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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전서 강해 51) 나는 날마다 죽노라 (수요예배 20190116)

by 온누리선교 2019. 1. 15.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5:29~34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설교: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예전에 기독교 장례식을 가면 항상 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땅에 묻히거나 화장을 하러 가기 전에 관뚜껑을 열어놓고 마지막 예배를 드립니다. 이때에는 주로 부활에 관한 성경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 다음에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이렇게 헤어집니다마는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슬픔으로 헤어집니다마는 주님 앞에 가서 영광스럽게 만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먼저 가고 뒤에 가고 합니다마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공중에서 부활하여 다 같이 함께 만나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드린 후에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예배를 마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죽음을 보며, 낙심하지 않고 저 하늘나라에서 살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 많은 예수를 믿는 분들이 교회를 나가면 무조건 영생의 복을 받는 것으로 알고, 다음은 세상의 복만 받으면 되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셔서 우리들에게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되지 왜 날마다 죽어야 합니까? 예수를 믿음은 세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마음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영으로부터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속에서 율법에 아주 익숙하여 찌들은 나의 마음에 예수 십자가를 못받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또 하나님의 심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서 사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인데 이것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며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9~31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이 사람들과 연관 있거나 사랑했던 사람들이 대신 세례를 받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세례도 못 받고 죽은 사람이 혹시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다시 살아나지 못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또는 세례를 받지 못했던 그리스도인들 중 불신자였던 가족이 나중에 믿어 자진해서 세례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활자체를 참으로 이상하게 해석하여 숭배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30~31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 신앙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부활을 이용한 관습 자체를 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난다면 죽은 사람을 위해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 자체를 신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이 땅의 어떤 것도 겁내지 않습니다. 순교의 자리에서도 담대합니다. 그것은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며 부활이 있음을 믿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의 것들에서 날마다 죽어 성화, 즉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영원한 생명과 저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 로마사람들이나 헬라사람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 소위 지성인들은 만나면 서로 이렇게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메멘토''리멤버(remember)'라는 말이요 '모리''죽음(to die)'이라는 말입니다. 직역을 하면 '리멤버 투 다이(remember to die)'라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나도 당신도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사십시다. 더는 욕심을 부리지 맙시다. 이대로 끝난다는 것을 잊지 말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이것이 인사였습니다. 아침인사요 저녁인사입니다. 죽음을 잊지 말고 살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 믿게 되자 이제 인사말이 바뀝니다. '마라나타(Maranatha)'성경에도 나오는 유명한 인사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번역이 됩니다마는 좀더 자세히 살피면 '주님께서 곧 재림하실 것임을 기억하고 사십시다. 우리가 다 주님 앞에 갈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사십시다'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이로써 서로 유무 상통했던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순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오렌지카운티에 그 유명한 척 스미드 목사님이 인도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이름이 갈보리 채플(Calvary chapel) 입니다마는 교회에 직접 가보면 갈보리 채플 글자 옆에 괄호하고 '마라나타 커뮤니티 (Maranatha community)'라고 써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아주 생명력 있는 교회입니다. '마라나타 커뮤니티'--교회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고 거기에 중심이 있고, 거기에 목적이 있습니다. 궁극적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부활신앙 안에 사는 생명, 그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신앙을 강조한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32~34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32절에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곧 육에 속한 사람처럼 당한 일을 억울해

하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면, 그것은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사람의 방법으로 고개를 들고 바득바득 뭐든지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편에 서서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서는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이란 옛사람을 끊임없이 없애내는 하루하루의 삶입니다. 옛 생각, 세상 것, 세상 욕심을 계속적으로 부정하고, 동시에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부정하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옛 생활을 완전히 부정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을 계속적으로 확인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대개 ''먹고 놀자 주의''로 빠집니다. 죽음 이후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땅에서 착한 일을 행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를 포함해 무신론자들이 살인과 전쟁 등 온갖 악을 저지르는 데 대담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삶에 대한 자세가 다릅니다. 성도들은 순전한 믿음을 지닌 친구를 많이 둬야 합니다. 악한 친구는 성도의 신앙을 타락시킬 뿐 아니라 교회에 해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준비된 사람은 오히려 부활의 소망을 갖도록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가끔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바꾸어 타거나 할 때 꼭 비행기 표와 여권을 보여줍니다.

왜 비행기 표를 보여줍니까?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다른 곳에 가는 비행기를 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항은 아주 복잡해서 하루에도 수백 대의 비행기가 내렸다가 뜹니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고 전광판에 올라오는 비행기 번호와 도착지, 그리고 출발하는 게이트 번호를 보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칩니다. 그리고 또 시간도 정확히 알고 비행기 바꿔타는 곳으로 가야지 늦게 가면 비행기를 놓칩니다. 예전에 러시아에서 놀러 온 가족이 인천 공항에서 면세품을 사다가 늦어서 비행기를 놓쳐버려 다시 친척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서 사니 아주 비싸게 비행기표를 사서 러시아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천국행 티켓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자꾸 그 티켓을 바라보며 늦지 않게 길을 잃지 않게 정확한 게이트 번호 따라 가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살면 비행기를 놓치는 것과 같이 천국 가는 티켓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이 늦어지거나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옛사람이 깨끗이 죽었는가 안 죽었는가 말입니다. 그리고 새사람으로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확인해야합니다. 날마다 그렇게 확인해야합니다.

날마다 사도바울은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남겨진 그 옛모습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지겹고 힘들 수도 있으나 주님의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행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능력의 주 하나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생명을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세상사람들과 달리 저 하나님 나라를 받은 새생명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부활신앙으로 하루하루 주님께 영광 올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