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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악하고 게으른 종아! (주일예배 20150920)

by 온누리선교 2015. 9. 18.

성경본문: 마태복음 25: 24~30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설교: 악하고 게으르는 종아 !

 

사람들이 제일 원하는 게 무엇일까요?

일 안하고 편하게 돈도 많아서 이리저리 놀고 싶어하는 겁니다.

예전에 중학교 다니는 주일학교학생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너는 커서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어?’ 그랬더니 그 아이가 그럽니다. ‘힘 안들고 쉽고 대신 돈 많이 버는 직업이요!’

 

자신의 재능이나 자신에게 보람되고 재미있는 평생직업을 갖는 것보다 고생안하고 돈 많이 벌어 편하게 살고 싶은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학생의 말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심하다고 여기는 분도 계실 것이고, 반면에 ‘참 그 말이 맞다! 나도 그러고 싶다!’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헛되게 지내게 만들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재주 없는 사람 없고, 사람에게는 자기만이 다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무능한 사람은 원래 없습니다. 오죽하면 옛말에 “자기 먹을 것은 다 알아서 갖고 태어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누군가가 무능하고 또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바로 게으르거나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하나를 만드실 때 아무 의미 없이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잘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게끔 적어도 좋은 재주 하나씩을 우리들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말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만드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의 말씀을 깨닫고 하루하루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아 가시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달란트’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인이 맡길 정도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달란트는 그 당시 통용되는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한 달란트는 34Kg의 순금에 해당되는 가치를 지닌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가치로 보자면 일꾼이 하루 일해서 버는 돈이 한 데나리온인데, 그것에 6,000배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오늘날 가치로 따지자면, 일꾼들의 하루 일당을 10만원이라고 가정해서, 10만원 x 6,000인, 즉 6억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각 종들에게 엄청난 재산을 주고 떠난 것입니다. 그 큰 돈을 거저 준 것입니다.

마태복음 25: 15에 보니, 이 주인은 그 큰 돈을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각각 30억, 12억, 6억을 주고 떠난 것입니다. 이렇게 이 종들은 한 마디로 커다란 축복을 주인에게 받은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큰 은혜를 이 종들이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첫 번째로,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축복 받으려면 연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주실 명분이 아주 명확하게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 축복받을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은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발휘하고 쓸 때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게 하셨습니다. 보면, 어떤 사람은 특별한 감각이 있어서 음식을 만들 때마다 같은 재료를 쓰는데도 남들보다 더 맛있게 만듭니다. 또 어떤 사람은 손놀림이 아주 뛰어나서 남들 1시간 일할 양을 단 10분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전에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를 본적이 있습니다. 봉투붙이는 일을 하는 어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어찌나 그 봉투 붙이는 일이 빠르던지, 많은 업체 사장님들이 이 어머니에게 일감을 몰아주곤 했습니다. 큰 봉투, 작은 봉투, 편지 봉투, 서류 봉투... 어떤 봉투를 갖다 줘도 척척 원하는 날짜 전에 빨리 붙여서 갖다 주니, 이 어머니는 일감이 떨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홀로 된 이 어머니는 아이들 셋을 빨리 봉투 붙이는 이 남다른 재주로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학교까지 잘 보내었습니다. 봉투 붙여서 아이들 대학까지 어떻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어머니는 성실함과 동시에 이렇게 특별한 재주로 기적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분명히 남다른 재주 하나씩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거저 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란트를 거져 주셨을까요? 분명히 달란트를 거저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은사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사도로, 예언자로, 복음전도자로, 목회자와 교사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잘 살게 하기 위해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잘 세우게 하기 위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재주나 은사가 “난 원래 복되게 타고나서 그래” “난 천운을 갖었어”라는 게 아니라, 다 올바르게 쓰일 때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게 태어났다고 좋아하지만, 그것이 올바르게 쓰일 때 그 머리 좋은 것이 그 사람에게 축복입니다. 머리만 좋아서 됩니까? 그 안에 좋은 성품과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좋은 일자리, 좋은 사람들, 좋은 환경을 약속해주시지만, 머리 좋은 게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좋은 머리로 남들의 부족함이나 발견하고, 그래서 감히 판단하고 무시합니다. 세상이 나 같은 자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외로워나 합니다. 그리고 또 그 좋은 머리로 돈 벌어보겠다고 도박이나 주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낭비합니다. 이렇게 되면, 머리 좋은 것이 그 사람에게 축복이라 하겠습니까? 저주라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아주 귀중하게 여기고 잘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 중에 왜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때 차별해서 ‘누구는 좋은 달란트를, 누구는 좀 좋지 않은 달란트를 주셨나’ 불만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누구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누구는 두 달란트를 주고 누구는 한 달란트 달랑 준다고 말도 안된다고 하신 분이 계십니까? 불공평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출발 선상이 다른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냐고 말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불공평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달란트를 다르게 차별해서 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가진 종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가진 종도 마찬가지로 장사를 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길 만한 종이었기에 다섯 달란트를 준 것이고, 두 달란트를 맡길 만하기에 두 달란트를 준 것입니다. 주인은 자기의 재산을 더 늘려줄 종들에 대해 잘 압니다. 종들을 그동안 쭉 지켜보니, 자신이 멀리 떠나도 자신의 재산을 잘 지켜줄만한 그리고 지킬 뿐만 아니라 더 많이 늘려 줄 것 같았기에 달란트를 거저 맡긴 것입니다. 믿고 거저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그 누구 보다더 잘 아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 달란트는 세상 적으로는 “재주, 재능”이요, 영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결국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진정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이 세상에서 쓰고 만들고 벌고 소비하면서 살다가 빈손으로 영원히 살게 될 하나님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단지 먹고 살려고? 남보다 더 낫게 살려고?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주인이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에게 칭찬한 내용을 생각해보십시오. 20절 이하를 보면, 주인은 그에게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라고 칭찬합니다. 주인은 같은 내용의 칭찬을 두 달란트 받았던 종에게도 하십니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비교하며 우월감을 갖기도 하고 열등감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은사를 가졌다고 남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되고, 작은 은사를 갖고 있다고 열등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아주 귀하고 소중하게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종이 되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까? 24~30절의 말씀입니다.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주인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겨서, 더 많은 이익내서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이나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무언가를 더 남겼기에 그 최선을 다한 모습을 칭찬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맡겼던 종은 어떠했습니까? “주인님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 말이 됩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아주 그럴싸한 대답입니다. 만약에 달란트를 사업에 투자하거나 장사를 해서 실패하게 되면 주인님에게 혼날까봐 무서워서 잘 숨겨서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이 종은 마치 자신이 최선을 다한 양 말하고 있지만, 게을렀습니다. 두려움, 걱정 근심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그것을 그대로 내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주인의 입장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화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로 만들어 놓지 못해서가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그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달란트(은사)를 주셨습니다. 한 달란트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달란트를 사명으로 알고 사용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있습니다. “은사가 사명이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있는 은사를 사명으로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은사를 소홀히 여기고 내 마음대로 살면 하나님께도 영광되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불행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말씀 주셨습니다. 귀한 깨달음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나는 다섯달란트가져서 다섯달란트를 남긴 충성스러운 종인가? 아니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전전긍긍하며 사는 종이었나?’ 라고 말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한 달란트 가진 종으로 살아왔다면, 그저 안전하고 편안하게 근근히 살아왔다면, 이 순간 주님께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외치시는 소리를 듣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충성스러운 종으로 늘 깨어있어서, 이 은사, 이 달란트를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칭찬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큰 축복 가운데 그 행복을 누리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시고, 또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그 달란트를 사용하며 살 수 있도록 축복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달란트를 두 배, 세 배 잘 늘려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더 큰 행복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결코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우리 마음대로 방치하고 게으르게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잡아주시고, 우리가 주님 떠나 살지 않도록 보호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