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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베드로후서 강해 7)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거짓 선지자들 (수요기도회 20240424)

by 온누리선교 2024. 4. 24.

본문: 베드로후서 2:9-12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설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거짓 선지자들

미가 선지자는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보다 자신들에게 부와 번영과 풍요와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아첨하는 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더 좋아한다고는 것을 지적했습니다(2:11)
그러나 미가 선지자는 유다의 통치자들과 선지자들의 죄악을 담대하게 지적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그의 말인지, 다른 사람들은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점을 쳤습니다.
신명기 18:10-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점쟁이를 용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이 점을 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것처럼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한다면, 그들의 예언은 명명백백하게 거짓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돈을 받고 거짓 이상을 말하고, 그들은 점쟁이들처럼 점을 쳐서 거짓으로 평강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참 선지자들은 유다의 죄악이 가득 차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속히 임할 것이기 때문에,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서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선지자들이야말로, 거짓 선지자들이며, 그들의 말이야말로, 거짓말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외침으로,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고, 사회를 공포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성한 성품과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사탄이 교회에 ‘가라지’와 같은 존재를 뿌릴 것인데 그들의 정체는 ‘거짓 선생들’입니다(2:1).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을 잘 알아 경계하고 날마다 영적인 분별력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 먼저 9절에서 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 앞서 있을 대환난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수요일에 상고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3:10에 우리 주님께서 빌라델비아교회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의 경건한 자는 바로 이러한 시험에서 건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앞에서 경건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는 호색과 탐심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이 세력은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을 괴롭혀 왔으며, 지금 이 시대에는 더욱 그 세력이 확장되고 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오직 개인주의와 육체적인 쾌락과 돈에 대한 탐심이 현대인들의 삶의 영역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부패하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어 졌고, 노아시대와 소돔과 고모라 시대처럼 이제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세상이 아무리 부패했다 할지라도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친히 통치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렇게 타락하게 그냥 두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계획 가운데 일부분 악을 허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9절 중반 절에서 10절 상반 절에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들을 심판 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을 속히 벌하지 않으시고 이처럼 참으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악이 온통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성도와 교회를 무너뜨리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악을 성도를 연단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시기도 하시지만, 동시에 악이 어느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그 한계를 두고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왜 악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까? 왜, 싫다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합니까? 왜, 정직하지 못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려고 하고, 세상에서 겸손하게 살려고 발부둥치는 것입니까?
왜,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그들의 행패에 인내하며 그들의 불의에 관용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재림의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모든 악인들이 형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찌하든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음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만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요, 추진력입니다. 우리가 고통당하고 힘들어도 이 믿음만 있으면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믿음을 소유하고, 날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인내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을 ‘이성 없는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2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거짓 선생들은 마치 도축하기 위해 길러지는 가축들처럼 오직 본능적인 탐욕과 노는 것을 낙으로 삼고, 성도들과 친교하는 자리에서조차도 방탕한 짓을 즐기며, 교회에 비도덕과 불명예라는 오점과 흠을 남기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함부로 비방하고 고소를 남발하고 그러다 결국 자신의 탐욕과 불의로 인해 멸망당하게 될 저주의 자식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순(矛盾)이라는 말을 아시죠?
사실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을 때 ‘모순이 있다’라고 합니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에 한 무기 상인이 있었는데 그는 장터에서 무기를 팔면서 창을 보여주며 “이 창은 매우 날카로워서 세상에 있는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하며 창을 팔았습니다. 그럴듯한 그의 말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창을 고르던 사람이 ‘방패도 좀 보여주시오’하니까, 이번에는 방패를 들고는 “여기 있는 방패는 매우 단단해서 세상의 어떤 창의 공격도 능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창과 방패를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아버지와 함께 시장 구경을 나왔던 어린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기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저 창으로 이 방패를 찌르면 어떤 것이 이겨요?”
아이의 질문에 무기 상인은 말문이 막혔고, 주섬주섬 창과 방패를 챙겨 후다닥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창을 의미하는 ‘모(矛)’자와 방패를 의미하는 ‘순(盾)’자가 합해서 사실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을 나타낼 때 ‘모순’ 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술수도 이와 똑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고 ‘모순’ 된 얕은 술수로 미혹하여 사람들을 자기의 노예로 만들고 자기의 이익을 챙깁니다. 때로는 그들의 말이 좋은 것 같고,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일을 확신을 가지고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조금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적용해 생각해 보면,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우리는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현란한 미혹에 속아 넘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 시대에도 많은 목사님들이 있고, 많은 신학자들이 있고, 또 많은 선교사들이 있고, 또 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하여야 할 것은 이 많은 말들 중에 무조건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그 중에는 분명히 ‘거짓 선생들의 모순된 거짓말’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진리에서 벗어난 그 거짓말들은 성도들을 미혹하여 헛된 일들에 소중한 삶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과 함께 멸망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를 통해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혹 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다고 생각되시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거짓과 진리를 잘 분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성도로 든든히 서 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거짓 선생들이 호색과 탐심과 무분별한 거짓 송사와 갖가지 모순된 거짓술수를 무기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속히 심판하지 않으시는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임을 믿습니다. 
주여! 저희들 모두 이러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 깊이 품어 이성 없는 짐승 같은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서 사람들을 건져 살리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