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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요한복음 강해 59)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수요예배20130213)

by 온누리선교 2013. 2. 12.

성경말씀: 요한복음 13장 31~35절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설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어느 저명한 소아과 전문의는 체중 미달의 연약한 어린이를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회진할 때 아이의 진료기록표에다 다음과 같은 처방을 써놓았습니다. “이 아기는 세 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함.” 애정이 필요한 것은 갓 태어난 아기뿐만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신체적 질병이 대부분 불안이나 고독, 그리고 버림받는다는 느낌에 기인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영적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는 힘이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방법으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방법을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최상의 사랑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사랑을 친히 보여주신 예수님을 우리는 오늘 말씀가운데 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 사랑을 우리가 누리고, 체험함으로 배워서 우리도 사랑을 주고 나누는 그 방법을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넉넉히 나누어주고도 남음이 있는 축복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1~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이신 후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라고 15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제 내가 너희들을 씻겼으니 너희는 깨끗하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깨끗지 않다고 말씀 하시면서 그 사람이 나를 팔아 먹을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가룟유다가 자기의 마음을 들키자 당황해서 얼른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남은 열 한명의 제자들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33절에 보면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과 들어가지 못할 사람에 대해서 언급을 하셨습니다. 33절을 보면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고 끝까지 예수님을 좆은 제자들은 하늘나라의 비밀과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줄때 그것을 믿었기에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겠지만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교만하고 이기적인 신앙으로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에게는 결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절절한 가슴을 부여잡고 진심을 담아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첫째로, 새 계명입니다. 34절 함께 읽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사랑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는 농담이나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가장 중요한 말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참으로 진지하고도 무게가 있는 중요한 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새 계명은 우리에게 꼭 지켜야할 의무가 됩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는 모든 사람이 후회한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이나 성공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항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히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 따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짝사랑은 내가 원하는 사람 누구든지와 사랑할 수도 있고, 상처 받을 일도 없어서 좋기는 하지만 열매는 없습니다. 열매가 있으려면 반드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럼, 누구를 위하여 사랑합니까? 신명기 10장 13절의 말씀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나를 위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싫어하면 내가 불행할 기회가 많고, 좋아하고 사랑하면 내가 행복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짓말처럼 보이십니까? 나자신을 위하여 타인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보이신 진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한 주부인 데비 텐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의를 베푸는 행동은 하나님을 돕는 것”이라는 잠언을 마음에 새기며 행복한 중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일주일에 한 가지 좋은 일을 하자”는 모토로 작은 봉사사이트 하나를 열었는데, 전세계적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사이트는 단순히,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간단하게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맞추어 각국에서 올라온 참신한 아이디어로 “맞춤형 봉사”를 할 수 있게 된 이 사이트는 잘 조직된 봉사단체가 아니라 일반인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다보니 큰 단체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세심한 부분에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아프가니스탄에는 공책, 샤프, 영양 간식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물품을 담은 선물을 보내주었는데 이런 선물은 미국인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죽이러 왔다는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미국병사들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고, 예전보다 사상자가 많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한 가정주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엄청난 기적같은 일을 나타내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b)

어떻게 사랑하라고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사랑하라고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왜냐면 첫째, 사랑받은 자가 사랑할 수 있기에 주님말씀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처럼 사랑하라 한다면 아마도 그렇게 사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받은 자는 "주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큰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기에 주님말씀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보면,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인내를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을 인(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험하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함께 참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잡으러 온 군관을 향해 분을 참지 못하고 칼을 내리쳐서 그 군관의 귀를 잘라 떨어뜨렸을 때 주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참는 것은 이를 악물고 참는 것,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참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변화될 것을 믿으며 변화를 기대하며 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셋째로, 사랑은 오랜 기다림입니다. 마태복음 18장 2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이 말씀은 그 사람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 주라는 뜻입니다. 용서는 ‘공동체 생활의 접착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끊어지지 않도록 묶어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만 사실은 한 사람도 완전한 사랑을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가 용서해 주어야 될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은혜를 받으면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묵상하면서 감격하는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은혜를 놓치지 않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새 계명이라고 말하시며 보이신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랑입니까? 헬렌켈러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랑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헬렌 켈러는 3중장애를 가졌습니다. 눈도 안 보이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헬렌 켈러 못지않게 유명한 그의 선생님은 설리반입니다. 보지 못하는 헬렌 켈러가 사물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 손으로 만져 느끼게 하고 그것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만질 수 있는 것은 인식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러나 추상적인 단어가 문제였습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사랑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헬렌 켈러는 사랑이 뭔지 잘 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저를 꼭 안아 주신 것, 그게 사랑이에요.”라고 했답니다. 말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해서 말로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헬렌 켈러였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꼭 안아준 행동에서 사랑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향하여 지금은 서로 사랑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얼마나 아름답고 강한 것입니까?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소리가 나는 말로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오신 말씀이신 하나님은 사랑으로 당신의 말을 확증하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경건하지 않은 자인 우리를 몸소 씻기시고 사랑하심으로 당신의 말을 확증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또 사랑의 수고와 사랑의 상처로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받았다고 어떻게 세상에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35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제퍼슨 시라는 미국 미주리 주의 수도인 곳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아카페하우스라는 시설이 있는데, 이 시설은 미주리 주 교도소에 면회 오는 수감자 가족들을 섬기는 기독교 기관입니다. 수감자의 가족들은 대부분 복지연금으로 살아가는 어려운 이들입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남편이나 아들 등을 면회하기 위해 오는 경비로 다 쓰고 나면 숙박비를 지불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애기 엄마는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와서 6개월 된 애기를 안고 어느 호텔의 화장실 한 칸에 앉았다가 교도소가 문을 여는 8시까지 기다립니다. 또 어떤 이들은 차를 몰고 와서는 다리 밑에 주차해 놓고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쪽잠을 자곤 합니다. 이들은 잠잘 곳도 없고, 옷 갈아입을 곳도 없고, 위로도 받지 못하며 자신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으며 비참해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 도시의 교도소 선교회 봉사자들은 “우리 중에 있는 나그네들”을 도우라는 성경의 명령에 대해 토의하다가 수감자들의 가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회원들이 수감자 가족들을 각자의 집에 초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볼 수감자 가족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루스 히니라는 수녀를 중심으로 후원회를 조직하여 10개의 침실과 세 개의 부엌이 딸린 낡은 하숙집을 구입해 아가페하우스라 이름을 지어 수감자 가족들을 돌보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숙박료는 하루 3달러로 정해놓고 없으면 무료로 묵을 수 있게 했습니다. 루스 히니 수녀와 함께 사역한 밀드레드 테일러라는 자매는 사역시작부터 자신의 방을 개방해놓고 상담을 원하는 이들의 사연과 아픔을 들어주었습니다.

그곳을 섬기는 루네트와 매리애타라는 자매는 “우리는 씨 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그것들을 추수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지요. 우리는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고 합니다. 아가페하우스에 묵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희생과 사랑을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결과를 계산하지 않고 그저 사랑으로 돌보고 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며칠 묵고 떠나며 “이곳에 묵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이 집이 제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모릅니다.”고 했습니다. 또 수감 중인 남편을 면회 왔다가 묵은 한 여인은 나눠준 성경책도 읽지 않았고, 평생 종교에 빠져본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떠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나도 이 한 가지는 안다. 만일 하나님이 정말 계시고 그분이 분명 좋은 분이시라면 그분은 아마 아가페하우스에 있는 이 여자들과 같은 어떤 분이실 거야.”

예수님의 제자는 주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주를 따르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주를 위해 뭔가 남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주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습니다.”고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신 것은 우리가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실천해 나갈 때,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로 인정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랑으로 인한 수고를, 사랑으로 인한 아픔과 기다림을 기꺼이 감당하는 아픔의 사람들입니다. 심령의 괴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 깊은 고뇌와 통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끌어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제자 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의 수고로만, 사랑의 상처로만 말하는 참된 예수의 제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의 수고로만 주님은 여러분을 알아보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떠나는 장면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3년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것을 보는 순간 받을 충격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위기와 영적인 위기에서 그들로 하여금 꿋꿋하게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서 멈추지 아니하고, 그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의 의미를 전할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의 메신저가 되게 하였습니다.

새 계명을 취하여, 예수님을 따라 배우고 경험한 그 사랑으로 기쁨을 누리고, 그 사랑을 전하여 온 세상이 주께서 주시는 평안함으로 살 수 있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저와 성도 여러분들 안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시고, 은혜 충만한 가운데 그 사랑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의 능력 부어주시옵소서.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잘 견디어 나가서 주의 사랑이 충만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 부어 주시옵소서. 오! 주님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들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견디고 이겨내어 축복의 길로 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로서 살면서 행복한 영적 인생을 살고 싶사오니, 주여!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새 계명을 지키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