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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6) 시몬에서 베드로로! (주일예배 20120708)

by 온누리선교 2012. 7. 11.

------- 요한복음 1: 40~42 -------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를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나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저의 이름은 성진.. “성스러울 성, 보배 진”입니다. 보통 다들 “이룰 성에 참진 자”를 많이 쓰는데, 저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드뭅니다. 저에게는 사실 다른 이름이 제 이름이 될 뻔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아’라는 이름인데, 외할머니께서 작명소에서 “성진과 정아” 라는 두 이름을 받아서 저희 친할아버지에게 고르시라고 했고, 할아버지의 선택이 바로 “성진”이라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정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잘 어울리겠습니까? 우리나라에도 작명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연예인들같은 경우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름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불러주는 이름이라서, 남들이 자주 불러주는 이름이 좋으면 그대로 그 인생이 잘 풀려지고 인기를 얻게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성진’이라는 “성스러운 보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 때문에 다른 “성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주님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가 한 돌,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 즉 베드로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형제 안드레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이 만난 사건을 통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되고 축복받았는지에 대해 살펴보면서,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함께 나눠보시도록 하겠습니다.

40~4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첫째, 시몬은 그의 형제 안드레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연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 분은 정말로 오묘하고 치밀하신 방법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부르시는데 결코 실패하심이 없습니다. 참으로 환경으로 사람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말로 절묘하게 자신의 자녀를 부르시고 구원하시는데 오늘 시몬을 위해서 하나님께선 그의 형제 안드레를 통해 거부할 수 없게끔 그를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그의 형제 안드레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 안드레는 어부인 아버지와 요안나의 아들로 태어나, "용감한 남자다운"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부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지만, 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을 존경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었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자, 가장 먼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게 된 주님의 선택을 받은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같이 훌륭한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사람들에게 주님을 잘 소개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주님을 잘 소개하고 사람들을 잘 이끄는 점때문에 '전달자', '소개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더라도, 안드레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 즉, 예수님께서 메시야라는 것을 형인 시몬과 빌립에게 잘 전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시몬은 침착하고 믿을 만하고 견고한 행동을 하는 동생 안드레를 은근히 존경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확신에 찬 어조로 "메시야를 만났다 와서 보라"라는 이 말에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과 의지가 생겼을 것입니다. 이렇듯,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어떤 성도님은 말하시길, 가족을 교회로 이끄는 일이 헌금 100만원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가족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 구원을 선물로 받게끔 인도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옛날 어느 사업가가 레스토랑을 지나다가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갖다대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소년을 보았습니다. "얘야 배가 많이 고프니?" 소년은 수줍은 듯이 "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소년을 식당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음식을 넉넉하게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진수만찬을 눈앞에 두고도 계속해서 창밖만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소년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그 사업가는 물었습니다. "왜 먹지를 않니? 배고프다고 했잖아?" 뜻밖에도 소년은 "저기 창밖에 들여다보는 아이가 제 동생이예요"라고 했다. 그 사업가는 창밖의 소년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두 소년은 풍성한 음식을 함께 마음껏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아직 믿음 밖에 있는 가족들을 이와 같이 주 예수님께서 차려놓으신 멋진 은혜의 식탁에 초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초청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준 안드레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을 자신의 가족에게 전달해준 가장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소개를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어떤 변화를 얻게 되었을까요?

 

42절 함께 읽겠습니다.

둘째,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 영적으로 한 돌이며 반석같은 새 인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이름을 하나님께서 새로 부어주시는 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을 때, 그가 장차 “열국의 아버지” 즉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고, 사래가 사라, 즉 “열국의 어머니”로 바뀌었을 때 생산이 끊어진 그녀의 몸에 이삭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사기꾼 모사꾼 꾀가 많다”는 뜻의 야곱이라는 이름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 자신의 환도뼈가 부러지고 난 후, 하나님께서 주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이스라>는 '주도하다, 끈질기게 다투어서 이기다, 다스리다'를 뜻하는 <사라>의3인칭 평서형 또는 기원형입니다. 그리고 <엘>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부르던 하나님의 이름이죠. 그러니까 둘을 합치면 평서형으로 보자면 '하나님이 주도하다, 하나님이 이기다, 다스리다'가 되고 기원형으로 보면 '하나님이 주도하시기를, 하나님이 이기시기를, 하나님이 다스리시기를'이 되겁니다. 이 뜻은 너무나도 은혜가 되는 것이 창세기 32장 28절에 보면, "이제는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불러라 왜냐하면 네가 (지금까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한번 느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다시는 야곱이라고 부르지 말거라. 네가 지금까지는 '야곱'으로 살아서,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그들과 겨루어 이겼고 오늘은 하나님인 나와 겨루어서까지 이기고야 말았잖니.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지 말거라. 이제는 '이스라엘'로 살거라.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너를 주도하고 하나님이 너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하나님이 너를 끈질기게 주도하시고 다스리기를..."

그리하여 야곱 뿐 아니라 그의 백성 모두가 이후로 ‘이스라엘’, 즉 하나님께서 끈질기게 주도하고 다스리시는 민족이 되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살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주시는 이름은 미래적 의미와 축복을 함께 담고 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방식이신 것입니다.

오늘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의 이름은 시몬이지만 그는 게바 즉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미래에 ‘게바’라는 이름처럼 살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시몬으로서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배를 가지고 있는 큰 어부였고, 성격이 매우 급하고 폭죽같이 큰 소리를 지르지만 금새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가라앉는 그런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고 난 후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부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듯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그가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를 세운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세계 기독교의 20%를 차지하는 카톨릭에서는 교회의 1대 교황으로 그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저 그의 힘으로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6장 16~18절 함께 보시겠습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의 뜻은 “바위, 조약돌,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석”이라는 뜻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전서 10장 4절에 보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8절의 말,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베드로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가 시초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까요?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됩니다. 시몬이라는 인간은 어떠한 인간이었습니까? 충동적이고 감정적이고 실수를 저지르고 죄악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든 인간의 약점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그를 열심히 따랐어도,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 망설임없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그것도 세 번이나 해뜨기 전에 부인하는 배반을 행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베드로라는 이름은 어떻습니까? 한 돌, 반석입니다. 성령강림사건 이후, 베드로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만나 주셨고,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라는 음성에 순종하자, 성령님께서 그를 만져주시고 충만케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모든 인간적인 약점은 어떠한 환란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드러나지 않고 극복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큰 쓰임을 받게 되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초대교회를 세우고, 유대인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처음에는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0장 11장에 보면, 그는 처음으로 이방인 고넬료의 집을 구원케 하는 첫 도구로 쓰임받은 사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며, 그들을 위한 복음전도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에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받을 수 있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성진 그리스도인”, “사무엘 그리스도인”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름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인한 하나님의 양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름 때문에 얼마나 큰 축복과 힘을 하나님께서 주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축복을 얼마나 알고 누리면서 살고 있는지요..

현대카드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사람에게 주는 카드가 블랙이라고 합니다. 그다음은 퍼플, 레드 순으로 이어지는데, 블랙카드는 한도가 무려 1억원이며, 그 외에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블랙카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VVVIP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힘들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 카드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재력이나 위치가 되어야 그 카드가 발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발급해주신 이 블랙카드를 잘 사용하고 있는지요? 또 성령충만함으로 누릴 수 있는 그 은혜의 자원을 이 카드에 걸맞게 지니고 있는지요? 주님께서 아무리 높은 등급의 카드를 우리의 인생에 준다해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 축복의 카드는 나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축복된 이름을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받게 되었습니다. 시몬이 베드로로 이름대로 바뀌게 된 것처럼, 우리도 과거와 현재의 나를 버리고 온전히 예수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과 행복을 날마다 누리시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님!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축복된 존재로 만들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어리석어 그 축복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원하오니 당신의 자녀 당신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