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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요한복음 강해 61)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수요예배 20130220)

by 온누리선교 2013. 2. 20.

성경본문: 요한복음 14장 1~6절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설교: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전혀 아픈데가 없는데도 스스로 환자라고 단정, 병원을 전전하는 "건강염려증환자"가 급증하고 있답니다. 또 이런 환자들 중에는 의사가 특별한 병이 없다는 진단을 내려도 믿지 않고 이병원저병원을 쫒아 다니다 마침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으며, 정신적인 고통이 실제로 신체적인 병으로 나타나는 사례도 많다는게 병원관계자들의 말입니다. 심지어 순천향 병원 신경정신과의 통계를 보며, 하루 평균 내원 환자 60여 명 중 20퍼센트에 해당하는 12명 정도가 건강 염려증환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걱정 근심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근심에 눌려서 지배당하고 사는가 아닌가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엄청난 근심걱정 가운데서도 이에 지배당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놀라운 사건이 하나 나옵니다. 초대교회가 엄청난 박해 가운데 있었는데, 그 때 야고보가 순교당하였고, 또 이제 곧 베드로도 잡혀서 처형될 상황입니다. 죽기 전날 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베드로의 모습을 써놓았습니다. "12:6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두 명의 군인들이 옆에서 함께 있고 쇠사슬이 채워져있고, 내일이면 처형되는데도, 베드로 사도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믿고, 경험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근심하게 되는데 우리가 근심하는 이유와 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근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게 때문입니다.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의 근심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근심이나 걱정을 없애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 아들이 7~8개월 좀 넘어서였는데, 문화센터를 마치고,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떤 할머니께서 아이가 예쁘다며 말씀하시길, "너는 좋겠다 아무 근심걱정이 없어서.." 엄마 품에 안긴 아이에게는 근심걱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모든 것을 엄마가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가 근심걱정하고 있는지 그것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에서 근심하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엄마가 사라지고 나면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 울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자기를 다시 안아줄 때까지 목 놓아 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간절히 하나님께 나와 부르짖으며 기도합니까? 하나님 품을 떠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돌보아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떄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내게 근심걱정이 생기고, 전전긍긍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품어주시고 돌보아 주시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계십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좀 걷게 되었다고, 좀 뛰게 되었다고 멀리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다니다가 넘어지고 부딪쳐서 피가 나고 상처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품 안에 있어야 걱정 근심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시고 길을 활짝 여심으로 사람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수 있도록 길을 닦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같이 부족하고, 사단의 유혹에 연약하여 날마다 넘어져서 죄를 짓고, 그로 인해 걱정근심을 달고 사는 우리에게 주 예수님께서 친히 그 모든 장애물을 없애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시어,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시는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근심과 걱정없이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이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야 제대로 된 바른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도마도 예수님에게 같은 생각으로 지금 본문을 보니, 질문하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도마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6절입니다.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님만 잘 쫓아가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음으로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탐험가가 아프리카 현지인과 함께 정글을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글은 얼마나 숲으로 우거졌는지 정글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 탐험가의 마음에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정글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답답하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함께 온 현지인은 전혀 불안한 기색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길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길이예요"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무 자르는 큰 칼로 길을 만들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서 그 깊은 정글을 나와 목적하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길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근심하고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 너무 힘듭니다. 누구는 지금 땅을 사야 돈을 번다하고 누구는 펀드나 주식에 넣어야 돈이 된다 합니다. 누구는 시골에 사는 것보다 도시에 살아야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 하고 누구는 평화로운 시골을 지키며 사는 것이 더 건강하고 나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근심하고 어떻게 살아야 망하게 살지 않는가 늘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길이 아닙니다. 진정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길을 만들어 내시는 예수님만 졸졸 잘 따라가면 결코 혼란스럽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 근심과 걱정없이 사는 길입니다.

 

세 번째, 근심과 걱정없이 살기위해서는 성령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근심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시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을 유대인의 박해와 바리새인들의 공격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버리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불안하고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실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님께서 오신 이후, 제자들은 그 이전의 제자들의 모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이상 도망자가 아니라, 능력이 나타나는 주님의 사도로 변하였습니다. 병자들이 치유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귀신들이 묶임을 받아 쫓겨나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런 사역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자신들이 그런 하나님의 사역을 능력 있게 해낼지 모르고 전전긍긍하며 걱정만 할 뿐 이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의 말씀,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지금 이순간도 성령을 내려주셔서 그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없애주시고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4장 6절의 말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근심과 걱정이 제거되는 것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아멘이라고, 응답도 하였습니다. 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설교도 매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근심걱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제가 이야기 하나 소개해드리면서 함께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한 사람이 철길을 따라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때 저기 멀리서 기차 경적 소리가 울렸습니다. 순간 앞을 보지 못하는 이 시각장애인은 엉겁결에 철교의 난간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난간 받침대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본인에게는 정말 위기일발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각장애인에게는 기차가 지나가 버린 후가 더 큰 문제였습니다. 땅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발밑이 얼마나 깊은 낭떠러지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청년이 이 장애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난간을 놓으세요!" 그러나 화가난 이 장애인은 " 왜 끌어올려주지 않고 놓으라고만 해요? 날 끌어올려주세요!" 그러나 청년은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청년이 왜 끌어올려주지 않았느냐 하면, 땅과 시각장애인의 발 사이의 거리가 겨우 10센티밖에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우리는 주님을 아는데 너무 섭섭할 정도로 모른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주는 삶 가운데 은혜를 누리면 근심과 걱정이 없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이라면 결코 근심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근심걱정이 있다면, 우리와 늘 함께 하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길 되신 예수님을 쫓자가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기도하면 주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셔서 우리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주 안에서 살아가지 못하여 늘 걱정근심만 하고 살아왔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 우리 마음에 새깁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을 의지하며 굳게 믿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의 근심걱정을 없애시는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