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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설교) 감사하는 생활_전병금목사 (살전 5:16-18, 주일예배 20251116)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by 온누리선교교회 2025. 11. 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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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6-18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설교: 감사하는 생활

 

희랍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전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저에게 금광을 발견하게 해 주신다면, 그 금으로 만든 금양(金羊)을 바치겠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정말로 금광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금을 많이 캐고 부자가 되자, 신에게 약속한 금양을 바치기가 아까웠습니다.
금양 대신 은양으로 바치면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것마저도 아까워 아무것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감사를 모르는 인간의 마음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 우리가 방금 읽은 짧은 이야기처럼, 인간의 마음은 종종 이기심과 망각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의 금양(金羊)'을 아까워합니다.

우리는 간절히 무언가를 구할 때 '이루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하지만, 막상 그 응답을 받고 나면 그것이 마치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처럼 착각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와 헌신을 미루거나 취소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 이야기는 감사를 모르는 인간의 나약하고 교만한 마음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우리 기독교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져 온 감사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낯선 땅이었고, 독특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겨울, 절반이 넘는 이들이 얼어 죽거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존자는 고작 50여 명, 그들마저 쇠약해져 하루하루를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를 붙들고 봄을 맞이했습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감사를 잊은 인간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그것은 고난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참된 믿음의 열매입니다.

1620,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실었던 청교도들은 낯선 신대륙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첫 겨울에 절반이 넘는 동료를 잃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처절한 고통, 배고픔, 질병, 그리고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감사할 만한 조건'은 그들에게 전혀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감사를 선포했습니다! 그들이 봄을 맞이하여 씨를 뿌리고 첫 수확을 거두었을 때, 그들이 드린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친구를 잃었지만, 그보다 귀한 믿음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드릴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의 감사'이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추수감사절의 참된 정신입니다.

 

청교도들의 감사는 '풍성한 수확'이라는 결과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은 존재 자체'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감사가 혹시 '남보다 더 많이 가졌을 때', '좋은 일이 생겼을 때'와 같은 조건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감사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시작됩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고백할 때, 우리의 감사는 그 깊이를 더하게 될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신대륙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권리', 즉 믿음의 자유였습니다.

그들은 이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환경이나 소유가 아니라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믿음의 자유'임을 선언했습니다. 이 믿음의 자유야말로 그들이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궁극적인 힘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청교도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신앙의 자유, 풍족한 환경, 평화로운 일상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어떤 물질적 축복보다 크고 소중한 감사의 제목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은 '좋은 일에만 감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청교도들처럼,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많은 친구를 잃었지만, 믿음의 자유를 얻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성을 요구합니다.

이 감사는 우리의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의 배후에서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임을 믿는 확신이 바로 참된 감사의 뿌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감사할 줄 몰라 '금양'을 아낀 어리석은 인간의 이야기와, 목숨을 바쳐 '믿음의 자유'를 지키고 고난 중에도 감사한 청교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까?

조건적인 감사가 아닌, 본질적인 감사를 드립시다. 재정적인 풍요, 건강, 성공과 같은 눈에 보이는 '수확'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 자리에서 예배할 수 있는 믿음의 자유에 감사합시다.

입술의 고백에서 삶의 헌신으로 이어지는 감사를 드립시다. 감사는 단순히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이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소유를 기꺼이 나누고 헌신하는 삶의 예배를 통해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아끼지 않는 '금양'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많은 은혜를 헤아려보십시오. 우리의 생명, 건강, 가족, 교회 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십자가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합시다. 이 감사가 오늘 이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저희를 사랑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때로는 눈앞의 작은 욕심 때문에 감사를 잊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며, 어리석게 '금양'을 아꼈던 지난날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저희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고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의 자유를 얻었음에 감사하며 첫 열매를 드렸던 청교도들의 영성을 저희에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감사가 환경에 따라 요동치는 조건적인 감사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감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삶의 모든 순간, 풍요할 때나 부족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입술의 고백뿐만 아니라, 저희의 시간과 헌신과 삶 전체를 기꺼이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가 이 예배의 자리를 떠나 세상 속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저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증거하며,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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