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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요한복음강해 60)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일예배 20130217)

by 온누리선교 2013. 2. 20.

성경본문: 요한복음 13장 36~38절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설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1951년 미국에서 제작된 ‘퀘바디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베드로가 '쿼바디스 도니네'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헬라어 말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당시에, 폭군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얼마나 핍박했던지, 기독교인이라면, 닥치는대로 잡아다가, 경기장에 몰아 넣고, 굶주린 사자를 풀어, 물어 뜯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도, 사람인지라, 로마를 피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도망쳐 가는데, 베드로의 눈 앞에 십자가를 무겁게 지고 가는 주님의 모습의 나타납니다. 이 때 베드로가 깜짝 놀라서 주님께 소릴 칩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영화에서는 베드로가 핍박을 피해 도망치다가, 이 말을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화이야기를 소개하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지기 싫어하는 그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지러 로마로 간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아닙니다. 주님을 두번 십자가 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다시 로마로 가겠습니다.' 하고 하고 다시 로마로 들어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당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을 맺습니다.

저는 가상이기는 하나 이 영화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또 베드로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 길이 죽음의 십자가 길이라도 따르겠는가 하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로 인해 많은 자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지금 그 사랑으로 베드로를 초대교황으로 한 카톨릭은 신자 수는 약 12억 명이다. 세계 총인구의 약 17.5%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주를 따라 가겠다는 베드로의 마음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찾으시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고백 가운데 주를 사랑하며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영광드리는 놀라운 일이 있게되기를 바랍니다.

 

36절의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잠깐 너희와 함께 있다가 떠나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주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는 이 질문은 바로 신앙생활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시는 길을 나도 따라가겠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제자가 뭡니까? 선생 가는 데로 따라가는 게 제자 아닙니까?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받기를 원합니까? 예수님뿐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 길을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주님은 순종하셨고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희생이 바로 베드로를 목숨 바쳐 따라오게 한 것입니다.

 

말씀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은 삼 년 전 있었던 천안함 침몰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때 침몰된 배에 생존자나 사망자를 구조하러 나섰던 한주호 준위는 2010년 3월 30일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희생자들의 가족은 해군의 미흡한 대처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고, 국민들은 대한민국 군 당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었던 실정이었습니다. 구조작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물살이 1노트, 시속 1.85㎞ 넘으면 잠수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백령도 앞바다 조류(潮流)는 5.3노트로 치달리고 있었는데다가 현장에 달려온 민간 구조대원들이 선체(船體) 근처도 못 가보고 도로 올라와 손을 내젓는 뿌연 서해바다였습니다.

외신기자 한명은 카메라에 잡힌 53세 노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해군 특수전여단 한주호 준위는 사진 속에서 이를 악문 채 성인봉함 갑판에 서 있었다. 한 준위의 잔뜩 찌푸린 눈과 이마는 사랑하는 후배들을 삼킨 서해 바닷속이 지금 얼마나 험악한지, 그 거친 바다 앞에서 그가 어떻게 스스로의 마음을 담금질하고 있는지를 함께 말하고 있었다.

"하루 잠수하면 이틀 쉬어야 한다"는 안전규정도 바다 밑 캄캄한 어둠에 갇혀 있는 후배들을 살려내려면 1분이 아쉽다는 그를 붙들지 못했습니다. 사실 한 준위는 지난 35년간 수중폭파(UDT)의 교관으로 2년 뒤 전역을 앞두고 있는 군인이었습니다. 사실 후배들과 함께 우리가 숨쉬는 공기압의 다섯배가 넘는 45m 바닷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준위는 군 생활 평생 "내가 앞장서야 따라온다"고 믿어 왔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몸이 얼어붙고 머리가 아플 정도의 추위가 있는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한 준위는 내리 나흘 잠수했다가 싸늘한 몸으로 떠오르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구조대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준위의 빈소엔 해군당국을 많이 원망하던 실종자 가족들도 찾아와 "죄송하다"며 흐느꼈습니다. 또한 한준위의 후배들은 그 희생을 기억하며, 자신들의 동료들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들이 군에 대해 신뢰를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한 사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한주호 준위, 국민은 당신의 거룩한 희생 앞에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 가슴 속에서 잠시 흔들렸던 군(軍)에 대한 미더움을 되찾게 해준 당신을 향한 고마움을 어찌 나타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말씀하시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진정한 희생과 사랑이 없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감당치 못하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정 따르고자 했던 베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닭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말 가운데 그 열쇠가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그 뜻을 위해 희생하기를 원하는 자가 걸어가는 길에는 꼭 중요한 요건이 하나 필요합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37절에, 이렇게 호언장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님, 저를 얕보지 마십시요. 주님 가시는 길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실패 했습니다. 정말로,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닭 울기전에 주님을 따르기는커녕,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베드로는 실패 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 가는데, 자기 부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인이 없으면, 사랑의 마음도 온전하여 질 수 없고, 사랑의 행위도 나타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퀘바디스라는 영화에 나온 것처럼, 그러한 실패를 거친 후에야 자기를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은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순교하였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아가 깨어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자아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배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매일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아가 하나하나 깨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은혜를 맛보는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만약에 끝까지 내 자아를 깨트리기를 거부하면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우리 자아를 깨트릴 것이기에 우리가 겸손함과 순종함으로 은혜주시기를 작정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소설가 C.S.루이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우리의 모습이 아직은 하나의 모형에 지나지 아니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당신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계속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속에 당신의 생각과 삶을 주입시키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형이 실물로 점점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껍데기와 같았던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 임하여 주셔서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하신다, 즉, 하나님의 아들인 “작은 예수”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내 욕심, 욕망, 죄가 내 안에서 없어지면, 하나님께서 사랑, 은혜, 지혜로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은 자연스레 축복 가운데 있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고 따라가고자, 교회도 나오고, 신앙생활을 결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일이 내 계획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나이를 먹어가고 지위가 올라갈수록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시 내 자신을 돌아보아도, 내 스스로가 세상을 주도하며 살 수 없음을 압니다. 이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하면, 불신자들은 알면서도 “난 할 수 있어.. 나 자신을 잘 믿기만 하면, 세상은 언젠가 나의 손 안에 들어올거야”라는 허황된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든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자신의 한계와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을 다 맡깁니다.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해주시기를 간절히 원하며 인내합니다.

 

이번 총리 내정자에는 강력한 후보가 있었습니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었습니다. 그는 소아마비라는 장애와 70이 넘는 연로한 나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부의 신뢰를 받아 총리내정자로 올랐습니다. 그의 인생은 바로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큰 결실을 맺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장애물을 넘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그 어렵다는 법조계에 들어가서 법조계의 가장 최고봉인 헌법재판소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장애가 있는 만큼, 가장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총리를 눈앞에 두고, 그는 두 아들의 병역 면제 및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인해 사퇴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 마지막 기회라 무리를 해서라도 놓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 다음 내정자로 정홍원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분당할렐루야 교회 집사로,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은 그저 욕심없이 유명변호사 월급으로는 말도 안되는 월 3000만원을 벌었고, “대형 사건이나 재벌 사건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참으로 세상적으로 보면, 순진하게 살았습니다. 순진해도 너무 순진하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주일만 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고, 교회를 위해 주차봉사를 하는 그런 성도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민주당에서도 어쩌지 못하고, 새누리당에서도 흡족해하는 그런 총리내정자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보고 어떤 것이 떠오르십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멍청하고 순진한 길이라고 생각하셨다면 그 판단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의 성취가 올바른 것이고 삶의 의미라서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그 마음을 돌이키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간절한 외침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길다하면 긴, 짧다하면 짧은 우리의 인생을 멋지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서 함께 만나 신나게 웃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 세상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누리고, 저 하나님 나라에서도 복된 백성이 되는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에게 참 사랑과 희생을 알게 하시고, 또한 이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구원으로 다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영화롭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받는데 우리의 욕심이 어디있으며, 우리의 주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며 순종하는데 있어서 결코 어떠한 장애가 있지 않도록 우리를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놀라운 섭리 안에서 주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