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7: 15-17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설교: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 누리는 영원한 복
미국 서부개척시대 때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턴가 캘리포니아의 강바닥에서 금이 채취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자 동부에 살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서부로 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그곳에 가서 많은 사금을 채취해와 큰 부자가 된 사람들도 많았으므로 서부로 향하는 개척 인들의 마차의 행렬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어느새 서부는 젊은 개척자들의 꿈과 희망이 되었습니다. 서부로만 가면 큰 부자가 될 것을 기대하고 온 가족이 함께 이사하는 경우도 많았고, 개중에는 너무 욕심이 많은 사람들도 끼어있어 남보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많은 금을 깨겠다고 동부에서 서부까지 쉬지 않고 가는 행렬들도 많았습니다.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을 위해 천천히 가자는 쪽과 늦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사금을 다 빼앗기니 서두르자는 쪽과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팀을 이탈해 버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 '존 웰'이라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싸움에 끼어 들지 않고 어린 자식들과 부인과 노모 님을 모시고 마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일엔 꼭 마차를 멈추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하루 온종일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이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습니다. 왜 어리석게 보았습니까? 앞서간 사람들이 사금을 모두 캐어 가 버리면 이 사람들은 말짱 헛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몇 주 늦게 온 가족의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먼저 와 있어야 할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벌써 금을 캐 가지고 돌아간 것일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존 웰'이 많은 금을 채취하고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는데 자기들보다 앞장섰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해골 같은 몰골이었으며 곧 쓰려져 버릴 것 같은 병자들 같았습니다.
그들은 황금에 눈이 멀어서 휴식을 잊은 채 너무 무리하게 왔으므로 얼마가지 못해 과로로 인한 병으로 말과 가족을 다 잃어버리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생의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6일 뒤에 안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식은 한마디로 자유요, 행복이요, 은혜를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이와 같이 우리에게 축복의 말씀입니다.
흰 옷 입은 큰 무리는 이 땅의 모든 고난과 결핍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 속에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돌보심을 받으며 영원한 예배와 위로를 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축복을 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앞선 9-14절에서 우리는 흰 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든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큰 환난을 통과하여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15절부터는 그들이 하늘에서 누릴 구체적인 축복의 내용이 펼쳐집니다. 1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이들은 이제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봉사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헬라어 *라트류오(λατρεύω)*는 성전 중심의 제의적 봉사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드렸던 불완전하고 때로는 세상의 일로 중단되던 예배와 봉사가 아니라, 이제 영원토록 하나님만을 향한 완전한 헌신과 찬양의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에게는 시간의 제약도, 육체의 피로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들의 영원한 기쁨이 됩니다.
15절 하반절은 이 영광의 절정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여기서 '장막을 치신다'는 표현은 구약의 성막(장막) 사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성막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처하시며 임재하셨던 장소입니다. 헬라어 *스케노오(σκηνόω)*는 '천막을 치다, 거주하다'라는 뜻으로,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둘러싸고 친히 보호하시며 함께 거주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축복은 구약 시대나 이 땅에서 잠시 임재하셨던 수준을 넘어,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완전하고 영원하며 친밀한 동거가 이루어진다는 선언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절대적인 안정과 사랑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16절은 이 땅의 고통이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흰 옷 입은 무리가 '큰 환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핍박과 전쟁, 기근으로 인해 실제로 주리고 목마르고 뜨거운 광야의 고통을 겪었던 자들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들의 현실적인 고통의 완전한 역전을 보여줍니다.
주림과 목마름의 해방: 생존을 위한 고통, 결핍, 세상의 염려가 사라집니다. 해와 뜨거운 기운으로부터의 보호: 세상의 폭력과 고난, 하나님의 심판의 뜨거움으로부터 영원히 안전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결핍과 고통의 요소들이 성도의 삶에서 '다시는(οὐκέτι, 오우케티)'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한때 극한 기아와 내전으로 고통받던 아프리카의 난민들이 사막을 건너 난민촌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며칠 밤낮을 굶고 목마름에 시달리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걸었습니다. 난민촌에 도착한 후 그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것은 시원한 물 한 모금과 먹을 양식이었습니다. 한 노인이 물을 마시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 이제 다시는 걷지 않아도 되고, 해를 피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들이 누릴 16절의 축복은 이 난민이 느낀 안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입니다. 이 땅의 모든 주림과 목마름, 고통과 불안은 결국 '큰 환난'의 일부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 안에서 영원히 끝나버린 것입니다.
모든 고난이 끝난 이유, 그리고 영원한 안식이 가능한 근거는 17절에서 명확히 밝혀집니다. 그 핵심은 바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 곧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으나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그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이는 시편 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의 최종적 성취이자,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0장의 약속의 완성입니다.
목자는 양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생명수 샘(πηγὰς ὑδάτων ζωῆς, 생명의 물의 근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이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만족과 풍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며, 그 어떤 결핍도 다시는 없을 것임을 보증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감격적인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이 눈물은 환난과 핍박의 고통,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이 땅에서 죄 때문에 흘렸던 회개의 눈물, 믿음을 지키며 흘린 고난의 눈물 등 모든 종류의 눈물을 포함합니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고통의 흔적까지도 하나님께서 친히 닦아주십니다. 이 행동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그 고난의 기억까지도 완전한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완전한 회복과 위로의 선언입니다. 다시는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는 영원한 기쁨의 세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본 환상은 환난을 통과하는 우리에게 주는 영원한 보증수표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를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 인내하는 모든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최종 목적지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며 섬기는 그 영광스러운 보좌 앞입니다. 이 소망을 붙잡고, 오늘도 작은 환난에 낙심하지 말고 어린 양을 목자로 따라가십시오. 그분만이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장차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아래서 영원한 예배와 안식을 누릴 그날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요한계시록 7장 말씀을 통해 환난을 이긴 성도들에게 예비된 영원한 영광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주림과 목마름, 고난과 눈물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마침내 주님의 보좌 앞에서 영원한 봉사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를 어린 양의 피로 씻어 흰 옷 입게 하시고, 목자가 되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인내로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씻어주실 주님을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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