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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야고보서강해 19)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수요기도회 20230517)

by 온누리선교 2023. 5. 17.

 

성경본문: 야고보서 3: 13-18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설교: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아테네의 한 극장에서 국경일을 기념하는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좀 늦게 극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초만원이라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 때 두리번거리고 서 있는 노인을 본 아테네인들은 "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여기저기서 수군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누구 한 사람 자기 자리를 양보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노인은 천천히 외국인석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스파르타인들이 벌떡 일어나 서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이때 노인이 말했습니다.

"아테네인도 선()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 선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면, 그 아이의 품성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성경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26)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주여, 믿습니다. 할렐루야!"하고 외쳐도, 정작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그것은 엉터리 믿음입니다. 구원받고 나서 삶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드들을 향해 이들은 스스로 믿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죄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며 사는 법을 행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거짓 믿음의 증거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 믿음의 확실한 증거는 자신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은 인간들 사이에 있는 모든 갈등, 분쟁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야고보는 그 모든 갈등의 근원은 어디에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고백하는 너희들 중에이런 일이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이런 싸움과 다툼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면서 원하셨던 것과는 정반대에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교회가 하나되는 것은 세상으로 하여금 주님이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게 하는 증거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어디서나 다툼과 분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자기중심적 성향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면서 기도하신 것은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평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과 다툼은 육에 속해있다는 증거입니다

싸움과 다툼은 싸우는 정욕에서 나옵니다. “싸우는 정욕이라는 것은 나의 만족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 나의 욕구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찾아와서 성공적으로 심어준 생각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추구하며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려던 사람을 자기중심적으로 바꿔놓은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빼내고 자기 자신을 넣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자기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다. 그 모든 갈등의 원인이 우리 안에 있는 나 중심적인 사고, 이기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정욕이 우리 속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정욕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정욕의 지배를 받는 것은 우리가 아직까지 세상에 속해있다,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2절에 무엇인가를 원하는 마음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죄가 됩니다. 내가 뭔가를 원하는 것은 기대가 되고 그것을 마땅히 취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대는 늘 충족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살해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가인이 아우를 죽일 때,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할 때가 그러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욕심을 가지고 살인하기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에 속해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스스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람은 스스로 얻을 수 있다, 또는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령 구하더라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합니다. 마음속의 동기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고 하나님께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된 인간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입니다. 싸움과 다툼이라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있는 나 중심적인 사고, 즉 하나님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된 마음의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삶과 성품이 이러한 싸움과 다툼,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특징지어진다면 그것은 그의 거짓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어떠신 분입니까? 4-5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5헛되다는 말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말씀이 아무런 효력이 없는 공연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효력이 없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은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고 참된 것 즉 효력이 있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님이 그렇게 우리를 원하시는 것처럼 또 다른 하나가 우리를 그렇게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517절의 육체의 소욕입니다. 분명히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질투하며 시기하기까지 우리가 신령한 복을 받기를 갈망하십니다. 그런데 그 방해 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입니다. 이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은 육체 즉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의 본성이 강하게 소원한다는 것입니다. 육체는 성령을 거스려서 강하게 소원을 합니다. 반면에 성령은 그 육체를 거스려서 강하게 소원합니다. 무엇을 두고 하냐면 우리 몸을 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한쪽은 성령을 따라 가지 못하도록 성령이 요구하는 것을 방해하고 거부하도록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반대로 우리가 육체가 원하는 대로 죄가 우리 몸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우리 안에서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놓인 현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코 성령님은 우리를 포기하시거나 놓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확신하고 신뢰할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무엇에 대하여서 그런가 하면 자신의 자녀를 향한 그분의 사랑에 관해서 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욕구가 강하고 죄악이 끊질 기게 우리를 물고 늘어져도 그분은 더욱 그러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육체가 더욱 우리를 잡아 죄악으로 이끌어 가면 갈수록 그분은 더욱 더 우리 안에서 우리의 육체의 소욕과 싸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근거로 우리는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십시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그분으로 인하여 더욱 확신가운데 그리고 믿음 가운데 사셔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이끌어 내실 것이며 우리를 끊임없이 거룩함과 온전함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라는 야고보의 권면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것은 사랑을 모르는 우리에게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아와 같이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사라미아 여인 같은 우리였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에게 사랑은 신실한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의 가르침과 교훈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하지 말라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훨씬 더 많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라, 힘써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매일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친밀함을 누려라, 사랑하는 자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아라. 이 모든 것들도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얻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께 연약하고 완전하지 못한 마음을 드린 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있는 모습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고백과 결정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곘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우리는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늘 육체의 소욕을 따르며 성령님에 반하는 삶을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온전히 살아가고 믿음을 가진 자로서 주님의 백성의 행위를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이여 이끌어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