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히브리서 8:7~13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설교: 새언약이 좋은 이유
우리는 보통 집계약서를 쓸 때 꼼꼼히 따져서 씁니다.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하여서 그리합니다. 그리고 보통 전세 계약 같은 경우, 2년정도 집에 무슨 불편함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도, 2년을 다 채우고 나서 집을 옮기거나 더 유리한 쪽으로 재계약을 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계약, 약속을 했기에 그대로 참고 인내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새언약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있습니다. 구약은 옛날 언약 즉 지나간 약속이라는 뜻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옛날 약속도 중요하지만, 옛날 약속보다 더 좋은 새로운 약속이 있다면, 옛날 약속으로 새워졌던 관계가 없어지고, 새롭게 더 좋은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겨져야 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율법적인 신앙형태에 갇혀서 영적인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다면, 바로 새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새언약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를 알고 그것을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8~9절의 말씀입니다.
8.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옛날 언약과 새언약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오늘 본문에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BC 5 세기경 남조 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남조 유다가 바벨론에 망할 것을 알고 항복하라고 설교하였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동족으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전하라고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즉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라를 만들게 하시고, 이 나라라는 울타리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였습니다. 즉, 돌보심의 목적으로, 하나님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고, 그 품 안에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 만남의 지침서’, 또는 ‘하나님 백성이 되는 자격 안내서’ 인 것입니다. 국가적인 형태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에게 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는 것이 불안하면 자신의 뜻대로 이방신을 데려다가 섬김으로 나라는 나뉘게 되어버렸고, 나중에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다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망해가는 남유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1:31~34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의 핵심은 바로 “그것은 때가 되면, 날이 이르리니, 옛 언약을 버리고 새 언약을 세울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렇다면 옛언약은 무엇이고, 새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옛언약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옛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지도 아래 이집트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이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돌비에 그 언약의 내용을 새겨 주셨습니다. 열가지 십계명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 돌비를 “언약궤” 안에 넣고 아주 소중히 보관해 왔습니다. 그러나 잘 보관만 했을 뿐 그 내용을 잘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보관만하고 부적처럼 생각만 하다가 결국 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세의 언약을 자신의 마음 안에 두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대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이러한 이스라엘백성들의 불순종은 마치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외도한 행위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구원하지 않으시고 망하게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결과 그들의 나라는 둘로 나뉘어졌고 결과적으로 그 두 나라가 다 망하게 된 것입니다.
10여년 전만해도 일반교회들을 가면 커다란 성경책이 십자가 밑에 펴져 있었습니다. 지방교회로 가면, 그런 성경책은 마치 부적같이 신성한 것으로 여기듯이 양쪽에 불을 켜놓기도 하였습니다. 간혹 아프리카 선교지에서도 주물 사상이라고 해서 어떤 신성한 물건에 힘이 있고 신이 깃들어 있다하여 어떤 부족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는데 있어서 성경책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맹신한다고 합니다. 물론 주일마다 먼지 가득싸인 성경을 툭툭 털고 교회오는 것도 문제지만, 성경책 자체를 어떤 신비한 힘이 있는 거룩한 존재로 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성경책을 읽으며 우리의 인생에 나타나는 기적들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책이 나한테 항상 있으므로 어디를 가든지 안심이 된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들도, 하나님게 받은 시내산 언약을 이와같이 여겼다는게 문제입니다. 사무엘상 4장에 보면,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마치 전쟁에 들고 나가는 부적처럼 생각했습니다. 그 언약궤를 들고 나가는 자들의 자세와 마음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부적처럼 생각하고 나갔으니, 당연히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직접 블레셋에게서 이 언약궤를 찾아오셨고, 이스라엘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알게 하셨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옛언약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언약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에는 흠이 있습니다. 한정적입니다. 일시적입니다. 제사를 드린다하여도 늘 흠있고,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해버리는 인간들이 드리는 제사이니, 매번 동일하게 제사를 드려도 인간들의 죄들은 전혀 없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에 너무 부족합니다. 완전히 죄가 없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이스라엘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고 완벽하고 더 나은 언약을 우리와 맺으셔야 했습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아주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특히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는 말입니다. 옛언약을 하나님께서 만든 목적도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았고, 이제는 전혀 차원이 다른 언약을 우리와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언약을 맺는 목적이 단 하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들고 지키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옛언약을 버리고 새로 세우신 언약은 무엇이 좋습니까?
첫째, 영적 언약입니다.
율법은 몸에 자국을 내는 할례를 받아야 했고 실제로 억지로라도 육적으로 실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즉 마음의 법입니다. 이는 생각에 마음에 새기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이루신 대속의 진리를 돌에다 새겨서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사실을 믿게 하시어 우리의 속에 즉 마음에 새겨 넣으신 것입니다. 이는 완벽하고 완전하며 영원한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있는 마음의 언약입니다. 형식적이고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원리적이고 영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옛 언약(율법)은 강력한 요구조건이 따르고, 불순종하면 징벌이 따르는 성격을 가진 법이라면, 새 언약(복음)은 마음에 호소하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도록 이끄는 법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모든 사람을 위한 차별없는 언약입니다.
옛언약은 사실 야곱의 자손 12지파에게 만 주어진 언약입니다. 이 야곱의 자손들,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출애굽 시키셔서 시내산 밑에 모으시고 율법을 주셔서 그 율법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택된 민족, 선민이라 하여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백성은 피로, 혈통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마음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 모두에게 “하나님이 되시며 그는 그의 백성이 되는”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이는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12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방법이십니다.
셋째,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11절입니다.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스위스의 알프스 산에 한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이집은 종치는 집이라고 불렸는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집이었습니다. 이 깊은 골짜기에는 겨울이 찾아오면 눈이 바람에 날려 앞을 볼 수가 없고 사방이 흰 눈으로 덮여버리므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기 쉬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날이면 누구든지 이 집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종을 치기 시작한답니다. 그래서 길을 잃는 사람 누구나 다 이 종소리를 듣고 구조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언약도 이 산장의 종소리와 같습니다. 이 언약은 어리거나 늙었거나, 거지거나 부자거나, 백인이거나 흑인이거나, 상관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든, 어떤 상황이든 무제한으로 역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따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예전 언약과 달리 “~하면 ~하리라”가 아닌 무조건적이고,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런 언약이기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세워진 새언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따지시거나 묻지 않으시고, 이 죄의 문제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즉, 이 죄 때문에 발목이 묶여 사단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언약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내어 죽이셔서 완벽하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이상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깨닫고 믿은 사람은 영원히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우리의 죄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행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를 듣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새언약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셨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았습니다. 그저 내 앞의 문제에만 급급하여 기도하고, 내 문제의 뿌리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제사도 열심히 하고 말씀도 이마에붙이고 산 이스라엘이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나라를 잃게 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언약을 주셨으니, 그 언약에 순종하고 주님과 함께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
우리에게 새언약을 주셔서 날마다 주의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올때, 너무나도 부끄럽지만, 아버지처럼 우리를 품으시고, 친히 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자녀되게 하시니 그 은혜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새언약 주심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 부족함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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