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히브리서 8:1~6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설교: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저는 종종 목사는 어떻게 목회를 해야하나 라고 생각할 때, 늘 '중보'라는 예수님의 사역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어떤 직장을 소개받아 갈 때, 누가 소개했느냐에 따라 직장에서 이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일지 말지 생각해보는 것처럼 가운데서 소개하는 사람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목사라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스스로가 성취를 강하게 가져서도 안됩니다. 종종보면 가정집 방에서 시작하여 천명넘는 교회로 성장시켜놓은 목사님이 종종 말년에 큰 스캔들에 휘말리는 경우들을 봅니다. 교회가 성장될 때 목사들도 인간인지라 하나님께서 직접 목회하시고 목사를 통하여 교회에 들어온 많은 영혼들을 양육하시는 것인데, 마치 내가 이렇게 이루어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물거품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자칫 목사가 내가 내 교인들을 키웠고, 영향을 크게 주고, 존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백성인데 자칫 내 교인, 내 성도, 내 사람이라고 여기는 큰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을 잘 받는 도구이기에 자칫 쓰임받았다가 잘못하여 버림받을 수도 있는 그런 직분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자신을 온전히 비워야하는 자신과의 싸움을 늘 해야하는 인간으로서 힘든 직업이라고 말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보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자신을 철저히 비워 온전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잘 연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이 중보의 역할을 잘하셔서 지금 어떠한 위치에 계신지, 그리고 이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것! 우리에게 얼마나 복된 것이고 중요한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확인하시는 귀한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1~2절 말씀입니다.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메시야를 기다렸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 여러곳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일을 담당할 것인가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이 메시야가 감당할 역할에 대해 잘 기록한 구절은 시편 110:4입니다.
4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편 기자들은 놀라운 예언으로 1,000년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과 승천등 일련의 예수님의 구속 사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들은 바로 영원한 통치자로서의 신분이 회복되는 사건이요, 영원한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왕이시오,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지상에 있는 제사장들과는 그 신분에 있어서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에 그 어떤 제사장들과는 비교 조차할 수없는 위대한 중보자 제사장이십니다. 현재 그 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 즉, 위엄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이 장소와 위치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만들게 하신 장막, 천막 성소와는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사람이 천으로 만든 곳에서 제사의 직책을 감당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하늘 성전에서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십니다. 2절에서 저자는 이는 “성소와 참성막으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요, 주께서 베푸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지상에서의 모세의 성소와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신 천상의 성소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집, 천국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받드는 진짜 제사장으로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는 죄 때문에 자격이 안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죄를 일순간에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오른쪽에 서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믿을 만하고 이렇게 사랑하는 예수님을 왜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고 우리가 사는데 결코 버릴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로 품고 사는 것입니다.
3~5절의 말씀입니다.
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오래전에 아르메니아에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수백채의 건물과 집이 부서지고 수 백 명이 죽고 부상을 당하는 엄청난 큰 지진 이였습니다. 그런데 빌딩이 쓰러지고 콘크리트가 무너져 내린 그 속에서 두 모녀가 14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놀라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잔나라는 여인과 4살 먹은 그의 딸아이였습니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 깔려있었던 스잔나 여인과 딸 아이와 그의 고모는 함께 있었는데 고모는 며칠이 못되어 숨을 거두고 말았고 고모가 죽어가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한 두모녀는 서로 꼭 부등켜 안고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보통 어른들은 자체 내 수분과 단백질로 한 열흘 이상을 먹지 않아도 유지 할 수 있지만 어린 아이들은 3∼4일 수분을 섭취 못하면 그대로 실신해 주고 마는 것입니다. 나흘이 지나게 되니까 스잔나의 어린 딸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실신한 딸을 안고 비장한 각오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야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유리조각을 주워서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찢어서 딸아이에 입에 놓고 피로 목을 축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 하나에서 피가 계속 나오지 아니하였고 좀 흐르다가 지혈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딸아이가 생기가 나다가 또 지치고 그럼 그 다음날 다른 손가락을 찔러서 아이의 목을 축여주고 이렇게 하기를 14일 동안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조대에 의하여 구출되었을 때에는 10개의 손가락 중에서 9개가 유리파편에 찢어져서 손이 만신창이가 되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피를 먹고 생명을 유지했고 엄마는 자기피를 흘려서라도 딸아이의 생명을 구해야하겠다는 신념으로 함께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하나님께 저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그 예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자신의 희생, 생명과 맞바꾼 피입니다. 바로 자신을 다 내어드리면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우리를 축복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아가십니다. 제사장은 구약에서 보면,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복을 구하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들은 백성들의 속죄제물을 바치며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비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완벽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장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철저히 내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불사할 만큼 생명을 내어드려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달라 하지 못했고, 또 복을 빌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서 있었던 성소와 제사장 제도는 그저 일종의 아파트 모델 하우스처럼 천국과 완벽한 제사에 대한 소개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어찌보면 그림자처럼 진짜 모습은 보지 못하지만,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그저 흉내만 내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지은 성소는 천국,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모양만 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단번에 십자가에서 예물로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서 진짜 제사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6절입니다.
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구약의 제사장보다도 더 위대한 제사장인 예수는 7장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되었기에 레위 지파의 아론의 반차를 따라 되는 제사장과 비교해 볼 때, 더 위대한 분이라고 주장하였고 이제 8장에서는 구약의 제사장은 옛 언약(율법)에 따라 된 제사장이라면, 예수는 새 언약에 따라 된 제사장임을 강조합니다. 이 점에서 7장의 핵심 단어)가 ‘멜기세덱’이라면, 8장의 핵심 단어는 ‘새 언약의 중보자’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강조합니다. 이렇게 위대한 분이 우리의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중요할까요? 6절에서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 더 좋은 언약이라고 할까요? 옛 언약과 비교해 볼 때, 예수께서 감당하시는 신분과 사역의 근거는 새 언약에 따른 것으로, 옛 언약인 율법과 비교해서 한 차원 높은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분과 사역의 장소와 사역의 내용에 있어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여러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됩니다. 직접 경험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좋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권사님, 집사님, 장로님, 목사님, 믿음좋은 가족 등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셔서 하나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신앙생활을 할 때에 온전하고도 가장 완벽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람들을 의지하고 믿는다면 여기서부터 사단이 틈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다니고 신앙생활한다면서 실망하기 시작하고 타락하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고 또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선택한 영적 이스라엘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먼저 의지하고 가장 신뢰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시험에 빠지지도 않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바로 잡아서 그 복을 누리는 복된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완벽한 중보자, 복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늘 믿고 살아가시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셔서 온전히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구원받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시며 우리 편에 서서 함께 하시니 또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이 세상 살아갈 때에 우리를 향한 사랑을 펼치시고 우리가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도록 축복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귀하신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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