상의 유혹에 늘 넘어집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이기 위해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며,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열심히 살 수 있도록 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